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인민해방군 건군 90주년을 맞이하면서 확고한 군사 확장을 예고하며 중국의 첫 해외 해군기지인 '지부티'에 군사를 파병했습니다. 이는 중국의 '진주목걸이 전략'의 첫 해외 해군기지입니다. '진주목걸이 전략'은 미국에 의한 해양 봉쇄에 대비해 인도양을 중심으로 중동에서 에너지를 수송하는 중국의 전략 거점 구축 계획입니다. 


또한 남중국해와 인도양, 아프리카 바다를 연결하여 거점인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미얀마, 파키스탄에 경제적 지원 등을 하면서 동맹국으로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국 해군은 인도양 해역 진출을 위해 다음과 같은 전략을 구사합니다. 초기에는 중국 기업을 이용해 필요한 거점 지역에 상용목적으로 경제적 지원과 함께 '항만 사용권'을 획득합니다. 항만 사용권을 획득한 다음에는 '항만의 안전확보를 이유'로 중국 해군 함정 등을 보내 군사기지화 시킨다는 전략입니다. 



물론 '지부티 해군기지'처럼 중국의 해외 군사기지는 단순히 해외 군사기지의 역할 외에도 아프리카에서의 영향력의 확대와 국제사회에서 미국처럼 중국의 역할을 강화하려는데 있습니다. 이는 곧,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육상 해상 실크로드'인 '일대일로(一帶一路)'와 함께 진주목걸이 전략'이 모두 녹아난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지부티 해군기지’ 외에도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항구 사용권을 협상 중이며, 최근에는 스리랑카 함반토타 항을 99년 임대하는 항구 운영권을 획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인도양 거점 항구인 파키스탄 과다르 항을 43년 간 임차했으며, 말레이시아에는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거점을 확보했습니다. 


이처럼 중국은 현재 '진주목걸이 전략'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둔 상태입니다. 하지만 미 해군의 해외 군사기지(해군기지)에 비하면 거의 시작 단계이며, 중국이 미국의 해외 해군기지를 처음 카피한 곳이 바로 '지부티 해군기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중국 해군이 카피 중인 미국 해군의 해외 군사기지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전세계 해군력 1위, 공군력 2위인 미 해군은 버지니아주에 세계 최대 해군기지인 ‘노포크 기지(Norfolk naval station)’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1. ‘노포크 기지(Norfolk naval station)’



전세계 해군전력의 70%를 차지하는 미 해군의 최대 해군기지로 미 항모 5척을 비롯해 70여 척 이상의 함선들이 이곳 노포크 기지 14개의 부두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육안으로 봐도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데 대서양함대 사령부와 해군 항공기지, 항공모함/함정/핵잠수함 조선소와 해안경비대 본부 등 30여 개의 군사시설이 밀집되어 있으며, 미 해군 전력의 20% 이상이 노포크 해군 기지를 모항으로 하고 있습니다. 



11km나 늘어진 14곳의 선착장은 직선거리가 6km가 넘고 8만여 명의 운용인원을 수용할 수 있고 미 2함대가 해체되기 전까지 모항으로 사용한 곳입니다. 


미 해군의 함대 구성을 살펴보면,


*이미지 출처-https://goo.gl/eclYDP


제1함대는 1973년 해체되어 3함대에 임무가 이전되었고, 현재의 1함대라 함은 미 본토 해안 경비대가 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2함대는 2011년 예산문제로 해체되고 4함대에 전력이 흡수되어 현재는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4함대가 대서양 함대 임무를 수행합니다.


*이미지 출처-https://goo.gl/eclYDP


노포크 기지의 14개 선착장에는 매년 3000회 이상 함정들이 정박하고 있으며,항공모함과 강습상륙함, 구축함 등이 작전 수행을 위해 대기 중이며, 11개의 비행장 창고에는 134대의 비행기를 수용할 수 있으며, 미국 함대 전력사령부가 있습니다. 



2. 메이포트 해군기지


4함대의 기지인 메이포트 기지는 대서양 함대 사령부 소속의 플로리다 잭슨빌에 있습니다. 주요 임무는 중남미에서 발생하는 상황에 대응하며, 세계 여러 국가와 공동작전 수행 및 마약 단속과 같은 임무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3. 제타 해군기지


40대 가량의 함정과 전력으로 지중해와 대서양 동부를 담당하는 6함대 사령부가 위치한 이탈리아 나폴리 제타 기지입니다. 




4. 진주만 해군기지


진주만 해군기지는 미국 ‘태평양  함대’의 본부가 있는 곳으로 동태평양을 담당하는 3함대와 서태평양을 담당하는 7함대가 서수 함대이다. 




5. 샌디에이고 해군기지


샌디에이고 해군기지는 3함대와 7함대의 '태평양함대의 최대 후방 지원기지'로 규모가 상당히 큽니다. 미국 항공우주연구기관의 미사일 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의 화성 14형이 성능 개선이 이루어지면 1~2년 내에 500kg 핵탄두를 장착해 9700km를 비행해 이 곳을 타격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습니다. 

해군기지 안쪽에는 미 해군의 함정과 상륙함이 정박할 수 있으며, 기지 중앙에는 미 해군 소속 해군 공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6. 괌 해군기지


괌 기지는 아시아에서 미군 전력의 핵심 임무를 수행하는 곳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미군의 해외 군사기지이며, 한반도 유사시 미군의 대북 선제타격 역할을 하는 핵심기지인 '앤더슨 공군기지'가 있으며, 중국과 북한에 대응하기 위한 미군 군사력의 핵심 허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체 영토의 30%를 공군이 사용하고 있으며, 공군 전력과 함께 다수의 전략잠수함과 태평양함대의 모항 역할까지 겸하고 있습니다. 




7. 일본 요코스카 해군기지


미 해군 태평양 함대 소속으로 한반도를 포함한 서태평양을 담당하고 있는 제7함대가 주둔하고 있는 일본의 요코스카 해군기지입니다. 해외에 전진 배치된 미 함대 중 가장 강력하고 한반도 유사시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 하는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군의 핵심 해외 해군기지입니다. 


기본으로 300여 기의항공기와 50여 척 이상의 함선을 보유하는데, 잠시 해당 기지에 전진 배치된 함정을 살펴보면, 


로널드 레이건 – 니미츠급 항공모함 1척

지휘함 – 제7함대의 기함 (블루리지급 1번함)

순양함 – 타이콘데로가급 이지스 순양함 3척

알레이버크급 이지스 구축함 – 존 S 매케인함 외 8척

로스엔젤레스급 원자력잠수함 3척

지원함 4척, 잠수함 지원함 1척



마치며, 펜타곤 자료에 의하면 미국은 해외 800여 곳에 군사기지를 배치하고 있으며, 이중 미 해군은 항공모함 등이 배치된 약 11개의 해외 해군기지를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반면 중국 해군의 해외 해군기지는 이제 시작단계에 불과한 1곳이지만 인도양에서는 이미 항구 운영권 등을 확보한 거점이 다수입니다.  



과거 러시아 군사 전문 매체에서 중국 해군에 대해 평가한 내용에 '중국이 미 해군의 제널드 포드급 항공모함 1대를 격침시키기 위해서는 중국 해군력의 40%에 해당하는 전력을 희생시켜야 가능하다'고 저평가 하였지만,, 


중국 해군은 2009년부터 아덴만에 군함을 파견하면서 해적 대처 활동으로 최근에는 해군의 임무 수행 숙련도가 선진 해군과 비교할 만큼 크게 성장하였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공감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미국은 한해 700조가 넘는 국방비 책정으로 일명 '천조국'이라고 불리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와 국방 예산과 장비 규모, 화력, 물량 등 모든 면에서 전 세계를 통틀어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미군 전력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항모전단 외에도 상비군 140만 명, 예비군 110만 명의 규모도 엄청나지만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대의 규모는 각 임무에 따른 작전 특성과 인원에 맞게 편성하여 다양하게 운용 중이며, '특수작전사령부(SOCOM)'은 미국의 육,해,공군, 해병대의 지휘체계를 통합하여 창설된 미군 특수부대의 통합지휘체계로 세계 최강 특수부대 델타포스의 최초의 실패 작전인 '독수리 발톱 작전'이 원인이 되어 창설되었습니다. 오늘은 "세계 최강 특수부대 델타포스의  최초의 실패이자 황당한 인질구출 작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미군 특수부대를 보면 적 기지에 은밀히 침투하여 적을 제압하고 인질을 안전하게 구출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특수부대들 중 최강으로 알려진 델타포스의 첫 작전은 '독수리 발톱 작전'이었습니다. 



이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후 1979년 11월 이란 혁명군에 의해 미 대사관이 점거되었고, 이때 52명의 미국인이 인질로 잡힙니다. 당시 미국 대사관 인질들은 444일 동안이나 억류되었고, 델타포스의 ‘독수리발톱 작전’은 이 기간 중에 실행된 미국의 인질 구출 작전이었습니다.  


