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은 제2의 한국전쟁이라고도 합니다. 자본주의 체제인 남베트남과 소련과 중국에서 무기와 물자를 지원받은 공산주의 체제인 북베트남과의 전쟁이었는데, 결과는 공산주의 진영의 승리로 끝났지만 당시 세계 여러 나라의 군사전문가들과 전쟁에 참전했던 미군들 사이에서는 만약 한국군 단독으로 전쟁을 수행했더라면 분명 없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 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군의 위엄이 대단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때 당시 북베트남의 지도자였던 호치민까지도 전장에서 한국군과 만나면 될 수 있으면 교전을 피하라고 지시할 정도였다고 하니 한국군의 위엄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럼 치열했던 전장에서 미국과 해외 언론에서 바라본 한국군의 위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군의 베트남전쟁 파병

존슨 미국 대통령의 한국군 파병을 요청한 이래로 처음 파병이 시작되었던 1964년 9월부터 한국군이 철수한 1973년까지 한국 최초 국군의 해외파병입니다. 



국군이 강했던 이유


한국군이 최신 장비로 무장한 미군과 프랑스군 등 함께 참전했던 국가의 군인들보다 전장에서 월등할 수 있었던 이유는 6.25를 겪은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을 경험한 뛰어난 지휘관들과 장교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국 군인들은 베트남전쟁을 제2의 한국전쟁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공산주의 체제였던 북베트남군을 빨갱이라고 인식하고 어느 나라보다 열심히 싸웠습니다. 



베트남전쟁의 전설 '한국군의 위엄'



▼영국 런던 타임스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만일 한국군이 전 월남을 장악하였거나 미군들이 "고보이" 교훈을 배울 수 있었더라면 월남전은 벌써 이겼을 것이다. 칠흙 같은 어둠 속을 96킬로나 자동차로 달려도 총격도 복병 기습의 기미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월남 지역의 그 어느 곳에서도 그와 같이 할 자는 한국군 이외는 아무도 없다. 


-영국 런던 타임스에서-


* 고보이 교훈

맹호부대 포병대대가 퀴논 근처 고보이 평야에 건기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고보이 댐을 건설해서 열대지방인 베트남의 2모작 농사를 3모작이 가능하도록 만든 댐인데 당시 영국의 기자가 한국군이 대민지원을 하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명을 받았다고 합니다. 




▼미국 저널지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월남의 모든 사람을 다 제쳐놓고 60만 한국군에게 전쟁을 맡겨 보는 것이 어떨까? 5만에 불과한 한국군은 적의 구정 공세 기간 중 전술 책임구역 내에 침입한 적을 단 하루 만에 격퇴했다.. 베트콩의 항불전쟁 이래 베트콩에 장악되어 있던 중부 해안 지대가 지금은 한국군에 의하여 완전히 통제되고 있다. 


-1966.3 미국 에빈스빌 저널- 




▼67년 미국 옵져버지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공산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할 당시 이 한국군은 지금의 월남군과 같았다. 그러나 17년이 지난 지금, 한국군은 얼어붙은 압록강을 떠나, 철원의 고지를 떠나, 그리고 인천항, 부산항을 떠나 수천만리 이역땅에서 다시금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다. 


-미 옵져버지 1967.5.24-




▼미 뉴스위크지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월남에 있는 미국인들은 전투에 있어서나 평정사업에 있어서나 한국군을 최고로 높이 평가한다. 사실 한국군과 함께 작전을 수행해본 일부 미군들은 미군이 한국군의 전술을 배워도 좋으리라고 믿게 되었다. "마치 미국은 한국이라는 비범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 거와 같습니다. 어느날 아침 교실에 와서 선생인 미국보다 학생인 한국군이 앞서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라고 한 미국 관리는 심각하게 말했다. 


