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일부 국가에서는 박쥐나 개, 고양이, 돌고래 등 동물들을 이용한 실험들이 알게 모르게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훈련된 동물들을 주로 자폭용 폭탄과 함께 적진에 투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용했는데 동물의 생존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시도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2차대전의 동물 영웅으로 알려진 불곰 '보이텍'은 전장에서 폴란드군 전우들과 함께 작전을 펼치고 끈끈한 우정을 나눈 계급과 군번까지 있었던 정식 병사였으며 폴란드군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럼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폴란드군 소속으로 전쟁에 참전했던 용감한 병사가 있었습니다. 

'미소 짓는 천사'라는 이름의 '보이텍' 이등병.



보이텍은 2차 세계대전부터 지금까지 폴란드 2군단 22포병 보급 중대의 마스코트로 폴란드 육군의 영웅으로 그의 전우들과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폴란드에는 시내 광장이나 공원에서 보이텍의 동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불곰 '보이텍'은 어떻게 폴란드 육군과 함께 전장에서 병사로서 싸울 수 있었을까요?


1943년, 폴란드 2군단 22보급 중대원들은 한 소년으로부터 태어난지 8주 밖에 되지 않은 엄마를 잃은 아기 곰을 우연히 구입합니다. 보이텍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어렸을 때부터 병사들의 손에서 우유와 꿀 등을 먹고 자라면서 부대 생활을 함께했는데 그때부터 보이텍은 시리아 불곰이 아닌 병사들의 친구이자 동료가 됩니다. 



전장에서 군인들이 얼마나 보이텍을 정성 들여 키웠는지 보이텍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랍니다.



부대 병사들 모두와 사이가 좋았던 보이텍은 다른 시리아 불곰과는 다르게 성격이 유순해 부대 내의 다른 동물과도 허물없이 지냈는데, 군사훈련도 잘 소화했기 때문에 폴란드 육군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곧 부대의 마스코트가 되어버린 보이텍^^



그렇게 아기 불곰이었던 보이텍은 키 180cm, 몸무게 113kg의 듬직한 병사로 자라서 정식으로 폴란드 2군단 22보급 중대원에 배속되어서 계급과 군번, 그리고 심지어 월급통장까지 부여받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병사들 군사훈련에 소질을 보였던 보이텍.




병사들 키만큼 성장한 보이텍은 이제 목봉체조도 병사들 못지않게 잘하게 됩니다. 훈련을 잘 받을 때마다 과일과 꿀, 시럽을 받았지만 사실 보이텍이 정말 좋아했던 메뉴는 병사들이 상으로 줬던 맥주와 담배였습니다. 특히 담배를 무척 좋아했는데 불이 붙지 않은 담배는 쳐다도 보지 않을 정도로 담배를 즐겼다고 합니다. 



보이텍은 실제 전투에도 참전했습니다. 1944년 몬테카지노 전투에 참전하여 포탄과 탄약 상자를 나르는 임무를 수행했었는데, 포탄 한발이라도 떨어뜨리는 날에는 아군에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는데도 임무 중에 한 번도 포탄과 탄약 상자를 땅에 떨어뜨리는 경우가 없을 정도로 군대 체질이었죠.



그리고 보이텍이 병사로서 더 인정을 받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부대의 보급품을 훔쳐 가는 도둑을 잡고, 영내 순찰 중에 독일군 스파이를 잡는 전과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부대 마크와 군장까지 보이텍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바뀌고 22보급 중대의 마스코트가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해당 부대는 2년 뒤에 해산되어 보이텍의 전우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고, 보이텍 전역을 하여 영국의 에든버러 동물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동물원 생활은 한편으로는 편했지만 전장에서 전우들과 늘 함께였던 보이텍은 그렇게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폴란드의 명물이었던 그를 보러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도 동굴에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함께 했던 전우들은 알아보았는지 전우들이 그를 보기위해 동물원을 찾아오면 항상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때마다 보이텍은 전우들에게 늘 하는 제스처가 있었는데 '친구! 담배 좀 줘' 였다고 합니다. 



이후 그의 전우들은 보이텍을 위해 동물원에 자주 방문하였고, 몰래 철장을 넘어 보이텍과 놀아주기도 했으며, 가끔 담배도 함께 피웠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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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최고 권력가이자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터프한 그의 취미생활 때문에 전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대통령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그의 성향이 그대로 대통령 전용헬기에도 나타났는데, 그는 세계에서 최초로 공격 헬기를 대통령 전용헬기로 이용하는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그는 왜 전용헬기인 Mik-8MTV 놔두고 공격헬기를 전용기로 이용할까요?설마 대통령이 직접 군사작전에 나서기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단지 그동안 언론에 알려졌듯이 조금 특별한 그의 취미생활에 영향을 받아서 그런 걸까요? 그럼 지금부터 그의 상남자스러운 전용헬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푸틴 대통령의 전용기 Mi-35MS는 러시아의 Mi-24 공격 헬기의 개량형인 Mi-35M을 베이스로 만든 전세계에서 유일한 공격 헬기를 개조한 대통령 전용헬기입니다. 


시민에 목격된 대통령궁에 나타난 헬기 (Mi-24 하인드 공격헬기로 착각함)


위 영상이 2015년 연말에 처음 언론에 공개되었을 당시에는 러시아 대통령궁 상공에 2대의 공격헬기가 시민들에게 목격되었는데, 당시에는 쿠데타가 일어났다는 소문까지 생겨날 정도였다고 합니다. 대통령궁에 갑자기 공격 헬기가 나타났으니 누가 봐도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소문과는 다르게 대통령궁 상공에 나타난 헬기는 Mi-24 하인드 공격헬기가 아니라 푸틴이 새로 도입한 전용헬기인 Mi-35MS로 밝혀졌습니다. 


Mi-24 하인드가 어떤 헬기이길래 그렇게 시민들과 언론에서 난리가 났었냐면..


▼Mi-24 하인드


Mi-24 하인드는 일명 '사탄의 마차'라고 불리는 러시아의 공격헬기로 공격과 수송, 두 가지 장점을 모두 가졌으며, 승무원 2명과 함께 보병 8명을 수송할 수 있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 당시 기관포와 로켓탄, 각종 미사일을 이용해 무자헤딘 게릴라들을 쓸어버리면서 무자헤딘은 Mi-24 하인드를 '사탄의 마차'로 불렀습니다. 