1980년 4월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은 델타포스를 보내 52명의 인질을 구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작정명 '독수리 발톱 작전(Operation Eagle Claw)..' 인질들을 독수리가 먹이를 낚아 채듯 멋지게 구출한다는 뜻이었을까요?


당시 미국의 카터 행정부는 비대해진 CIA의 덩치를 축소시켰었는데 이로 인해 CIA의 정보수집 능력은 일시에 엉망이 되었습니다. 때문에 이란 내 정보수집을 위한 CIA요원은 전무했고 더구나 이 작전은 그 당시 미국의 육해공, 해병대 각 군이 자신들의 입지를 위해 개입하면서 식속하게 이루어져야 할 작전이 굉장히 복잡하게 계획되었습니다. 



지금과 다르게 당시 미군을 보면 '특수작전 사령부'이하 여러 조직들은 체계가 잡혀 있지 않았습니다. 델타포스가 처음 실전에 투입되는 이 작전에 미 육군, 해군, 공군, 해병대가 전공을 올리려고 끼어들면서 장비와 인원 구성 그리고 명령체계까지 복잡해졌고 이미 작전 자체가 엉망이었지만 일단 작전은 시작되었습니다...



일단 작전을 위해 120명의 델타포스 팀과 15명의 레인저스가 데저트 원에 모여 실질적인 작전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은밀하게 진행되어야 할 인질 구출 작전이 시작부터 꼬이기 시작합니다ㅠㅠ


데저트원에 집결 중에 대원 하나가 지나가던 유조선 트럭이 정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바주카포로 날려버리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일단 이란군들이 모여오는 것도 모르고 요란한 축포를 뒤로한 채 팀원들은 작전에 동원될 헬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작부터 문제가 또 하나 있었는데 이 작전을 말아 먹은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작전에 사용되었던 헬기입니다. 



당시 작전에 사용되었던 헬기인 RH-53D는 특수 작전용 헬기가 아니라 해군의 기뢰 제거용 소해 헬기였습니다.. 결국 임무를 위해 데저트 원으로 여러 대의 헬기가 출발했지만 이동 중에 헬기 한 대는 고장으로 사막에 버렸고, 다른 헬기는 고도 표시기 고장으로 임무를 포기하고 복귀했으며, 야간에 사람의 모래바람을 뚫고 겨우 데저트원에 도착한 6대의 헬기 중 1대는 어이없게 고장으로 작전 투입이 불가능해졌습니다.


(소해 임무 외에 육지로 장거리 임무를 수행한 경험이 없어 정비에 소홀했던 이유로 고장)


작전 수립 당시 독수리 발톱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 6대의 헬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남은 5대로는 작전을 수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황당한 이유로 준비했던 작전을 접어야 하는 상황이 닥쳤습니다. 곧 지휘관은 대통령과 통화 후 독수리 발톱 작전을 모두 취소하고 부대로 복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국..



하지만 여기서 또 문제가 발생합니다. 복귀하던 중 헬기 한 대가 공중 급유를 받기 위해 C-130 수송기 뒤로 접근했지만 사막의 모래폭풍 때문에 헬기는 곧 C-130의 프로펠러와 충돌한 후 수송기와 헬기 모두 추락하였고, 결국 이 사고로 C-130과 헬기 승무원 등 8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이 요란한 작전으로 몰려왔던 이란군은 이 상황을 즉시 파악하였고,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자국 방송을 통해 전 세계에 모든 상황을 송출하였습니다.


"미국의 최강 특수부대가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작전에 투입되었지만 시작도 못하고 수송기와 헬기가 추락해 사상자만 발생했다." 


세계 최강의 군대를 보유한 미국은 이 작전으로 전 세계에서 망신을 당했고, 미국의 여론 조차 독수리 발톱 작전에 대해 싸늘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결국 다음날 오전 미 백악관은 인질 구조작전의 실패를 발표하였고, 영화처럼 멋지게 끝났으면 좋았을 최강의 특수부대 ‘델타포스’의 첫 작전은 결국 이렇게 델타포스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고 끝났습니다. 



마치며, 세계 최강 특수부대 델타포스의 첫 실전 투입이자 황당한 이유로 실패한 작전인 '독수리 발톱 작전'은 비록 첫 작전에서 사상자를 발생시키며 실패한 실적을 남기게 되었지만 이후 이를 교훈으로 미국은 합동특수전사령부(JSOC)를 창설했으며, 후일 해군 소속의 대테러 특수부대인 씰6팀 (SEAL Team Six)이 창설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씰6팀은 후일 데브그루(DEVGRU)로 재창설 되었고, 델타포스는 명실공히 세계 최강의 특수부대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추천글>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공감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지난 4월 북한의 미사일과 핵에 의한 추가 도발 가능성으로 북한 선제 타격설이 대두된 가운데 한반도는 또 한 번 전쟁 위기설에 휩싸였습니다. 특히, 시리아 화학무기 공습에 대한 즉각적인 미국의 응징과 미국의 대규모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는 한반도 전쟁가능성이 더 확실 시 되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공개적으로 북한 선제타격에 대한 행동들을 보여준 이유는 미국이 북한의 추가도발 가능성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냄과 동시에 중국이 북한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하도록 하기위한 미국의 중국과 북한 양쪽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작용했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한반도 위기설이 극도로 증폭되고 있을 때, 이웃나라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는 오히려 한반도 위기설을 떠들면서 일본 내 안보불안을 부추기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오늘은 이웃나라 일본이 한반도 위기가 고조될 때마다 '한반도 전쟁 위기설을 부추겼던 일본의 속내'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한반도에 미국의 선제 타격설과 함께 일본 내 한반도 전쟁 위기설이 어떤 식으로 대두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북한의 사린 신경가스 미사일 탄두 탑재 가능성



지난 4월 13일, 국회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미국이 시리아를 폭격한 직후 북한이 사린가스를 미사일 탄두에 장착하여 발사할 능력을 보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결국 이후에 일본 내부에서는 현재 일본 헌법이 ‘전수방위’만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 등이 예상될 경우 일본이 자체적으로 도발원점을 향해 선제타격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2. 한반도 유사시 일본으로 유입되는 피난민 선별적 대응



북한의 사린가스 탄두미사일 능력이 있다는 발언 이후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또 한 번 일본 내 한반도 전쟁설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했습니다. 한반도 유사시에 일본으로 유입되는 피난민들의 입국절차와 수용시설 설치, 일본이 보호해야 할 사람에 대해서 선별적 대응을 하겠다는 내용입니다. 


당시 이 발언은 한반도에서 긴장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국민들에게도 전쟁에 대한 불안감을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국내에서도 논란이 되기도 했었죠.



3. 한반도 유사시 한국에 체류 중인 일본 국민 구출 대책



일본 외무성 통계에 의하면 한국에 체류 중인 일본인은 4만여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일본은 2016년 3월 해외 체류 중인 일본인을 보호, 구출하는 훈련을 실시했었습니다.) 일본은 공개적으로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을 위해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가는 것과 주한 미군에게 일본인 보호와 수송을 위탁하는 방법 등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한반도 전쟁 위기설을 더욱 부추겼었죠. (미국은 한국내 미국인이 20만 명이 넘는데도 조용~)


참고로 주한민군은 한국 내 미국인 대피 훈련인 '커레이저스 채널'을 매년 1~2회 정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4. 북한 탄도미사일이 일본 본토 타격 시 피난훈련



2017년 6월 8일 북한은 지대함 순항미사일 시험 발사를 했습니다. 이 미사일은 2015년 2월에 있었던 북한 신형 고속함에서 발사했던 함대함 미사일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으며, 러시아가 개발한 ‘KH-35우란’과 비슷한 기종으로 8일에 발사했던 북한의 미사일 실험으로 일본은 비난과 함께 아베 신조 총리는 탄도미사일에 대한 대피훈련을 지시하였습니다.


그리고 전문가들까지 나서 북한의 탄도미사일이 일본에 미치는 영향 등을 평가하면서 일본 국민들의 긴박감을 높였는데,, 에혀 
이처럼 일본은 한반도의 전쟁분위기가 고조됨에 따라 오히려 상황을 더 부추기는 듯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 이유는 아베 정권이 실제로 한반도의 제2전쟁을 부추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분위기를 이용하여 "자위대를 군대화" 시키려는 의도입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 군대를 보유할 수 없고, 자국에 대한 직접 또는 간접적 침략으로부터 일본을 방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자위대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일본 자위대의 군대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은 이러한 일본의 헌법 개정을 위한 중요한 원인 제공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한미일 3국의 합동 미사일 방어 훈련은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이 향후 적극적으로 군사활동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과 북한의 미사일에 대한 위협으로부터 일본이 적극적으로 선제공격할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입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일본 헌법 제9조인 평화헌법 조항 때문에 군대를 보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일본의 집단 자위권사실상 일본에 무력공격이 발생했을 때와 동맹국이 공격을 받아도 집단 자위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으로 한반도 유사시 직접 간접적으로 한반도 상황에 일본이 개입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일본은 아주 오래 전부터 차근차근 자신들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퍼즐을 끼워 맞추고 있습니다. 