-1967.4.10 뉴스 위크지-




▼뉴욕 타임지에서 발표한 '노획한 베트콩 지령문'


노획한 베트콩 문서에 의하면 베트콩은 100% 승리의 확신이 없는 한 한국군과의 교전을 무조건 피하도록 지시가 되어 있다. 한국군은 모두 태권도로 단련된 군대이니 비무장한 한국 군인에게도 함부로 덤비지 마라. 


-1966.7.22 뉴욕 타임지-




▼사이공 포스트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한국군은 우군 피해에 대해서 15:1이라는 비율로 적을 사살했으며, 프랑스와 월남이 20년간 시도하다 실패한 빈딩성의 늪지 해안으로부터 적을 추격, 격파시켰다. 기본적인 한국인의 특성으로 지적할 만한 것은 불굴의 정신이다. 맹호, 백마, 청룡 용사들에 대하여 적이 조심하고 있다고 해서 이상할 것은 없는 것이다. 노획한 베트콩이나 월맹군의 문서에 의하면 한국군과는 가급적 접전을 피하도록 전 병사들은 명령받고 있는 것이다. 


-사이공 포스트 1968.3.20-




▼미국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지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미국은 한국이라는 귀한 동맹국을 찾아냈다. 그들은 건강한 투사, 그 이상이다. 싸우는 정치인들로서 한국인은 동양에서 월남인들과 가장 친근해졌을뿐더러 미국은 어떤 교훈을 한국으로부터 배울 수 있으리라 느끼게 되었다. 


-미국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 1967.5.15-




▼월남 띠엔 반지에서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한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중부는 가장 안전한 곳이다. 한국군은 아주 특별한 전술을 가진 적에 대하여 방심하지 않고 경계를 하고 있는 대담한 군인이다. 또한 지방 농민들과 잘 어울리고 농사일에는 모도 심어주고 우수한 군의관은 대민 진료를 열심히 해주고 있다. 


-월남 띠엔 반지 1968.2.17-




▼리차드 닉슨이 바라본 월남전의 한국군


자유 월남의 장래를 위한 한국이 이룩해 온 커다란 공헌은 17년 전 미국이 한국에 심었던 신뢰와 협조가 헛되지 않았다는 확실한 증명이 되고 있다. 


-리차드 닉슨 1967.12.17-




이외에도 한국군의 위엄을 인용한 내용


한국군을 만나면 무조건 피해라! 특히 맹호부대를 만나면 모든 작전을 취소하고 철수하여 병력과 장비 등 인민의 재산을 보존하라!


-호치민-


대체 한국군은 어찌 이리 용맹한가? 백마의 명사들은 자신의 목숨조차도 아깝지 않단 말인가? 나는 이것을 단순한 군인정신이라 인정할 수 없다!


-호치민-


12년간 수백만 발의 포탄을 쏘아대고, 수천 명의 전사자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과 월남군, 미군에게마저 실패와 좌절을 안겨준 공산군의 요새를 한국 해병대가 단 두 시간만에 점령했다. 대체 우리 연합군에게 무엇이 문제였단 말인가? 


-르몽드-


한국군의 전술과 미군 전술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한국군은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으면 즉각 2개 내지 그 이상의 방향에서 공격을 가하여 베트콩이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 하지만 미군은 적으로부터 사격을 받으면 뒤로 물러나 포병지원을 요청하거나 공중폭격을 요청한다. 그다음에 공격을 하게 되니 적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만다. 


-미국 하원의 증언록에 실린 하원 국방위원장의 증언-




이처럼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은 전투에서는 최강의 용맹을 자랑했으며, 대민봉사 지원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는데, 당시 미군과 월남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월 한국군 사령관이었던 채명신 중장의 결정으로 이루진 신속하고 아낌없는 대민봉사 지원은 이후에는 연합군들이 벤치마킹을 할 정도로 뛰어났다고 합니다. 최근 북한군의 잦은 도발과 위협에서 우리 군은 다시 한 번 선배들의 정신을 되새기며, 막강한 군인으로 거듭나야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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