▼Mi-24 하인드의 개량형인 Mi-35


Mi-35Mi-24 하인드 공격헬기의 야간작전능력과 항공전자장비를 개량한 공격헬기입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당시에 대통령궁 상공에 나타난 공격헬기는 무장이된 상태가 아니라 Mi-35M의 개량하여 만든 Mi-35MS라는 푸틴 대통령의 새로운 전용헬기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기존의 전용헬기인 Mik-8MTV를 두고 푸틴 대통령이 갑자기 공격 헬기를 개조해서 전용헬기를 이용하는 이유는 아마도 러시아에서 일어난 테러가 주요한 원인으로 예상됩니다. Mi-35MS는 공격 헬기를 개조했기 때문에 내부가 대통령 전용헬기로 사용할 정도로 여유롭지 않지만 기존의 전용헬기보다 테러에 대해서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푸틴 대통령 전용헬기인 Mi-35MS의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고정형 랜딩기어 사용


대통령 전용기라도 만에 하나 적에게 격추되어 추락할 때 지상으로부터 최대한 충격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Mi-35MS의 랜딩기어는 고정형으로 충격 흡수를 위해 가장 안전한 방식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상) Mi-35MS의 넓어진 창문     ▼(하) Mi-35M 공격 헬기의 좁은 창문


2. 공중 시찰을 즐기는 대통령을 위해 넓어진 창문


푸틴 대통령은 자국의 군부대를 시찰하는 것을 즐겨 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직접 군부대에 방문해서 병사들과 이벤트를 즐기기도 하고 직접 화기들을 다루는 영상들도 많이 볼 수 있죠. 이때 주로 이동하는 수단으로 전용헬기를 이용하는데 Mi-35MS는 그를 위해서 기존 공격 헬기의 특성상 좁은 창문 대신 넓은 창문으로 개조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 적의 레이더를 속이는 ECM장비, 통신교란의 방어를 위해 최신 재밍 방지 장치 장착


Mi-35MS에는 야간 비행 시스템과 미국의 GPS 시스템과 유사한 GLONASS 시스템, 위성 통신 시스템(Raduga-MB))을 갖추고 있으며, 적의 통신교란과 레이더를 속이기 위한 향상된 전자 장비와 디지털 장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VIP의 보다 나은 안전을 위해서 블레이드 및 꼬리날개는 티타늄 성분으로 제작되었으며, 외부는 복합소재를 사용해 기존의 Mi-35M보다 가볍고 튼튼한 기체로 제작되었습니다. 



4. 테러리스트의 대공미사일에 대한 방어


대통령 헬기인 만큼 테러리스트나 적군의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레이더 경보수신장치인 RWR은 기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적외선으로 유도되는 대공미사일에 대한 방어시스템은 기존의 Mi-35M의 앞쪽에 위치한 레일건의 위치에 장착되어 있습니다. 



5. 신형 Klimov VX-2500 엔진 장착


기존의 저용헬기인 Mi-8MTV의 최고 속도인 230~250km/h 보다 더욱 향상된 최신 VK-2500 엔진 장착으로 최고 속도 335km/h의 속도로 비행이 가능하며, 적의 공격으로부터 최대한 신속하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사일과 로켓 포드가 달려있던 곳에 추가 연료 탱크를 장착하여 항속거리가 1,000Km에 이릅니다.



새롭게 구입한 전용헬기 때문인지 최근에 군부대 시찰이 부쩍 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때 공격 헬기로 오해받은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전용헬기 Mi-35MS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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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로 알려진 아이슬란드는 노르웨이와 그린란드 사이에 있는 인구 33만 명의 북대서양의 섬나라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섬나라는 NATO 가입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군대가 없으며, 소규모의 '해안경비대'가 그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군대가 없지만 '평화지수 세계 1위의 나라'라는 타이틀을 가진 것 외에도 아이슬란드에는 우리가 몰랐던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총군사력, 4척의 해안경비대 함정과 4대의 헬기



아이슬란드의 국방력은 4대의 해안경비 함정과 4대의 헬기가 전부입니다. 대신 NATO 회원국으로 국가방위는 대부분 동맹국에 의지하고 있으며, 군대는 없지만 해안경비대와 경찰 출신의 인물들을 뽑아 세계의 평화 유지군 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자국에는 군대가 없지만 평화 유지를 위해서 외국에 주둔한다니...ㅎ



2. 유로 2016 이전에는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이슬란드에는 73개의 아마추어 클럽팀이 5개 리그로 시즌을 진행하며, 유럽축구연맹(UEFA) 공인 축구 지도자가 600명이나 있습니다. 인구대비 엄청난 숫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로 2016에 출전하여 8강에 올라 전세계를 놀라게 했었는데, 더욱 놀라운 점은 몇 명의 선수를 제외하면 본업이 의사, 주유소 알바, 영화감독, 핸드볼 선수 등의 다양한 직업군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로 2016의 가장 HOT했던 축구팀이었죠. 



3. 축구 대표팀 골키퍼는 영화 감독 출신이다.



아이슬란드의 현역 축구 대표팀 골키퍼인 하네스 할도르손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감독으로 생계를 유지했었고, 2012년 아이슬란드 유로비전 비디오를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핸섬한 마스크에 대표팀의 골키퍼, 그리고 영화감독까지.. 아이슬란드 축구 대표팀은 할도르손 외에도 각양각색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죠.



4. 국민가수, 요정 비요크



비요크는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여성 뮤지션으로 독특한 음악 스타일과 예술적인 뮤직비디오로 인해 한국에도 광팬이 많으며, 그녀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아이슬란드 인구보다 많은 43만 명입니다.



5. 축구 대표팀 감독은 치과의사



아이슬란드의 축구 대표팀 감독인 헤이미르 하들리그림손은 감독이 되기 전에는 고향에서 치과의사였고, 지금도 파트타임 치과의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선수들 치과 치료는 자신이 모두 해줄 수 있겠네요^^



6. 신화의 고향, 지금도 신화 속에 사는 국민들



아이슬란드는 신화의 나라다. 국민의 54.4%가 지금까지도 신화에 등장하는 요정(트롤, 엘프)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연에 숨어서 자신들에게 행복과 정의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신화 광팬입니다. 