한반도 위기설을 부추겼던 지난 4월, 일본은 관방장관, 외무상, 방위상이 연달아 한반도 유사시 자국민의 탈출과 귀국 방안을 거론했으며, 심지어는 자민당 차기 총리 후보 중 한 사람은 ‘서울이 불바다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로 일본 내 한반도 위기설로 자위대의 무장과 함께 적 기지에 대한 선제타격 능력을 보유함과 동시에 스캔들로 지지율이 하락한 정부 내각의 지지율 회복을 목적으로 한반도 위기설을 최대한으로 부추겼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현재 국제사회에서는 국가간 힘의 논리와 국제법이 우선하기 때문에 우리의 헌법만을 가지고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과 자위대의 군대화에 반대 주장을 펴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3조에는 '대한민국의 영토를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비록 분단된 상황이라도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 전역에 미치며, 북한 주민들 역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보는 근거가 됩니다. 하지만 2015년 한일 국방장관회담에서 일본 방위상은 경악할 발언을 하게 되는데,, 

“대한민국의 유효한 지배가 미치는 범위는 
휴전선 남쪽이라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



당시 일본 방위사의 이러한 발언의 팩트는 결국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 유사시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 북한에 진입할 수 있다’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당시 이 발언의 문제는 이슈화 되었고, 일본은 곧바로 한반도 유사시 한국 정부의 동의를 받을 거라는 입장을 표명하였는데,,



또한 이 문제는 당시 한국의 전시작전권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해서 유사시 전시작전권을 가진 미국이 일본의 한반도 상륙을 한국정부에 요청한다면, 한국 정부는 과연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깊이 생각해 봐야 할 점으로 부각되기도 했습니다.  



마치며, 지금 일본은 알려진 대로 '보통국가화'되고 있으며, 일본은 일본 정부의 미일 신가이드라인과 안보법 등 제도의 정비까지 마친 상태입니다. 그들이 내세우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나 '적극적 평화주의'는 일본 내에서 반대하는 세력도 있지만 이미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고, 이제 남은 건 '헌법개정'이라는 점에서 한반도 위기설은 일본에 있어서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가 되고 있는 셈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공감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최근 들어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관련된 뉴스를 자주 접하게 됩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북한은 매주 탄도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가 북한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북핵전문가들은 머지않아 북한이 또 한번 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핵 소형화를 위한 6차 핵실험을 실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즉, 북한의 6차 핵실험은 핵무기를 탑재한 ICBM의 실전 배치를 의미하며, 이는 곧 가까운 미래에 한국이 마주하게 될 현실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36년 전 한국과 비슷한 안보상황에 있었던 이스라엘이 이라크의 핵 위협속에서 ‘예방적 자위권’을 실제 군사 작전으로 실행했던 최초의 대표적 사례로 알려진 이스라엘의 핵 시설 정밀폭격 실화 ‘바빌론 작전(오페라 작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예방적 자위권' (preventive self-defense)이란?
‘대량살상무기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선제공격을 뜻합니다.’



1960년 2월, 프랑스는 전세계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알제리에서 프랑스 최초의 핵실험을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뛰어난 핵 관련 기술과 우연한 기회에 발견된 프랑스 국내 우라늄 광산의 우라늄을 여러 국가에 판매하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변 아랍국가들과 긴 역사 동안 갈등을 겪으면서, 실전 경험이 많은 정예강군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하지만 아랍연합과의 갈등은 핵 보유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이후에 이스라엘은 프랑스의 핵 관련 기술의 도움을 받은 여러 국가 중 하나로 핵 개발을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갈등 중인 국가에도 핵 관련 기술들을 수출하는 황당한 상황을 연출하게 되는데, 그 당시 프랑스가 이스라엘과 별도로 핵 기술을 판매했던 국가는 다름아닌 이라크였습니다. 

이라크는 70년대 후반부터 프랑스의 지원아래 비밀리에 바그다드 남동쪽 18km 지점에 ‘오시라크’ 원자로를 건설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석유가 넘쳐나는 산유국 이라크가 갑자기 원자로를 건설하는 것은 누가 봐도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라는 것을 이스라엘과 국제사회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이스라엘의 안보상황이 이라크의 핵무기 확보를 절대 용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했었죠.



1979년에서 1980년 사이, 당시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프랑스의 핵 기술이 이라크로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벌였던 사건으로 추측되는.. 프랑스에서 원자로 노심을 이라크로 운반하던 화물선의 폭파 시도와 이라크 핵 개발 책임자의 의문사 등의 여러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후 이스라엘은 모사드를 이용해 음지에서 여러 작전을 펼친 반면, 정부에서도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이라크의 핵 개발 저지에 나섰지만 별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직접 물리적으로 


이라크의 핵 시설을 타격하기로 결심합니다. 



1981년 6월 7일, 이스라엘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엄청난 작전을 성공 시킵니다. 


작전명,

'바빌론 작전'

세계 공군사의 큰 획을 그은 대사건입니다. 


바빌론 작전이 실행되기 전, 이스라엘에서 바그다드까지의 직선거리는 거의 1000km 정도 되는 거리로 80년대 초의 이스라엘은 1000km가 넘는 미사일도 없었고, 궁중급유를 유도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목표는 바그다드 남동쪽 18km 지점에 위치한 ‘오시라크’ 원자로!


이스라엘은 오시라크 원자로 폭격에 F-16 전투기 8대를 이용하기로 하고, 보조연료 탱크에 연료를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F-16 1대당 2000파운드의Mk 84 폭탄을 2개씩 장착하고 6대의 F-15가 좌/우/후미에서 각 2대씩 호위를 담당하기로 했었죠.


1981년 6월 7일, 오후 2시 55분



F-16, F-15 편대가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남쪽 국경을 타고 비행하기 위해 ‘에치온 기지’를 발진했는데, 스텔스 기술이 없어 이라크의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사막을 30~90m로 초저공 비행을 하였고, 일부 지역에서는 레이더에 민항기처럼 보이기 위해 무리를 지어서 비행했습니다. 목표 원자로가 가까워지자 편대는 에프터버너를 켜고 2000m까지 급상승 후 원자로를 향해 급강하 폭격을 실시했습니다.





당시에는 벙커버스터, 스마트폭탄이 개발되기 전이기 때문에 원자로 내부까지 확실히 파괴하기 위해 중력가속도를 이용한 다이브 폭격을 시행했습니다. 


Mk84 폭탄은 2000파운드 비유도 재래식 항공 폭탄으로 강력한 폭발력, 파괴력으로 대다수의 항공 폭격 임무에 사용되는 폭탄입니다.

▲Mk84 폭탄


투하된 16발의 폭탄 중 14발이 원자로에 적중했고, 2발은 불발탄, 나머지 12발은 정확하게 원자로 노심까지 완전히 날려버렸습니다.



이스라엘 F-16 전투기의 작전을 살펴보면,


당시 8기의 F-16 전투기는 폭탄 시한 장치는 5초 단위로 폭발하도록 셋팅이 되어 있었는데, 선두의 첫 폭탄 2개는 원자로의 외벽을 폭격하여 파괴하고, 외벽이 파괴된 원자로 건물에 다음 전투기가 다시 5초의 시간차를 두고 터지는 폭탄을 투하, 같은 위치에 그 다음 전투기가 다시 폭격, 이런 식으로 마지막 F-16기의 2개의 폭탄은 지하의 원자로까지 침투하여 폭발하도록 작전이 수행되었습니다. 


폭격이 이루어진 시각 원전 인근에 위치한 이라크의 SA-6 지대공 미사일 포대와 방공포대가 있었지만 큰 저항은 없었다고 합니다. 



후일담으로 당시 이스라엘의 주력기는 F-4팬텀이었지만 운항거리가 800km로 바빌론 작전에 투입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미국이 이란에 판매하기로 했던 F-16 78대가 이란 혁명으로 발주가 취소되었고, 덕분에 이스라엘은 운 좋게 헐값에 구입할 수 있었죠.


그리고 원전 공습 직후 이스라엘은 전세계에 이라크 원자로를 파괴했다고 발표하였고, 세계의 여론은 비난의 화살을 쏟아부었습니다. 


특히, 이라크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전폭기들에 의해 영공을 침범당한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의 비난이 더욱 거세게 비난했습니다. 또한 미국 역시 이스라엘의 이라크 원자로 폭격을 거세게 항의하였고, 이스라엘에 대한 F-16 수출을 중단하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내면은 ...
오히려 ‘바빌론 작전’이 성공하자 미국은 이스라엘 덕분에 자신들의 최신 전투기 F-16의 성능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공군이 정밀 유도폭탄이 아닌 재래식 폭탄으로 세계 최초로 원전 폭격을 한 대담성과 공군 기술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 이스라엘에 대한 세계 여론이 잠잠해지자 미국은 대 이스라엘에 대한 F-16 전투기 수출을 슬쩍 재개하였습니다. 