7. 미팅은 야외 온천이 꿀이지?



화산 기반인 야외 온천이 많아 남녀노소 모든 국민들이 온천에서 미팅, 소개팅, 회의, 회식, 여가 등의 만남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세계 5대 온천으로 알려진 아이슬란드의 블루라군 온천은 꼭 한 번 가볼 만한 곳입니다. 



8. 아이슬란드는 정말 ICE만 있다?



아이슬란드의 겨울은 최저 기온이 평균 영하 4도 이상이며, 최고 기온은 4도 정도 됩니다. 하지만 이름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추운 나라로 오해하고 있죠. 아이슬란드란 이름은 처음 바이킹들이 이 섬을 발견했을 때 너무나 아름다워 자신들만 소유하고 싶어서 이름을 일부러 ICE + LAND로 지었다고 합니다. 얼음 밖에 없는 땅이라고 소문을 내기 위해서죠.



9. 세계 최초로 남녀 근로자 임금이 동일하다




세계경제포럼(WEF)에 의하면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양성평등이 가장 잘 실현되고 있는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에서 여전히 여성의 급여는 남자보다 14~18% 정도 낮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면서 아이슬란드의 모든 기업체가 세계 최초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인증제를 도입함으로써 남녀임금 동일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10. 맥도날드가 없는 나라도 있어?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국민 1인당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잘 사는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2008년 은행업계가 붕괴되고, 유로화가 급등하면서 맥도날드 매장은 독일로부터 식자재 수입 비용이 두 배 이상 오르자 더이상 영업을 할 수 없어 철수하게 되죠. 

결국 유럽 국가 중에서 아르메니아, 보스니아, 알바니아 등 작은 국가와 함께 맥도날드가 없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11. 추운 나라인데 술을 못 마시게 했다고?



추운 지방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보통 음주 문화가 발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1915년부터 1989년까지 금주법에 의해서 맥주 판매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술이 금지되었었죠. 그 이유는 오랜 기간 동안 덴마크의 식민 지배를 받아왔었고, 1940년 독립을 선언한 이후로 국민투표에 의해 맥주 문화가 발달한 덴마크의 음주문화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애국주의적 금주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입니다. 



12. 무기가 뭐죠? 아이슬란드 경찰은 무기를 소지하지 않아요.



경찰이 무기를 소지하지 않을 정도로 아이슬란드에는 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총기 사용법을 모르는 경찰이 많고,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경찰도 전체 20%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특이한 점은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지만, 단일 민족이며 이웃과 유대관계가 높고, 잘 정비된 복지제도 때문에 시민들이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은 정말 부럽네요.



13. 축구 역사상 A매치에서 부자가 함께 뜀.



때는 1996년 4월, 아이슬란드 대표팀은 A매치에서 애스토니아와 친선 경기를 뛰게 됩니다. 당시 아이슬란드 대표팀의 아르노르 구디온센은 그의 아들 에이두르와 교체 투입되어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부자가 함께 A매치에서 경기를 뛰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죠.



14. 대표팀 주장은 전직 핸드볼 선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슬란드의 대표 스포츠는 핸드볼이었습니다. 대표팀 주장인 아론 군나르손 역시 15세까지는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었는데 이처럼 아이슬란드 축구 대표팀은 감독부터 여러 선수들이 특별한 사연들이 있는 선수가 많습니다. 위 사진은 경기가 끝나고 군나르손이 호날두에게 셔츠 교환을 부탁하는 모습이네요.



14. 인구는 작지만 세계 최대의 콜라 소비국.



세계에서 가장 콜라는 많이 마시는 나라! 위산과다나 이가 썩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즐길 뿐이다. 1인 당 연간 콜라 소비량이 무려 489잔이나  됩니다. 


이처럼 인구 33만 명의 북대서양의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군대가 없는 나라로 유명한 것 외에도 아주 특이하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계절 또한 다른 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여름과 겨울이 있는데 겨울에 낮의 길이는 겨우 4시간을 조금 넘고, 여름에는 낮의 길이가 21시간이나 되어 환한 밤에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는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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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은 한국 육군이 보유한 전차의 2배에 이르는 4,300대의 전차를 보유 중입니다. 수적으로 2배라는 개념은 전쟁에서 승패를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이미 국군이 보유한 최신 성능의 전차와 공격 헬기에는 괴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굳이 국군의 전차와 공격 헬기가 아니라도 기습하는 북한군의 전차부대를 최소 인원의 보병으로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습니다. 


탱크 1대를 한 명의 보병이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은 적의 주력인 전차 전력에는 큰 두려움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럼 한국 보병이 보유한 북한 전차와 1:1 맞짱에서 이기는 국군 대전차무기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실제 전쟁에서 대전차무기를 사용했던 보병이 적 전차부대를 상대로 큰 승리를 거둔 전례가 있습니다. 중동 전쟁에서 이집트군이 이스라엘 전차부대를 상대로 거둔 승리죠. 이처럼 최근의 대전차무기는 적 전차들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성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국군이 보유한 대전차무기의 종류는 대략 8종류 정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 시기가 오래되었거나 노후화된 기종인 M67 90mm 무반동총, M27 LAW, M40 106mm 무반동총은 오늘의 글에서 일단 예외를 시켰습니다. 


▼시계방향으로 M67 90mm 무반동총, M27 LAW, M40 106mm 무반동총


*M40 106mm 무반동총의 경우 3세대 전차를 상대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으며, 관통력은 압연강판 414mm 입니다.



1. BGM-71 TOW (토우 미사일)



토우 대전차미사일은 '탱크 킬러', '대전차 미사일의 베스트셀러'라는 별명으로 현재 40개국 이상의 나라에서 다양한 플랫폼으로 사용 중에 있습니다. 토우 미사일의 가장 큰 장점은 탱크 킬러라는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토우2A의 경우 관통력은 900mm입니다. 때문에 북한군이 보유한 거의 모든 전차를 박살 낼 수 있습니다. (3세대, 3.5세대 전차의 천적)



하지만 북한군의 신형 전차로 알려진 선군호의 추정 방호력이 700~900mm 정도되는 것과 추후 북한군 전차 장갑의 업그레이드를 감안할 때, 토우 미사일의 관통력이 통할지는 아직 미지수임을 알 수 있습니다.  

 


토우 미사일은 유선 유도방식이기 때문에 정지 상태에서는 명중률이 90%에 가깝고 이동 중에는 50%의 명중률을 자랑합니다. 또한 우리 군이 보유한 차량과 공격 헬기 등에 장착이 가능하고, 대당 1,090만 원이라는 저렴한 가격대는 큰 장점입니다. 다만 탄속이 느리고 유선 유도방식으로 사수의 위치가 발각될 확률이 높아 적의 집중포화를 받을 확률이 높은 점은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PZF-3 (팬저파우스트-3)



대전차 무기 강국인 독일에서 도입한 펜저파우스트-3는 북한의 T72 전차의 대량 보유설에 의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1995년부터 국군의 중대급 대전차무기로 도입한 화기입니다. 13kg이라는 초경량의 무게와 탄두 발사 시에 후폭풍이 발생하지 않는데 이는 탄두 중량과 동일한 중량물을 후방에 발사하는 방식(카운터매스)이기 때문에 참호 내에서도 사격이 가능합니다. 



현재 국군의 주력 대전차무기로 10,000여 기 정도 도입해서 운용 중이며, 최대 사거리 900mm에서 기본형 탄두만으로도 700mm 두께의 압연강판을 관통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최신형 전차를 제외하고 모든 전차를 박살 낼 수 있습니다. 



또한 신형 탠덤 탄두로 알려진 PzF 3-T를 사용했을 시에는 적 전차의 반응형 장갑을 파괴한 후, 800mm의 관통력이 나오는데 말 그대로 괴물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국군의 대전차무기입니다. 




3. 스파이크 NLOS



이스라엘산 대전차 미사일인 스파이크는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이후에 북한군의 해안포를 타격하기 위해서 도입한 국군의 대전차무기로 한 발당 2억 원에 이르는 높은 가격이지만 사거리가 25km에 이르며 높은 명중률을 자랑합니다. 




미사일 한 발 당 가격대가 K-9의 포탄 가격의 100배에 이르는 고가이지만 연평도 포격도발 이후 북한 해안포에서 유사한 도발이 있을 시에 5분 이내에 완전히 괴멸 시킨다는 목표로 국방부에서 도입하여 현재는 대전차용으로 운용하지 않고 적 해안포 섬멸용으로 해병대에서 운용하고 있습니다. 




4. Metis-M



M40 106mm 무반동총의 대체 병기로 운용 중에 있는 Metis-M은 러시아제 대전차무기로 사거리 1,500m에 이르며 관통력은 850mm 이상으로 토우와 재블린 미사일보다 성능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진 만큼 국군은 현재 총 발사관 226문과 탄약 12,750발을 운용 중에 있습니다. 



보병이 운용하는 무기이기 때문에 무게가 관건인데 Metis-M의 무게는 불과 14kg에 불과하기 때문에 뛰어난 성능 외에도 운반이 용이해서 보병의 대전차무기로 손색이 없습니다. 특징으로는 토우 미사일처럼 반능동형의 유선 유도 방식을 사용하며, 탄약은 개당 2,500만 원으로 저렴합니다. 



▼K-200A1 장갑차 위에 탑재된 모습




5. 현궁



현궁은 현재 국군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대전차무기입니다. 앞서 설명드린 대전차무기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모두 갖춘 화기로 사거리는 2.5km로 900mm의 적 전차의 장갑을 단번에 파괴할 수 있는 대전차 미사일로 현재 북한군이 운용 중에 있는 모든 전차들을 박살 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막강한 관통력은 북한 신형 전차의 반응형 장갑을 관통하기 위해 일반 대전차 고폭탄과 다른 탠덤탄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탠덤(Tandem) 탄두

2개의 탄두가 직렬로 배치된 고폭탄으로 적 전차에 착탄 시, 전면의 소형 1차 탄두가 반응형 장갑을 무력화 시키고 그다음 2차 탄두가 전차를 관통하여 폭발합니다.



▲소형 전술차량에 탑재된 현궁


현궁의 가장 큰 장점은 Fire&Forget 방식과 Top Attack 기능이 있습니다. 토우와 Metis-M의 유선 유도 방식이 아닌 Fire&Forget 방식으로 적 전차를 향해 한 발을 발사한 후 즉시 자리를 이동해서 다음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어 다른 대전차무기와는 달리 사수의 생존력이 높으며, Top Attack 기능은 전차의 장갑이 가장 얇은 포탑 상부를 공략할 수 있어서 현궁의 타격 목표가 된 전차들은 100% 파괴가 되는 점입니다. 





<이미지-국방홍보원,국방부>


북한군의 구형 전차인 T-54/55, T-59 등 장갑 방호력이 350mm 이하인 전차는 국군이 보유 중인 대전차무기에 상대 자체가 안되며,  북한군의 주력 전차로 알려진 천마호(폭풍호)는 방호력이 600mm이기 때문에 PZF-3와 Metis-M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으며, 북한의 최신 전차인 선군호 역시 국군의 '토우 2A'와 '해궁'으로 모두 파괴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국군도 점차 신형화되는 북한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노후된 대전차무기들을 신형으로 교체함과 동시에 질적 향상과 보다 많은 대전차무기의 확보가 이루어져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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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아시아에서 대적할 나라가 없을 정도로 강한 나라였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이룩한 그들의 해군력과 군대는 자신들이 마치 세계 최강의 국가라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거죠. 이후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자신들의 기술과 무기를 믿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맙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들이 자신했던 무기는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무기와 비교했을 때 어이가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습니다. 

일본군들 조차 싫어했던 일본 무기들을 가지고 일본 군인들은 도대체 어떻게 싸웠을까요?




2차세계대전 일본군들 조차 싫어했던 일본 무기들

 

1. 남부 14년식 권총



일본 장교들이 사용했던 남부 14년식 권총은 전쟁 초기에는 높은 정확도와 성능이 좋은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후반으로 가면서 공장에서 찍어낸 권총들은 거의 대부분 많은 문제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때 생긴 별명이 바로 '자살용 권총'입니다. 

자살하는데 사용하는 권총이 아니라 갖고 다니는 것 자체가 자살용이란 뜻에서 생겨난 별명이죠. 