이후 이라크는 ‘바빌론 작전’으로 허술한 대공망이 만천하에 드러났었고, 이스라엘 전폭기들이 저공비행으로 자신들의 영공을 날아가도 몰랐던 사우디아라비아는 미국 공중조기경보기 2대를 도입합니다^^


이스라엘에 이라크의 원전 정보를 제공했던 이란은 ‘바빌론 작전’을 교훈삼아 이후 자신들의 핵 시설은 전국으로 분산시켰고, 지하에 만듭니다. 그리고 핵 시설 위치 역시 이스라엘 전폭기들의 작전거리를 벗어난 내륙에 만드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또한 원자로를 폭격당한 후세인은 핵무기 개발을 공언하고 다시 원자로를 재건 했지만 결국 이라크전 이후 교수형에 처해집니다. 만일 바빌론 작전이 성공하지 못했다면, 후세인은 원자로에서 얻은 플로토늄으로 1991년 걸프전까지 원자탄을 완성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과 다국적군은 핵무기를 보유한 이라크와의 전투가 쉽지 않았을 것이고, 2003년 미군의 이라크 침공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마치며, 군사적 모험주의가 갖는 폐해는 분명 있습니다. 하지만 적들에게 만만히 보인다면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의미한 희생뿐입니다. 서해교전,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 목함지뢰 사건 등에서도 우리의 희생은 있었지만, 북한이 두려워할 만한 별다른 대응이 없었습니다.  


예전 북핵 위기때 미군의 F-117스텔스기 15대가 평양상공에서 무력시위를 했을 때 김정일은 굴욕적으로 몇 달 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지금의 저들이 전술핵을 100% 완성한다면 상황은 또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한국은 가까운 미래에 전술핵을 보유하게 될 북한에 대한 획기적인 대책이 시급한 시기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공감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고려의 명장이자 무신으로 알려진 최영 장군(1316~1388)은 문신의 집안에 태어났지만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장사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틈만 나면 병서와 무술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이후 당대 최고의 무인이 되어, 왜구 토벌, 난 진압, 홍건족 격퇴 등 수많은 공을 세우면서 고려 최고의 벼슬까지 오릅니다. 하지만 영원할 거 같았던 최영 장군의 권세도 결국에는 자신이 믿었던 이성계에게 당하고 마는데 그들에게 어떤 이유가 있었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황산대첩 이후 이성계를 최고의 무장으로 인정


이성계의 동북면 군대는 강한 충성심과 조직력을 갖춘 최고의 군대였습니다.

특히 황산대첩에서 이성계가 왜구를 크게 무찌르자 최영은 이성계의 능력에 크게 감탄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총서>

황산대첩 승리 후 '최영이 이성계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공이 아니면 누가 능히 이일을 하겠습니까'

- 최영 장군은 이성계를 무인으로 인정합니다.


이렇게 둘의 만남은 최고의 조합인듯 했습니다.





이성계는 고려를 구한 충신이었다


여진족이 관할하는 지역에서 아버지와 함께 몽골에 충성하며 살았던 그는 고려에 투항한 뒤, 30여 년 동안 고려에 일편단심 충성하며, 수없이 많은 공을 세웁니다. 이런 이성계를 최영 장군은 믿을 수 밖에 없었죠.


그리고 최영의 오랜 숙원이었던 요동정벌 계획에 따라 이성계에게 5만의 대군을 내어주고 자신은 왕과 함께 남아있습니다. 최영 장군은 모든 군사를 이성계에게 준다는 것은 분명 큰 모험이었지만 그의 충심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보면, 명나라는 공민왕이 회복했던 철령 이북의 땅을 자신들에게 반납하라고 생떼를 부립니다. 이때 최영 장군은 이미 자신이 철령 이북의 땅을 수복할 때 전투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명나라의 억지에 분을 참지 못하고 오히려 요동을 정벌하려는 계획을 세우게 됩니다. 

하지만 

이 결정이 그가 이성계에게 패하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는 걸 그 때는 몰랐었죠.





두 사람의 의견 대립, 그리고 요동정벌


명나라는 철령 이북의 땅을 요구하는데, 이때 이성계는 외교적 협상을 주장하였고 최영의 요동정벌을 주장하며, 두 사람의 의견에 대립이 생깁니다. 

당시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으며, 시기적으로 출정이 힘들고 요동으로 출정을 하면 남쪽으로 왜구에게 허점을 보일 수 있다고 주장을 하는 등 이미 요동정벌이라는 나라의 큰 과업에 앞서 두 사람의 의(義)는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거 같습니다. 


<이성계의 요동 4불가론>

① 여름철에 군대를 파견하면 안된다.

② 남쪽의 왜구가 침략할 수 있다.

③ 장마철 전염병이 예상된다.

④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 




위의 ④ 번의 주장은 무인이었던 이성계의 생각이라기 보다 당신 신진사대부 등 성리학자들과 사전 교감이 있었음을 의미하는데, 벌써부터 이성계를 중심으로 세로운 나라를 꿈꾸는 세력들이 뭉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이쯤되면 두 사람의 대립의 골이 상당히 깊었다고 생각됩니다.





최영, 5만의 군사를 내어주다. 위화도 회군


1388년 4월 18일, 드디어 고려의 5만 요동 정벌군이 출정합니다. 

하지만 예상했던 대로 장마로 인해 강의 물이 불어 더이상 행군이 어려워 이성계의 대군은 위화도에 임시로 주둔하게 되었죠.

마침 고민 끝에 이성계는 우왕에게 직접 회군을 청하는 글을 올립니다. 하지만 우왕과 최영은 진군을 독촉하는데... 


이제 자신의 결정만이 남은 순간.


▲회군한 이성계와 대치중인 최영


결국 왕명을 거역하고 회군한 이성계는 신진 사대부와 신흥 무장들과 함께 개경으로 돌아와 우왕은 쫓아내고 최영은 유배를 보낸 후 참형 시킵니다.





역사에서 승자와 패자를 결정짖는다면   

두 분 모두 훌륭한 분이지만 최영은 나라에 대한 충정은 있었지만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했고, 이성계는 새로운 시대를 향한 비전과 신진 사대부라는 새로운 파트너가 있었다는 점이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공감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해양 주도권 경쟁은 최근 들어 매우 치열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뜨거운 감자로 미국과 중국의 해양 전력 경쟁은 주변국의 안보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국의 서해와 남중국해, 태평양까지 중국의 바다에 포함시키고 현재 더욱 노골화되고 있는 중국의 해양패권의 야망인 ‘도련 전략’(A2AD; 반접근 지역거부)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중국의 '도련전략'이란 

간단히 말씀드리면 '섬을 연결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도련 전략’은 중국 해군의 태평양 진출 계획선이자, 중국 해안의 적극 방어선인 두 개의 도련선에 기반한 중국의 적극적 대전략입니다. 이는 미국이 반접근, 지역거부(A2AD)라고 부르는 중국의 근해적극방어 전략의 방어선 설정을 겸하는 전술적 전략입니다. 



도련전략은 1980년대에 중국 해군사령관 류화칭이 만들었는데, 오늘날 중국의 동아시아권에서 패권 확장과 함께 미국의 해양세력의 접근거부의 핵심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제1도련선은 사세보와 오키나와, 대만,필리핀에 이르는 남중국해를 감싸도는 형태이며, 제2도련선은 일본의 요코스카에서 괌을 지나서 마리아나 제도까지 이어져있습니다. 



즉, 중국의 도련전략의 제1도련선은 유사시 적이 접근하면 도련선 내에 기뢰, 잠수함, 연안함대 등을 동원해 적함대가 도련선 내에서 작전과 상륙을 할 수 없도록 거부하는 목적입니다. (한국의 서해도 포함됩니다). 



그리고 제2도련선은 중국의 함대 작전반경을 더욱 확대해서 아예 남중국해 일대로 접근자체를 거부하여 무역로 확보와 함께 미 항모의 작전반경에 중국 본토가 들어가지 않도록 거부, 접근 시 격파하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매우 공격적인 전략입니다. 


중국은 미국의 해양전력을 상대로는 물량이나 질적으로 상대가 되지 않기 때문에 ASBM(ANTI SHIP BALLISTIC MISSILE)의 전진 배치와 항모기동함대의 창설이 필요했습니다. 



결국 태평양으로 진출하려는 중국의 이 전략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중국 해군력 증강과 함께 A2AD(반접근 지역거부전략)를 진행하면서 이를 실행할 수 있는 수단의 개발이 필요했는데 이후 중국의은 항공모함과 둥펑 21D 대함탄도미사일을 실전 배치하기에 이릅니다. 




먼저 중국의 A2AD(반접근 지역거부전략)에 포함되는 둥펑 21D의 실전 배치로 미국 항모전단이 동아시아에서 후퇴시키려는 목적이었으나, 둥펑 21D 대함탄도미사일의 뛰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해양전력에 큰 위협을 가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때문에 중국은 항모전단의 필요성을 느끼고 지금도 꾸준히 해양전력을 증강시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중국의 해양 팽창전략은 남중국해 일대의 장악과 태평양에서 미국의 해양전력에 대한 정면도전이기도 합니다. 



또 하나, 중국은 이후 도련선 내의 섬과 암초에 대한 영유권 주장과 함께 주변 아시아 국가들과 분쟁을 자주 일으켰는데, 분쟁지역을 보면 그들이 주장한 제1도련선과 정확히 일치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의 태평양진출 전략에 따른 주변국과의 영토 마찰로 당시 미국과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을 맹비난 했습니다. 특히, 일본은 중국과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에 대해 분쟁이 발생하자 중국이 센카쿠 열도를 침략하면 중국에 대한 군사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었습니다.  



중국의 도련선은 한국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중국은 이어도 상공의 영유권 주장과 함께 중국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였는데, 이는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하는 행위였습니다. 당시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와 한국의 해양기지가 있는 이어도 상공의 중국 영유권 주장은 아이러니 하게도 한국 언론에서는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중국은 실제로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에 대규모 군용기로 수시간 동안 침범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침범했던 군용기는 H-6 폭격기 6기, Y-8 조기경보기 1기, Y-9 정보수집기 1기 였습니다.


중국의 도련 전략은 주변국가들의 암초나 섬 등을 중국의 해양 팽창 전략의 기지화의 발판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으로 해당 주변국은 중국의 군사적, 외교적 압박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미국의 힘을 빌리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국과 분쟁 중인 주변국들이 반응



최근 미국과 결별을 선언하기도 했던 필리핀은 얼마전까지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패권 확장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과 군사 공조를 강화해 왔으며, 미국과 대규모 연합 군사훈련까지 실시했었습니다. 


그리고 베트남은 21년 만에 남중국해 전략적 요충지인 깜라인만에 미 군함의 방문을 허락하였고,현재 2단계 공사가 완료되면 항공모함 잠수함, 민간 선박 등18척의 선박이 동시에 접안 할 수 있게 됩니다. 당시 베트남의 파격적인 미 해군기지 건설의 허용으로 중국은 베트남에 즉시 무역보복과 함께 외교적 압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사진 중앙 깜라인만 해군기지의 미 항공모함


또 일본은 센카쿠열도 일대에서 적국에게 탈취당한 도서의 재탈환을 목적으로 대규모 강습훈련과 함께 기동함대의 훈련을 실시하였는데, 이에 중국은 당시 중화인민공화국 국방장관을 통해 ”중화인민공화국은 언제나 준비되어 있다.”라는 발표와 함께 만일 센카쿠 열도에 일본병력이 상륙한다면 무차별 사격을 가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상황에서 당연히 미국은 일본의 편을 들었고, 일본의 영유권 확보를 위한 자위권 발동을 지지한다는 성명까지 발표했었죠.



그리고 당시 한국의 상황을 살펴보면, 당장 북한의 핵 위협과 미사일 위협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는 시기였고, 한국은 북한이 대량으로 보유하고 있는 스커드 C 계열의 탄도미사일에 대응하기 위해 독일에서 중고 패트리어트 PAC2를 도입하게 되는데, 문제는 패트리어트의 방어구역은 반경 20~25km, 고도 15km이내의 범위로 수도권 일대와 중요 공군기지를 중심으로 배치하는 수준에 불과했습니다.


북한 스커드 C (화성6호) 미사일 

사거리 500km, 탄두 중량 700kg의 단거리 탄도미사일입니다.

▼패트리어트 PAC2


이때 미국은 미국 MD 전략의일부로 탄도탄 요격을 위해 개발된 시스템인  고고도방공체계(THAAD)를 한국 정부에 제안하였고, 지금도 사드의 배치는 중국의 큰 반발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제인 중국의 도련 전략에 따른 한국의 현재 상황의 이해를 위해 사드에 관한 짧은 내용을 추가하자면, 


한국에 배치된 사드(THAAD)의 레이더 사정거리는 상하이까지이며, 이는 중국의 북해 함대와 둥펑 21D 발사대가 있는 곳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일 중국의 도련 전략이 성공한다면, 유사시 한반도의 서해와 남해로 증원될 미 태평양 함대의 진입이 차단되어 북한과의 전면전이나 중국의 한반도 침공 시 미군의 증원 병력의 전개가 불가능해집니다. 


때문에 중국의 도련 전략이 노리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도련선 확보를 통해 한미일 삼각동맹 공조체계의 와해와 동북아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축소시키기 위한 공격적 전략입니다. 



2010년 7월 서해에서 계획되었던 한미 연합대잠전(ASW)훈련을 살펴보면


2010년 3월 북한의 천안함 격침 도발에 대한 대응조치의 일환으로 2010년 7월 서해에서 계획되었던 한미 연합대잠전 훈련을 중국은 미 해군이 한국의 서해에서 훈련하는 것을 중국에 대한 위협 행위라며 강력하게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중국이 반발했던 내막을 살펴보면, 미 항모의 서해 접근을 거부함과 동시에 한국의 서해를 중국의 내해화하려는 전략이 숨어있었습니다. 이는 곧 서해에 대한 미 항모의 반접근 지역거부(A2AD)전략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무력시위도 불사하겠다는 중국의 강력한 반발 때문에 한국과 미국은 훈련 구역을 서해에서 동해로 변경하는 오류를 범했었는데, 이는 곧 한미 연합군이 중국에 굴복하는 듯한 모습과 동시에 동맹국에 대한 미국의 방어 의지에 대한 불안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한미 연합군은 중국의 압박으로 동해로 변경했던 훈련을 2010년 11월 말에 다시 서해에서 미 해군 항모 조지 워싱텅호의 참가와 함께 연합훈련을 실시하였고(당시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이는 곧, 중국의 도련 전략에 의한 중국의 반접근 지역거부(A2AD)전략이 결코 쉽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고, 미국은 동맹국의 지역 방위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 시켜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중국은 도련 전략을 통해 미국의 동아시아 해역에 진입을 막아 무력화 시키고, 미국의 군사력 지원과 유사시 미군 증원을 받지 못하는 동아시아의 주변 국가들을 상대로 그 동안 증강시켜 놓은 해공군력을 동원해 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야망을 드러낼 것입니다.


마치며, 중국의 제1 도련선에는 한국의 서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해군은 그 동안 대북한 견제를 위해 연안전력 위주의 해양전력을 키워왔는데, 이제는 북한에 한정된 전략 외에, 멀지않은 미래에 있을 해상 분쟁에 대비해 주변국에 대한 체계적인 전력계획을 수립하여 해양 전력 증강에 혼란과 차질이 없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공감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몇 년 전부터 느닷없이 불거진 땅굴 논란은 많은 분들이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며, 땅굴의 존재 유무에 대한 의견도 다양합니다. 그 논란의 내용을 살펴보면, 경기도 양주와 일산, 청와대 밑으로 무려 84~100여개 이상의 땅굴이 존재하며, 북한군과 전차가 대기할 수 있는 땅굴기지가 있다는 주장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 뒤로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땅굴의 존재 유무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한 것 또한 사실입니다. 



과연 북한의 수도권 남침땅굴과 대규모 땅굴은 수도권 지하에 존재할까요? 한밤에 들려오는 쿵쿵거리는 소리와 기계 장비가 가동되는 소리, 그리고 부쩍 많아진 싱크홀은 정말 땅굴과 관련된 것일까요? 

그럼 지금부터 "북한의 수도권 대규모 남침땅굴이 존재한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취합해서 양쪽 의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현재 발견된 북한의 남침용 땅굴은 모두 4개입니다. 위치만 봐도 남침을 위한 목적으로 만든 땅굴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발견된 4개의 남침용 땅굴 외에 "북한의 대규모 수도권 남침땅굴은 존재한다"와 "북한의 대규모 수도권 남침땅굴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북한의 대규모 수도권 남침땅굴 존재한다! 



한국 최초의 지하철 1호선(서울역~청량리역 9.5km)은 일본의 기술을 대부분 제공받아 시공되었습니다. 반면에 북한은 소련의 기술을 제공받아서 한국보다 1년 앞서 지하철을 개통했습니다. 북한의 굴착기술이 한국보다 뛰어나다고 보는 이유가 있는데 바로 심도(깊은 정도)와 공사 방식 때문입니다. 

심도의 경우 한국은 지하 50m, 북한은 지하 150m에 주로 건설되기 때문에 북한이 세계 최고의 땅굴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입니다.



또한 공사 방식에서도 북한이 우수하다고 하는 이유는 한국의 경우 절개식인 선로 위쪽을 파고 복공판을 설치하여 작업하는 반면, 북한은 비절개식으로 상층부를 파내지 않습니다. 대규모 남침땅굴이 존재하다고 주장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땅굴이 얼마나 깊숙이 있는지 또 굴착 방식만을 놓고 봤을 때 북한의 굴착 기술이 한국보다 뛰어나다는 것이죠.