▲영화 <마이웨이>에 등장했던 남부 14년식 권총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이미 패망의 그림자가 일본 군수품 공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후기의 남부 14년식 권총은 말 그대로 지니고 있는 것 자체가 자살용이었습니다. 내구도가 엉망이라서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권총집에 넣고 뛰는 경우 폭발하거나 탄이 발포되는 경우도 많았고, 심지어 총을 쏘는 경우 손잡이에서 폭발하는 일이 자주 발생해서 손목이 절단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당연히 일본군 장교들이 싫어했겠죠? 


▲드라마 <각시탈>에 등장했던 94식 권총




2. 아리시카 38식 보병소총



1차 세계대전부터 사용되었던 일본군의 주력 소총으로 볼트 액션식 소총입니다. 일본군이 나오는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소개되기도 하는데 전쟁이 한창일 때 미군이 사용했던 스프링필드나 영국의 리엔필드에 비해 성능이 안습이었죠. 


▲영화 <암살>에 등장했던 아리시카 38식 보병소총


발사속도와 정확도가 좋은 장점을 제외하면 단점 투성이었습니다. 파괴력이 너무 낮아서 총에 맞아도 부상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총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장전하기 힘들 뿐 아니라 들고 다니기에도 상당한 문제점들이 많았는데 일본 군인들은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영화 <대호>에 등장했던 아리시카 38식 보병소총





3. 5식 반자동소총



자동소총인 8발 개런드 소총을 사용하는 미군들에 맞서기 위해서 일본은 자동소총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탄생한 소총이 바로 5식 반자동소총입니다. 일본군의 아리시카 38식 소총을 대신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기대가 상당했었지만 전장에서 총을 쏘면 총알이 나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내구성 또한 문제가 많아서 고장이 쉽게 나는 등 일본 군인들이 사용하기에는 고문이나 마찬가지였죠.


▲미군의 M1 개런드와 유사한 5식 반자동소총 설계도




4. 치하 전차

 


치하 전차는 등장한 시기를 따져보면 제원상으로는 당시 전차 강국이었던 소련과 독일보다 월등함을 알 수 있습니다. 독일의 주력 전차였던 2호 전차 C형은 기관포가 주포였던 반면에 치하 전차는 57mm 주포를 사용했습니다. 또 소련의 BT7의 주포는 45mm에 불과했기 때문에 치하 전차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는 획기적인 전차였습니다. 다만..



외형은 그럴듯했지만 57mm 주포의 장갑 관통력은 실제로 독일의 20mm 기관포보다 약했다고 합니다. 이유는 일본의 탄두 기술이 너무 뒤떨어져서 적의 전차에 착탄되더라도 탄이 장갑을 뚫고 들어가지 못하고 외부에서 파괴되어버렸기 때문이죠. 미군의 M3 스튜어트 전차도 후면 장갑만 겨우 뚫을 정도였기 때문에 M4 셔먼 전차가 나타나면 도망가기 바빴습니다. 




5. 신요 자살보트



해상의 가미카제 버전입니다. 미군의 함선에 타격을 주기 위해서 만들어진 자폭용 보트로 다량의 폭탄을 배에 싣고 함선을 공격하는 용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일본 군부의 특단의 대책으로 만들어졌지만 역시 문제가 많았습니다. 



배 자체가 너무나 약했기 때문에 함선에서 쏘는 기관총에도 쉽게 뚫려 폭탄이 터져서 죽는 경우가 많았고, 속도 또한 30km/h로 너무 느려서 함선에 부딛치기 전에 파괴되는 등 파도에도 약해서 요트가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전쟁 후반부로 갈수록 일본군의 무기는 정말 산으로 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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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북유럽의 가장 큰 나라이며 중립국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평화와 복지의 나라일 거라는 인식과는 달리 냉전시대에는 강대국들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중립국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항상 전쟁에 대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노력은 군사 기술의 발전과 국방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오래전부터 국토 곳곳에 각종 대피소와 전쟁 물자들을 비축할 수 있는 시설들을 만들어 왔는데 스톡홀름 서쪽 70km 발트해 앞바다에 위치한 무스쾨섬에는 오래전부터 소련 해군이 함부로 넘볼 수 없었던 스웨덴 해군의 '비밀 군사기지'가 있습니다. 




1950년에 스웨덴 해군은 소련 해군의 막강한 전력이 자국의 영해로 침략할 것을 예상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 비밀 지하기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이 계획을 실행합니다. 이렇게 요새화된 비밀해군기지를 보유하기 위해서 시작된 19년이라는 긴 공사는 1969년에 끝나고 드디어 무스쾨섬에 비밀해군기지가 완성되었습니다. 



무스쾨(MUSKÖ)섬

'스웨덴 해군의 비밀군사기지'이며, 지하 도시입니다. 무스쾨섬 비밀해군기지는 중립국이지만 강대국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항상 전쟁에 대비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의지가 나타난 시설물입니다. 이곳은 군사시설 외에도 병원과 핵전쟁 대피소, 상가, 국회의사당 등 세계 최대 규모의 시설로 알려졌습니다



수백 년 동안 중립국가로서 스웨덴이 단 한 번도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구 천만 명 이하의 그들이 가진 강력한 군사기술과 국방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스웨덴 해군의 Visby급 스텔스 코르벳함


수도 스톡홀름에서 남쪽 70km 발트해의 무스쾨섬에 비밀해군기지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스웨덴 왕립 해군 제4 전투 함대가 배치되어 작전을 수행하였습니다. 특이하게도 허름한 외부의 입구와는 달리 이곳은 유사시 2,000여 명의 병력을 수용할 수 있고, 부상자 치료를 위한 의료시설과 스웨덴 해군의 최대급인 비스비급 군함과 2척의 잠수함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으며, 이곳에서 군함과 잠수함을 직접 건조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또한 지금 당장이라도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작전 지휘본부와 전함 기동 통제소도 갖추어져 있다고 하니 평화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전장 120m, 전폭 15m, 전고 50m급의 대형 토크가 3개


▼전투에서 피해를 입은 함선을 즉시 수리할 수 있는 선박 수리 시설 3곳


무스쾨 비밀해군기지는 군함과 잠수함의 정박과 수리, 건조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해상과 공중에서 보급이 완전히 차단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병력의 이동과 물자 보급을 위해 지상과 수도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지하 2,800m에 위치한 해저터널이 존재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평화로운 중립국으로만 알고 있던 스웨덴은 내부적으로는 오랜 시간 동안 인접한 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군사 기술과 국방력을 키우는데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스쾨 비밀해군기지가 외부에 노출이 되기 시작하면서 소련과 여러 나라에서는 이곳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을 했지만 냉전시대에는 끝내 이곳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소련은 이곳의 비밀스러운 정체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웨덴을 함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인구 천만 명도 되지 않는 작은 나라인 스웨덴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전함과 잠수함, 비행기, 탱크 등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과 유사시 인구의 60% 이상을 대피시킬 수 있는 지하시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강대국들 사이에서 중립국가로서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느 한 진영에 소속되기보다는 자체적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그 지위를 이어오는 것을 선택한 스웨덴은 우리 한국이 가장 본받아야 할 나라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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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실제 항공모함을 만들 계획이 있었습니다. 

항공모함은 함재기를 전문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바다 위의 비행장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물론 세계 각국이 이러한 항공모함을 모두 갖출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한대를 운용하기 위해서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은 한 국가의 1년 국방예산과 맞먹는다고 하니 전세계에서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막대한 자금과 기술력, 유지비 등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현재 미국이 운용하고 있는 항공모함인 니미츠급은 건조하는데 18억 달러의 비용이 들어갔는데, 현재 비용이 아니라 1975년도에 취역할 당시에 이렇게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러면 현재 시세로 생각하면.. 정말 항공모함 1대당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현재 취역을 예정하고 있는 제럴드 포드호의 비용은 130억 달러가 넘을 거라고 예상한다고 하네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항공모함 건조가 계획되었고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알고 있는지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1990년대 초에 추진된 한국형 항공모함 프로젝트는 2015년에 취역을 목표로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이렇게 갑자기 항공모함 건조가 계획되었던 이유는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온 우리나라와 일본 간의 독도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던 시절이라 군사적인 문제로까지 발전할 수 있겠다는 보고에 의해서입니다. 

결국 김영삼 정부는 한국형 항공모함을 KCVX 계획으로 부르며 국방장관까지도 모르게 비밀리에 진행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시작으로 국내 굴지의 조선업체 두 곳에서 항공모함 설계 발주를 시작하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러시아의 고철 항모 두 척을 민간업체에서 

사들여 한 척은 해체하였고 나머지 한 척은 해양 환경오염의 문제로 중국에 팔았습니다. 이 시기에는 일본에서도 항공모함 

건조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졌던 시기였었죠.



이후 1996년, 한국 정부는 한국형 항공모함 건조 계획을 발표하게 됩니다. 

경항공모함으로 15000톤 급, 길이 197미터, 저폭 24미터의 모형을 공개합니다. 하지만 당시에 대한민국의 경제 사정은 급격히 안 좋아집니다. 대기업의 연쇄부도와 디폴트까지 겪을 뻔한 외환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이 같은 이유로 막대한 비용이 드는 한국형 항공모함 KCVX의 건조 계획은 사라집니다. 




하지만 곧 한국의 경제가 활성화되면서

다시 항공모함 건조 계획은 탄력을 받게 되고 처음 계획했던 규모보다 훨씬 큰 3만 5천 톤 규모로 함재기 25기를 탑재할 수 있도록

계획이 새롭게 진행됩니다.


 


이렇게 항공모함 건조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했지만 역시 문제는 예산,,

항공모함 건조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 말고도 함재기 구입 비용과 무기, 인력 등의 비용도 무시할 수 없었고 기술 또한 해외 의존도가 너무나 높았기 때문에 KCVX 프로젝트는 힘을 잃게 됩니다. 



함재기 한 대의 가격을 1000억으로 잡아도 2조 5000억, 여기에 핵잠수함과 호위함, 이지스함, 보급함들까지 하면 15조 가량이 되며

무기체계는 미사일, 탄약, 연료, 식량, 사병, 교육에 드는 비용까지 조 단위가 넘어갑니다. 이렇게 모든 부분에 드는 비용을 합하면 

우리나라 1년 국방예산과 비슷한 수준이 될 거 같네요.


<한국형 항공모함 KCVX >


결국 한국형 항공모함 KCVX 프로젝트는 아쉽게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만에 하나 그 당시 KCVX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면, 지금 시점에서 최근 확대되고 있는 주변국의 아시아의 해양 전력 경쟁에서 항모 전단을 보유한 우리나라의 영향력은 상당했을 거라고 예상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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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호, 그의 외모를 처음 본 사람들이라면 하나같이 앳된 10대 소년이라고 착각을 한다. 하지만 '코리안 슈퍼보이'라는 그의 별명이 말해주듯이 그는 UFC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 가운데 몇 안되는 가장 핫 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최근에 또 한 번 핫 한 소식을 알려왔는데 미모의 여자친구와의 결혼과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사진 한 장이 이슈가 되었는데 UFC에서 성공한 최두호 선수의 슈퍼카는 그의 팬들 중에서 자동차에 관심이 많은 팬들의 궁금증을 유발시켰는데..




UFC '코리안 슈퍼보이' 최두호 선수가 그의 아내와 함께한 애마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그의 애마를 알아보기 전에 잠깐 그의 프로필부터 살펴보면, 


1991년 4월 10일생

177cm, 65kg

대구 출신

소속사 몬스터그룹

소속팀 팀매드 

전적 16전 14승 2패

페더급 13위 (최근 1단계 하락)



UFC 슈퍼보이 최두호 선수의 애마는 실내가 높아 보이는 걸로 봐서는 일단 SUV 임을 알 수 있다. 인스타그램에 올려진 사진을 좀 더 유심히 살펴보면 알 수 있듯이 그가 타고 다니는 차는 BMW X6 M50D 모델. 


최두호 선수의 외모와는 정반대의 모습을 한 BMW X6 M50D 전면 디자인은 그의 앳된 외모 뒤에 감춰둔 타격가로서의 본능처럼 마초적인 느낌이 물씬 풍기는 차량이다. 