그럼 굴착 작업시 발생하는 많은 양의 지하수와 버럭(땅 굴착 시 나오는 흙, 돌), 환기 등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 것일까요? 



1. 남침땅굴 공사 시"지하수 처리방법"


군사분계선 부근은 화강암 지역이 대부분인데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곳은 지하수가 많지 않습니다. 설사 지하수가 있다고 해도 특정 공법이나 일부 고인 물을 기계를 통해서 처리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2. 남침땅굴 공사 시 "버럭 문제 해결방법"(탈북자 증언)


북한군 6사단 장교 출신 귀순자의 증언을 살펴보면, "북한은 한국지역 폐광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고, 남침용 땅굴 굴착으로 생기는 버럭은 폐광을 이용해서 감쪽같이 처리한다."고 밝혔으며, 


푹풍군단 대위 출신 탈북자의 증언내용에서는 "버럭을 자갈형태로 만들어서 포대에 담아놓고 미국의 군사위성이 지나가는 시간을 이용해서 북한의 중요한 대규모 공사현장(평안-원산간 고속도로 등)으로 이를 옮겨서 없앤다." 


4군단 공병대 출신 탈북자의 증언내용에서는 "북한이 최고로 자랑하는 서해안 남포시 갑문 공사 때 남침용 땅굴에서 나온 버럭을 사용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처럼 탈북자의 증언을 토대로 수도권 대규모 남침땅굴이 존재한다고 주장합니다. 


3. 남침땅굴 공사 시 땅굴 내부 "공기순환 문제 해결방법"




깊은 땅굴 속에서는 공기 순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잠수함에서 사용하는 산소 발생 장치를 갱 안으로 옮겨 산소 문제를 해결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완성된 남침땅굴에 수십 개의 땅굴을 가지치기 형태로 굴착하면 부족한 산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죠.


*지금까지 북한의 수도권 대규모 남침땅굴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의견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내용이 다음에 설명드릴 "2. 북한의 대규모 수도권 남침땅굴 존재하지 않는다!"보다 다소 부족한 이유는 과학적인 근거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2. 북한의 대규모 수도권 남침땅굴 존재하지 않는다!


수도권 땅속에는 정말 북한의 남침용 대규모 땅굴이 존재할까? 땅굴의 존재에 대해서 걱정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부터는 북한의 수도권 대규모 남침용 땅굴의 존재는 불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땅굴은 군사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이다.


땅굴은 폐쇄적인 구조로 발견되는 순간부터 오랫동안 투자했던 가치가 일시에 상실됩니다. 또 하나 발견될 시 입구에 화력을 집중하면 땅굴에서 나오던 병력들은 짧은 시간에 전멸하거나 땅굴 속에 고립되기 때문이죠. 만일 북한군이 소규모가 아니라 대규모로 땅굴에 병력을 투입시킨다면 발견 즉시 오히려 더 좋은 국군의 표적이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에 개발된 벙커버스터는 지하 65m까지 타격이 가능한 폭탄도 있기 때문에 땅굴의 가치는 군사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다만 땅굴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후방으로 적의 특작부대가 침투하여 요인 암살, 특정 시설물 파괴 등 전술적으로 봤을 때 큰 장점 또한 있습니다. 후방 침입은 그동안 공기부양정이나 소형 고속정, 잠수함,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소형 비행기 등이 소개되기도 했었죠.


▼벙커버스터에 뚫린 건물과 지하 시설


2. 북한의 땅굴 파는 기술은 세계 최고다?



위의 사진은 북한의 지하철 노선도입니다. 대동강 위쪽 지역 위주로 지하철이 형성되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북한은 대동강 하저터널(강밑터널) 공사를 하다가 실패해서 대동강 이북쪽으로만 지하철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하저터널을 뚫을 기술이 부족한 상태에서 임진강과 특히 한강 하저를 무리없이 뚫는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기술로 수도권 지하에 대규모 땅굴 기지를 파서 전차 수백대와 북한군이 대기할 공간을 과연 만들 수 있을까요? 일전에 김정은이 전군에 비상대기를 내렸을 때도 전방 장갑차와 기갑부대들 절반 이상이 움직이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한미 연합군은 북한이 비상임에도 불구하고 차량 및 기갑부대의움직임이 절반 수준이라서 한미 연합군은 오히려 더 긴장하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나중에 중국의 군사 전문가에 의해서 그 당시 원인을 알게 되었는데, 비상임에도 불구하고 물자를 운직일 만한 기름이 전방부대에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 투입될지도 모르는 수 백대의 전차를 한국의 수도권 지하에 숨겨놓고 기름칠하고 닦고 할 수는 없을뿐더러 유사시 움직이기 위해서 기름까지 비축한 상태로 마냥 대기할 수는 없다는 주장입니다. 


3. 남침용 전차 수 백대와 북한군 30만 명이 땅굴에서 대기중이다?



북한의 대규모 병력 이동은 과거와 다르게 요즘은 한미 정보자산에 의해서 상시 감시 중입니다.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볼 수 있듯이 북한군의 미사일이나 군대 이동, 핵 실험 등 이상징후가 포착되면 즉시 탐지가 가능한데, 수도권 대규모 남침땅굴의 용도가 수도권 지하의 땅굴에 엄청난 물자와 병력들이 대기하고 있다가 전시에 쏟아져 나와서 점령을 다는 말이 있는데 가능할까 의심스럽습니다. 



일단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한미 연합군이 모르는 최신 전차부대 수백대를 수도권 밑 땅굴에 상시 대기를 시켜야 하는데, 유사시 신속하게 결전에 임해야 하는 전차가 습한 지하에 장시간 대기한다는 자체가 말이 안되며, 기계 장비는 수시로 기름칠하고 닦고 조이고 해야지 고장없이 움질일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전역자분들은 잘 알듯이 습한 날에 소총을 하루만 기름칠 하지 않아도 녹이 생기는 원리입니다.)


4. 북한의 TBM 300대 도입은 남침땅굴 굴착용이다?



대규모 수도권 남침땅굴이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북한의 TBM에 의한 장거리 땅굴 주장은 북한이 1983년에 도입한 광산 굴착장비를 TBM으로 오인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북한의 경제 사정상 핵과 ICBM 개발도 힘든데 대당 80억 원이나 하는 TBM 장비를 300대나 도입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으며, 본체와 후속 장비를 함쳐서 120m가 넘는 장비가 움직일 때 한미 정보자산에 노출되지 않을 수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리고 설사 막대한 돈을 투자해서 장비를 구입했다고 하더라도 1m 뚫고 들어갈 때마다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을 과연 북한이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굴을 지하 깊숙이 장거리로 굴착하면 산소공급 문제와 지하수 처리 문제는 당연히 발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터널굴착 시 "지하수 유입량 계산식"이나 토목 관련 종사하시는 분들에게는 지하수가 문제 안된다는 얘기는 통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지하수 문제, 산소, 비용, 굴삭기 등 모든 문제들을 감수하고 땅굴을 파더라고 비용과 병력, 노력에 비해서 땅굴은 남침용으로 효과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간략하게 TBM에 대해서 알아보면, 일단 후진이 되지 않습니다. TBM은 맨 앞의 (그림의 우측) 디스크 커터를 돌려서 암석을 파쇄하면 뒤쪽의 컨베어 벨트를 타고 대기 중이던 트럭이 버럭을 버리는 시스템입니다. TBM의 공정은 복잡하고 추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데, 여러 공정을 거치면서 터널을 뚫고 전진하면, 뒤쪽 공간으로는 세그먼트라는 시멘트 구조물을 옮겨 지나간 부분에 맞추어 놓는 시스템입니다. 


북한이 TBM을 운용하지 않는다고 보는 또 하나 이유는 굴착 작업에 앞서 해당 구간의 지질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TBM으로 수십 킬로의 땅굴을 작업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지질조사가 필수입니다. 왜냐하면 해당 구간의 지질에 따라 굴을 뚫을 디스크를 교환해야 하는데, TBM은 디스크를 교환하려면 후진이 안되기 때문에 전부 지하에서 분해한 후, 다시 밖으로 나가서 조립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사진출처-https://www.flickr.com/photos/mtaphotos/7303073304


이 거대한 물건을 넓은 외부로 이동시켜 조립하는 데는 1달이 넘게 소요되며, 이외에도 여러 상황들을 종합했을 때 절대 북한 땅굴은 TBM에 의한 작업은 아니다는 주장입니다. 


지금까지 북한의 수도권 대규모 남침땅굴이 존재하다는 주장과 반대 주장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소문만 무성했던 수도권 남침땅굴은 정말 존재할까요?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공감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전세계에서 해군력이 가장 강한 미 해군은 전세계 해군력의 60~70%를 차지할 만큼 막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우주 급 해군력을 잠깐 살펴보면,,




해군 전력 면에서는 이미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톱 급인 그들이 세계 각국에서 또 한 번 주목 받는 이유는 미 해군이 보유한 군용 병원선 때문입니다. '병원선'이란 말 그대로 바다에 떠다니는 병원으로 의사와 간호사가 상주하며,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건조된 선박을 말합니다. 