그의 애마는  BMW SUV 라인업 X 시리즈 중에서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며, BMW의 고성능 기능인 M을 채택하여 큰 덩치와 함께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BMW 최고의 SUV 차량이다. (가격 1억 120만원~1억 4160만원)


전장 4,877mm

전폭 1,983mm

전고 1,690mm

축거 2,933mm



BMW X6 M50D의 제원은 

V6 디젤 터보의 2,993cc 381마력 품어내며, 75.5kg.m 토크를 쏟아내는데 최두호 선수의 별명인 '슈퍼보이'와 아주 잘 어울리는 거 같다. 

또한 남자라면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는 제로백은 5.2초로 UFC 경기에서 최두호 선수가 보여주는 뛰어난 민첩성과도 잘 매치됩니다. 



 


BMW X6 M50D 실내의 고급스러운 나파가죽과 뱅엔오룹슨 하이엔드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 그리고 경쟁사 SUV의 지나친 화려함보다는 잘 정제된 듯한 세련됨과 화려함은 고급차의 특징들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운전자의 기분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주행모드는 컴포트,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등으로 선택할 수 있어 도로 여건과 운전자의 기분에 따라 최고의 주행 성능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최두호 선수가 UFC에서 그냥 '코리안 보이'가 아닌 '코리안 슈퍼보이'로 통하듯이 BMW X6 M50D 또한 같은 계열의 V 디젤 터보 엔진을 사용했지만 역시 M이라서 그런지 가속 초반부터 넘치는 힘은 최두호 선수와 너무나 닮아있는 거 같습니다.  



항상 그를 응원하는 동료들! 



지난 컵스완슨과의 경기에서는 패하여 최고의 자리로 가는 여정이 쉽지 않게 되었지만 그의 나이와 그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은 머지않은 미래에 충분히 UFC 패더급 챔피언이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항상 멋진 경기와 꼭 챔피언이 되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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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가장 큰 전쟁 중에 하나이며 수많은 사상자를 낸 1차 세계대전은 7천만명의 군인이 참여한 전쟁입니다. 당시에 미국은 연합국에 가입하여 전쟁을 수행하였는데, 미군의 군인 부족으로 편성된 369부대는 미군 최초로 흑인으로만 이루어진 흑인 부대였습니다. 



인종차별이 사회 전체에 만연했던 시절, 나라를 위해 자원입대를 한 그들이었지만 군대 내에서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의 벽은 높았습니다. 흑인 부대원들은 부대 주변 상가나 식당에서도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멸시를 받았었죠.

하지만 이런 멸시 속에서도 이들은 1차 세계대전 중 가장 용맹했던 부대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들의 부대는 연합군에서 영웅들만 모인 부대로 알려지게 되며 '할렘 헬파이터스'라는 별명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2명의 메달 오브 아너와 171명의 369 부대 병사들이 프랑스군으로부터 무공 십자훈장과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음)


▼369 보병연대 부대원 기념 촬영.


이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미국과 나라를 위해 피 흘릴 준비가 되었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이들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말이죠.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전투가 아닌 부대 내에서 잡일만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들의 전투력을 신뢰하지 않았던 미군은 결국 369 부대를 프랑스군 소속으로 넘겨버립니다. 


▼프랑스군 소속의 369 보병연대의 흑인 병사들


자신들을 군인으로서 인정해준 프랑스군


미군에게 버림받고 프랑스군 369 연대에 소속된 이들은 프랑스군이 사용하는 무기와 장비를 지급받고 흑인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싸우는 군인으로서 동등한 입장에서 전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1918년 4월 8일,

프랑스군 소속으로 치른 첫 전투에서 369 부대는 최전선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귀신같은 활약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독일군과 프랑스군에게 '할렘 헬파이터스'라는 별명을 얻으며 '지옥에서 온 전투원'처럼 전장에서 사신과 같은 능력을 발휘하게 되죠.



이렇게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369 보병연대는 2개의 메달 오브 아너와 수백 개의 십자 훈장을 수여받는 등 1차 세계대전의 검은 영웅으로 영웅 칭호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인기 게임에 등장했던 369 보병연대의 실존 인물인 헨리 존슨 일병의 유명한 일화는 만화와 영화로 제작될 정도였습니다. 


▼게임 베틀필드1의 헨리 존슨 일병




헨리 존슨 일병은 혼자서 30여 명의 독일군 돌격부대에 맞서 싸우면서 소총이 고장 나자 소총과 칼을 휘두르며 4발의 총상을 입은 채로 독일군 돌격부대를 방어한 1차 세계대전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또한 이들은 용맹함 외에도 흑인으로서 타고난 뛰어난 리듬감은 연주 실력으로 이어졌는데, 369 보병연대의 군악대 재즈 연주는 전장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던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켰으며, 다른 부대의 군인들과 민간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으면서 시가행진이나 행군 시에는 이들의 연주가 늘 함께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시가행진 중인 369 보병연대


전쟁이 끝나자 제1차 세계대전의 검은 영웅들인 '할렘 헬파이터스'는  해산되었지만, 곧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들은 다시 한 번 조국의 부름을 받고 결성되어 일본군에 대항해 치열한 전투를 하게 됩니다. 



할렘 헬파이터스는 인종차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용맹함으로 이후 미국의 흑인들이 미군에 입대하여 나라를 위해서 싸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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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쟁은 제2의 한국전쟁이라고도 합니다. 자본주의 체제인 남베트남과 소련과 중국에서 무기와 물자를 지원받은 공산주의 체제인 북베트남과의 전쟁이었는데, 결과는 공산주의 진영의 승리로 끝났지만 당시 세계 여러 나라의 군사전문가들과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 사이에서는 만약 한국군 단독으로 전쟁을 수행했더라면 분명 없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 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군의 위엄이 대단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때 당시 북베트남의 지도자였던 호치민까지도 전장에서 한국군과 만나면 될 수 있으면 교전을 피하라고 지시할 정도였다고 하니 한국군의 위엄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럼 치열했던 전장에서 미국과 해외 언론에서 바라본 한국군의 위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파병

존슨 미국 대통령의 한국군 파병을 요청한 이래로 처음 파병이 시작되었던 1964년 9월부터 한국군이 철수한 1973년까지 한국 최초 국군의 해외파병입니다. 