▲미 해군이 보유한 머시급(MERCY) 병원선

 

'군사적인 의미의 병원선'은 전투지역과 안전지역의 해상에 배를 상주시켜 전투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치료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실제로 6.25전쟁 때에도 덴마크에서 파견한 병원선이 임무를 수행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병원선은 일반인들에게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전쟁사에서 늘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덴마큼 군용 병원선


평상시에 병원선을 따로 운영하지 않던 국가도 실제 전쟁이 발발하면 유람선이나 여객선, 화물선 등을 징발하여 개조해서 군용 병원선으로 운용하면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의 치료를 돕는데 투입됩니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전쟁에서 부상병의 치료 목적보다는 자연재해나 재난이 발생한 국가에 의료지원을 하기 위해 파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단, 이런 경우 병원선의 규모가 상당히 커야 하겠죠.


그리고 병원선은 높은 운영비와 전쟁을 자주 수행하거나 돈이 많은 나라들이 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미국과 중국, 러시아의 병원선은 몇 만 톤에 이르기도 합니다. 


그럼, 한국에도 병원선이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병원선은 주로 섬마을 주민들의 진료 목적으로 각 시도에 규모가 작은 5척이 있지만, 전문적인 군용 병원선은 현재 없습니다.


▲경남 511 병원선


▲충남 501 병원선


한국이 보유하고 있는 병원선은 5척으로 충남501, 경남511, 전남511, 전남512, 인천531으로 한 해 예산은 10억 정도 소요되며, 규모는 간단한 진료를 할 수 있는 보건소 정도의 규모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중국의 군용 병원선 20,000톤 급


중국의 병원선은 600개 이상의 병상을 확보하고 있으며, 중국은 현재 2만 튼 급 2척과 2천 톤 급 4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의 군용 병원선 12,000톤 급


러시아의 군용 병원선의 수용 규모는 의료진 83명, 환자 300명, 군인 650명, 민간인 124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현재 러시아는 3척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군용 병원선 70,000톤 급


미국의 군용 병원선의 수용 규모는 12개의 수술실, 20개의 회복실, 80개의 중환자실, 1,000개의 병상, 영안실, 1,000여 명의 의료진을 수용할 수 있으며, 미국은 현재 머시급(MERCY) 병원선을 2척 보유하고 있습니다. 


▲항공모함(10만 톤 급)과 크기가 비슷한 미국의 군용 병원선



그럼 지금부터 군용 병원선도 세계 1위인 미 해군의 머시급(MERCY) 병원선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미국은 군용 병원선을 2척을 운용하고 있으며, 머시함(Mercy)과 컴포트함(Comfort)이 작전 중입니다. 머시함은 1986년 미 해군에 인도되었고, 자매함인 컴포트함은 1987년에 인도되었습니다. 


이들의 활동 범위는 머시함은 태평양, 컴포트함은 대서양에서 활동을 주로 하고 있으며, 미 해군의 머시급 병원선은 세계에서 가장 큰 병원선으로 만재배수량 7만 톤 급으로 길이가 무려 273m에 이릅니다.



주요 활동으로는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걸프전에 배치되어 외래 환자 8,000명, 입원환자 700명을 치료하였고, 수술 총 337회의 작전을 수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리고 1994년에는 아이티에 파견되어 민간인들 치료에 투입되었고, 911 테러 당시에는 사건 나흘 뒤 맨해튼에 투입되어 응급화자 561명을 치료한 베테랑 군용 병원선입니다.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의해 미 대륙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이틀 만에 급파되어 태풍 피해 환자 1,956명을 치료하는 등 다양한 재난 지원활동도 함께 수행하고 있습니다. 


머시급 병원선에는 의료진 1,000여 명과 승무원 250여 명, 해병 60여 명이 상주하며 지원활동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과 재난으로 대규모 환자가 발생할 것을 대비해 80개의 중환자실과 1,000개의 병동, 12개의 수술실을 보유하고 있으며,


부상 병사들의 빠른 회복을 위해 물리치료실과 화상치료실, 검안 시설, CT촬영실, 치과, 안과 등이 있는 일반 대학병원에 준하는 시설을 모두 갖추고 있어 말 그대로 떠다니는 대학병원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또한 병원선의 의사들은 모두 총상 수술의 톱 급 베테랑들이며, 병원선 내부에는 5,000명 분의 혈액과 의약품들을 항상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환자의 신속한 수송을 위해 병원선의 선미에는 수송 헬기와 넓은 헬기 착륙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소형 수송선은 육지의 환자를 병원으로 옮기기 위해 항상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송선을 통해 긴급한 환자가 병원선에 도착하면, 


10개의 고속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단 1분 안에 병실로 이동이 가능하여 긴급한 치료가 필요한 응급환자를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군용 병원선은 무장을 할까?


머시급 병원선의 무장으로는 탑승한 60여 명의 해병이 소지한 총기와 선체 상부에 있는 중기관총이 병원선의 자위용 무장의 전부입니다.


군용 병원선은 국제법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지만, 육안으로 봤을 때, 병원선임을 알 수 있도록 대형 적십자 마크를 부착하여 군용선임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투 지역 안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으며, 군수물자나 무장병력 등을 수송하는 역할을 하면 안 되며, 이 규정을 어겼을 때는 병원선이라고 해도 국제법상 보호받을 수 없습니다. 



실제 2차 세계대전 중 미국, 영국, 일본, 나치 독일은 병원선을 공격하여 격침시킨 일이 있었는데, 대표적인 격침사건으로는 나치 독일이 소련의 병원선을 격침시켜 5,000여 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또 일본의 경우를 살펴보면, 미국의 잠수함이 일본 병원선을 격침시킨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 병원선은 병원선의 조건을 지키지 않음)



일본 병원선 격침사건 이후로 일본은 미국이 국제조약을 위반했다며, 대규모 규탄 시위를 했지만 실제 격침 당시 병원선 선체는 검게 도색되어 있었고, 심지어 적십자 마크도 없이 연합군 측에 병원선으로 통고도 하지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이런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병원선으로서 지켜야 할 조건들을 준수한 경우에만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마치며, 세계 1위의 해군 전력을 보유한 미국이 운용하는 2척의 군용 병원선에 대해서 알아보면서 대양해군을 지양하는 한국 역시 섬 지역만을 진료하는 소형 병원선도 필요하지만 재난 국가 지원 및 유사시 군용 지원으로 운용이 가능한 1만 톤 급 정도의 병원선을 보유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공감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중국은 해마다 엄청난 규모의 국방비를 해군 전력 증강에 쏟아붓고 있습니다. 현재 중국 최초의 국산 항공모함이 4월에 진수예정에 있으며,  최근에는 미국의 대형 강습상륙함인 와스프(WASP) 급을 모방한 중국 역대 최대 강습상륙함 건조에 착수했다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의 보도가 있었습니다. 



▲미 해군의 와스프 급 강습상륙함


중국 해군의 강습상륙함 Type 075는 영토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유사 시 적 함정이나 잠수함, 육지의 지상군을 공격할 수 있는 다양한 헬기를 탑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Type 075로 명명된 건조 중인 중국의 신형 강습상륙함은 2020년에 중국 해군에 실전 배치할 목적으로 미 해군의 와스프 급과 동일한 만재기준 4만 톤급으로, LHD(Landing Helicopter Dock) 걸맞게 도크가 있는 헬리콥터 항공모함으로 최대 30대의 헬기의 탑재가 가능하며, 함미에는 고속 상륙정이 출입하는 도크를 갖출 것으로 관측되고 있습니다. 



건조 중인 Type 075의 30대 헬기 탑재 능력의 규모를 비교하자면 미 해군의 와스프 급의 40대 탑재량과 거의 대등한 수준이며, 일본 해군이 보유한 최대 규모의 헬기항모 이즈모의 탑재 헬기 14대와 비교하면 상당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본 해군의 이즈모 헬기구축함


이로써 중국은 Type 075 건조가 완료되면 헬기강습상륙함을 자국 해군 최초로 보유하게 되며, 경항공모함의 임무도 함께 수행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리고 중국 해군은 지금도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해군 전력을 질적으로 근대화시키는 중이며, 2020년까지 자체 제작한 항공모함과 구축함, 호위함, 상륙정 등 해군 전력을 계속 증강시켜 나갈 계획입니다. 


▲중국 해군의 신형 강습상륙함 Type 075



현재 중국이 보유한 강습상륙함 Type 071


현재 중국 해군은 6척의 도크형 상륙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만재배수량 20,000톤 급의 유자오급은 현재 실전배치한 상륙함으로 미국의 샌 안토니오급과 유사한 외형을 가지고 있으며, 특이하게도 스텔스 기술이 적용된 중국의 대표적인 상륙함입니다. 또한 중국에서는 최초로 헬기를 탑재할 수 있는 상륙함이며 최대 4대의 헬기를 운용할 수 있습니다. 




Type 071은 외형에서도 알 수 있듯이 헬기의 탑재가 4대가 최대이기 때문에 현대적인 초수평선 상륙작전을 수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건조를 시작한 Type 075가 차후에 실전 배치되면 헬기 30대를 탑재할 수 있기 때문에 중국 해군으로서는 그동안 자신들이 취약점으로 생각했던 부분이 완전히 해소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Type 075의 모델이 된 미국 와스프 급 상륙함



와스프급 강습상륙함은 만재배수량 41,335톤으로 미 해군의 주력으로 현재 총 9척의 강습상륙함이 운용 중에 있으며, 헬기와 수직 이착륙기와 3대의 고속 상륙정을 탑재할 수 있습니다. 후속함인 아메리카 급은 총 11척 건조 예정이며, 현재 1척은 건조가 완료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미 해군 본험 리처드 함


그리고 한반도 유사시 가장 먼저 도착할 와스프 급 6번 함인 본험 리처드 함은 중국의 Type 075 신형 강습상륙함이 실전에 배치되면 미래에 남중국해 또는 동중국해의 해상에서 조우할 확률이 높을 것으로 판단되는데, 해상에서의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현재 중국 해군의 주축, 랴오닝 항공모함


▲중국 해군의 랴오닝 항공모함 편대


중국은 현재 라오닝 항공모함을 실전 배치 중에 있으며, 지난해 동중국해에 이어 서태평양까지 전개하여 해상훈련을 진행하였고, 실제 훈련 기간 동안 항공모함 편대의 구축함과 젠-15함재기와 함재 헬기 등을 이용해 실탄 훈련을 실시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 중입니다. 


랴오닝 항공모함 제원

만재배수량 67,500톤

길이 302m, 폭 70m

최고속도 53km/h

작전기간 45일

승조원 2,600명

최대 함재기수 68기



특히, 2017년 4월에는 중국의 국산 최초의 항공모함 진수가 예상되고 있어서 최신 강습상륙함의 건조와 계속 건조 중인 각종 함정의 실전 배치는 세계 2위의 해군력을 목표로 하고 있는 중국 해군의 욕심이 서서히 채워져 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중국은 그들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해군의 전력을 증강시고 있으며, 그들의 욕심이 태평양에서 미국과 대등한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공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전쟁의 역사에서 칼과 활은 병사들의 주 무기였습니다. 하지만 총기류의 등장에 밀려 곧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현대적인 신무기가 대거 등장했던 2차 세계대전 당시 총 대신 활과 장검을 들고 전장에서 큰 공을 세웠던 전설적인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서 '싸우는 잭' 또는 '미친 잭'으로 통했던 '잭 처칠' 중령입니다. 


패기 넘치는 '잭 처칠'의 명대사

"전투에 검을 차고 나가지 않는 장교는 복장 불량이다."



잭 처칠(Jack Churchille)은 1906년 월 16일 영국 출생으로 영국 사관학교 출신으로 1936년 군에서 제대 후 영화배우로 활동하기도 했었는데 그의 특이한 이력에는 1938년 영국군 백파이프 경연 대회에서 2등, 1939년 오슬로 세계 양궁대회에 영국 대표로 나갈 정도로 백파이프 연주와 활 쏘기에 타고난듯 했습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그는 다시 영국군 장교로 입대하는데 이때부터 특이한 정신무장과 행동으로 전설적인 전공을 세우게 됩니다. 


<전투에서 잭 처칠 중령의 무기> 

백파이프, 영국 장궁, 스코티시 브로드 소드(클레이백)을 총 대신 들고 다녔습니다.


<그의 전투법>

적의 총알이 날아와도 꼿꼿하게 서서 전진하며 자신의 장기인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를 한곡 연주 한 후 칼을 뽑아 들고 괴성을 지르며 돌격하는 전투법을 사용했습니다^^ 


스코티시 브로드 소드(클레이백)


▲백파이프와 장궁


▲당시 잭 처칠을 그린 그림


그의 활약


▲세계양궁대회에 영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잭 처칠



1940년 프랑스에서의 활약 


영국군의 프랑스 원정군에 들어가 싸웠는데, 어느 날 자신의 소대가 매복 중에 독일군 순찰대를 발견하자 잭 처칠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내가 저기 앞에 있는 독일군을 활로 쏴 죽이는 동시에 공격하라" 명령하고는 직접 독일군을 활로 저격해 쓰러트렸습니다. 저격 소총을 사용하면 되는데 말이죠..

이 기록은 2차 세계대전에서 유일하게 활에 의한 적 사살로 지금까지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후 그는 일반 보병은 스릴이 없고 시시하다고 판단하여 영국 코만도에 자원하여 활동하였습니다. 



▲사진 중앙 지휘봉을 들고 있는 코만도 부대의 잭 처칠


1941년 노르웨이에서의 활약 


잭 처칠은 1941년 12월 27일, 자신이 맡은 코만도스 부대를 이끌고 당시 '양궁 작전(영국군과 노르웨이군의 합동작전)'에 참여하였는데, 지휘관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상륙함에 탑승하여 자신이 탑승한 상륙함이 가장 먼저 도착해서 램프가 개방되자마자 가장 먼저 뛰어내려 총알이 날아오든 말든 자신의 특기인 백파이프 연주 한 곡(당시 연주곡은 '캐머런 남자들의 행진')을 한 후 끝남과 동시에 수류탄을 던지며 독일군 벙커로 차례로 돌격했는데.. 


적 해안포 진지들을 수류탄으로 직접 박살을 내놓고 2시간 후 본부와 했던 통신을 살펴보면,


"해안포 점령 완료!" "아군 피해 거의 없음" "남은 해안포 진지는 지금 폭파하는 중"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독일군의 해안포 진지를 수류탄으로 전부 폭파했고 그 용맹함과 지휘관으로서 모범이 인정되어 그는 지휘관으로서 십자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상륙작전 중 가장 선두에서 브로드 소드를 들고 앞장서는 잭 처칠


1943년 이탈리아에서의 활약 


잭 처칠은 1943년 6월에 다시 한 번 코만도스의 지휘관으로 카타니아 해변에서 상륙작전에 참가하였습니다. 또 한번 그는 가장 먼저 상륙정에서 뛰어내려 그의 3대 무기인 브로드 소드와 활을 차고 백 파이프를 연주하며 전투에 임하게 됩니다.  


이때 본부에서 모리나 마을에 있는 독일군 관측소를 습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자신이 돌격할 때 엄호해줄 소총수 한 명과 단 두명이서 습격해 독일군 박격포 부대를 박살내고 혼자 42명의 독일군 포로들을 잡게 됩니다. 이때 그는 또 한 번 훈장을 수여 받았습니다. 

(그는 브로드 소드를 들고 돌격할 때 항상 '코만도오오~~'라고 외치면 적진을 향해 돌격했다고 합니다.)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1944년 유고슬라비아에서의 활약


잭 처칠은 1500며의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과 자신의 코만도스 44명의 대원을 이끌고 브락섬에 상륙했지만 독일군들의 거센 공격으로 1500명의 파르티잔들은 잭과 코만도스 부대원들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이때, 잭은 백파이프를 꺼내들고 44명의 코만도스와 함께 독일군 점령지로 진격했지만, 박격포 공격으로 자신의 부하들을 다 잃고 자신은 수류탄을 까들고 적진에 돌격하다가 수류탄 폭발로 기절하여 포로가 됩니다. 



당시 잭 처칠은 포로수용소에서도 온갖 기행을 일삼았는데 독일군들도 그의 골때리는 행동으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합니다. 호시탐탐 탈출 기회를 노리다가 처음 탈출은 실패로 돌아갔었는데 두번째 시도에서는 수용소 정전이 되자마자 들고 있던 삽을 던져버리고 전력질주로 수용소를 벗어나 도보로 241km를 이동하여 이탈리아에 주둔 중이던 미군에 구출되었습니다^^ 평범한 군인들은 도저히 흉내 낼 수도 없는 일입니다.




1945년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미얀마로 출정


독일군의 포로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는 1945년 일본군들이 전장에서 군도라는 장검을 사용한다는 소문을 듣고 하루라도 빨리 검을 든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버마(미얀마) 원정대에 배속되어 이동 중,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놈의 미국만 아니었으면 10년은 더 싸울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하며 아쉬워할 정도로 전투광이었습니다.



그 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잭 처칠은 팔레스타인 등 해외에 파견되어 코만도스를 지휘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고, 1959년 중령으로 예편한 후 영화배우 활동도 잠시 하다가 1996년 자신의 고향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장에서는 '미친 잭'이라는 별명으로 쏟아지는 총탄을 다 피하며 태연하게 백파이프를 연주하며 장검을 들고 싸웠던 그의 용맹함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공감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