국군이 강했던 이유


한국군이 최신 장비로 무장한 미군과 프랑스군 등 함께 참전했던 국가의 군인들보다 전장에서 월등할 수 있었던 이유는 6.25를 겪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을 경험한 뛰어난 지휘관들과 장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 군인들은 베트남전쟁을 제2의 한국전쟁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체제였던 북베트남군을 빨갱이라고 인식하고 어느 나라보다 열심히 싸웠습니다. 



베트남전쟁의 전설 '한국군의 위엄'



▼영국 런던 타임스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만일 한국군이 전 월남을 장악하였거나 미군들이 "고보이" 교훈을 배울 수 있었더라면 월남전은 벌써 이겼을 것이다. 칠흙 같은 어둠 속을 96킬로나 자동차로 달려도 총격도 복병 기습의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월남 지역의 그 어느 곳에서도 그와 같이 할 자는 한국군 이외는 아무도 없다. 


-영국 런던 타임스에서-


* 고보이 교훈

맹호부대 포병대대가 퀴논 근처 고보이 평야에 건기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고보이 댐을 건설해서 열대지방인 베트남의 2모작 농사를 3모작이 가능하도록 만든 댐인데 당시 영국의 기자가 한국군이 대민지원을 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국 저널지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월남의 모든 사람을 다 제쳐놓고 60만 한국군에게 전쟁을 맡겨 보는 것이 어떨까? 5만에 불과한 한국군은 적의 구정 공세 기간 중 전술 책임구역 내에 침입한 적을 단 하루 만에 격퇴했다.. 베트콩의 항불전쟁 이래 베트콩에 장악되어 있던 중부 해안 지대가 지금은 한국군에 의하여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 


-1966.3 미국 에빈스빌 저널- 




▼67년 미국 옵져버지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공산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할 당시 이 한국군은 지금의 월남군과 같았다. 그러나 17년이 지난 지금, 한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떠나, 철원의 고지를 떠나, 그리고 인천항, 부산항을 떠나 수천만리 이역땅에서 다시금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다. 


-미 옵져버지 1967.5.24-




▼미 뉴스위크지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월남에 있는 미국인들은 전투에 있어서나 평정사업에 있어서나 한국군을 최고로 높이 평가한다. 사실 한국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해본 일부 미군들은 미군이 한국군의 전술을 배워도 좋으리라고 믿게 되었다. "마치 미국은 한국이라는 비범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 거와 같습니다. 어느날 아침 교실에 와서 선생인 미국보다 학생인 한국군이 앞서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라고 한 미국 관리는 심각하게 말했다. 


-1967.4.10 뉴스 위크지-




▼뉴욕 타임지에서 발표한 '노획한 베트콩 지령문'


노획한 베트콩 문서에 의하면 베트콩은 100% 승리의 확신이 없는 한 한국군과의 교전을 무조건 피하도록 지시가 되어 있다. 한국군은 모두 태권도로 단련된 군대이니 비무장한 한국 군인에게도 함부로 덤비지 마라. 


-1966.7.22 뉴욕 타임지-




▼사이공 포스트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한국군은 우군 피해에 대해서 15:1이라는 비율로 적을 사살했으며, 프랑스와 월남이 20년간 시도하다 실패한 빈딩성의 늪지 해안으로부터 적을 추격, 격파시켰다. 기본적인 한국인의 특성으로 지적할 만한 것은 불굴의 정신이다. 맹호, 백마, 청룡 용사들에 대하여 적이 조심하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다. 노획한 베트콩이나 월맹군의 문서에 의하면 한국군과는 가급적 접전을 피하도록 전 병사들은 명령받고 있는 것이다. 


-사이공 포스트 1968.3.20-




▼미국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지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미국은 한국이라는 귀한 동맹국을 찾아냈다. 그들은 건강한 투사, 그 이상이다. 싸우는 정치인들로서 한국인은 동양에서 월남인들과 가장 친근해졌을뿐더러 미국은 어떤 교훈을 한국으로부터 배울 수 있으리라 느끼게 되었다. 


-미국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1967.5.15-




▼월남 띠엔 반지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중부는 가장 안전한 곳이다. 한국군은 아주 특별한 전술을 가진 적에 대하여 방심하지 않고 경계를 하고 있는 대담한 군인이다. 또한 지방 농민들과 잘 어울리고 농사일에는 모도 심어주고 우수한 군의관은 대민 진료를 열심히 해주고 있다. 


-월남 띠엔 반지 1968.2.17-




▼리차드 닉슨이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자유 월남의 장래를 위한 한국이 이룩해 온 커다란 공헌은 17년 전 미국이 한국에 심었던 신뢰와 협조가 헛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명이 되고 있다. 


-리차드 닉슨 1967.12.17-




이외에도 한국군의 위엄을 인용한 내용


한국군을 만나면 무조건 피해라! 특히 맹호부대를 만나면 모든 작전을 취소하고 철수하여 병력과 장비 등 인민의 재산을 보존하라!


-호치민-


대체 한국군은 어찌 이리 용맹한가? 백마의 명사들은 자신의 목숨조차도 아깝지 않단 말인가? 나는 이것을 단순한 군인정신이라 인정할 수 없다!


-호치민-


12년간 수백만 발의 포탄을 쏘아대고, 수천 명의 전사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과 월남군, 미군에게마저 실패와 좌절을 안겨준 공산군의 요새를 한국 해병대가 단 두 시간만에 점령했다. 대체 우리 연합군에게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르몽드-


한국군의 전술과 미군 전술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한국군은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으면 즉각 2개 내지 그 이상의 방향에서 공격을 가하여 베트콩이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미군은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으면 뒤로 물러나 포병지원을 요청하거나 공중폭격을 요청한다. 그다음에 공격을 하게 되니 적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만다. 


-미국 하원의 증언록에 실린 하원 국방위원장의 증언-




이처럼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은 전투에서는 최강의 용맹을 자랑했으며, 대민봉사 지원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는데, 당시 미군과 월남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월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중장의 결정으로 이루진 신속하고 아낌없는 대민봉사 지원은 이후에는 연합군들이 벤치마킹을 할 정도로 뛰어났다고 합니다. 최근 북한군의 잦은 도발과 위협에서 우리 군은 다시 한 번 선배들의 정신을 되새기며, 막강한 군인으로 거듭나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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