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은 우리 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준 역사입니다. 두 차례에 걸친 전란으로 국토는 만신창이가 되었고 전란을 겪으면서 조선의 무인들은 일본 검술이 실전에서 조선의 검술보다 강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이후 왜검 도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당시 왜검의 도법은 겉치레가 없고 오직 살수를 위한 검법으로 알려져있어서 실전에서는 왜검 만큼 강한 것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왜검을 우리가 배울수는 없을까? 

조선 후기 일본의 왜검을 몰래 익혀 검신의 경지까지 오른 이가 있습니다. 고려에 검신 척준경이 있었다면 조선에는 검신 김체건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일본의 검술을 배워 일본을 베려고 했던 조선의 검신 이야기입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기 무섭게 병자호란으로 다시 국토는 유린 당하고, 왕은 청에 무릎을 꿇게 되어 그야말로 이제는 막강한 힘이 필요할 때라고 생각할 즈음, 


기병, 화약술, 병법 보다 실전 전투에서 더 중요하게 여겨졌던 검술! 조선은 검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당시 실전에서 최고로 알려진 일본의 검술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만약 다시 외세의 세력이 침입해 왔을 때 두 번 다시 같은 치욕을 반복하지 않고 그들의 검법으로 그들을 베기 위해서 꼭 필요했습니다. 

결국 숙종 때 이러한 노력과 의지로 조선 최고의 검신이 탄생하게 되는데..



"왜관에 숨어들어 검술을 익힌 검신 김체건"


숙종 대에 훈련도감의 *군교였던 김체건은 왜관에 숨어들어 왜검의 기법을 훔쳐 배우게 됩니다. 

(숙종 5년)


<참고>

*군교 : 군대의 장교, 군관, 왕의 경호 등의 업무에 종사하는 중인 계급.


검신 김체건의 이야기는 유본학이 지은 <김광택>전에 자세히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일부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김체건은 숙종 때 훈련원에서 무예를 더 익히기로 하였는데, 조선의 검술이 왜인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에 스스로 왜관에 숨어 들어가 하인 노릇을 하였다...(중략)... 체건은 그들끼리 검술을 겨눌 때 남 몰래 지하에 숨어 엿보았다. 그렇게 몇 해가 지나자 왜인의 검법을 다 익히게 되었다."


이렇게 그의 검법에 대한 열정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네요^^



3년의 시간이 흐르고 


그는 왜검의 고수가 되어 훈련도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이제 남은 일은 자신이 배운 검술을 조선의 군영에 보급하여 다시는 왜놈들에게 국토가 짓밟히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과 그들의 검술로 그들을 베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왔습니다. 

드디어 숙종 앞에서 그동안 자신이 갈고닦았던 왜검 실력을 평가받는 날이 다가왔습니다. 



당시 그가 숙종 앞에서 검술 시범을 보일 때, 땅에 재를 뿌려놓고 맨발로 시범을 보였습니다.

양쪽 엄지발가락으로 재를 밟고 춤추듯 펼쳐진 경이로운 검술 시범이 끝나자 구경하던 관리들과 숙종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분명 재 위에서 시범을 보였는데 뿌려놓은 재에 발자국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그의 무예가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숙종은 그의 검법을 보고 감동하여 김체건을 당장 검법 교련관으로 임명하고 조선군에게 전수하도록 하였습니다. 



여기서 잠시 의문이 생기는 부분이 있는데..

겨우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왜검을 검신의 경지까지 익힌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입니다. 더군다나 정식으로 배운 것도 아니고 몰래 숨어서 익힌 검술인데,, 이 부분에서 허구적인 부분이 많이 포함되었나 싶어서 자료를 좀 찾아보니 김체건은 왜검을 배우기 훨씬 전부터 상당한 검법의 대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숙종실록>의 기록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숙종실록> 숙종 8년 10월

"훈국 군병 중에 발 놀림이나 몸놀림이 몹시 빠르고 날래고 힘이 있으며 무예에 능한 1인을 선발하여 왜인의 검술을 배우게 했고,,, "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 많은 군병 중에 단 1인,


이 대목에서 이미 김체건은 당시 수많은 군병들 중에서 제일 뛰어난 검술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경지에 올라 있었고 배우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3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그에게 짧은 시간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됩니다. 



그가 배워 온 왜검은 <무예도보통지>에 토유류, 운광류, 천유류, 유피류 이렇게 4류와 함께 그림과 글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일본 영화나 만화에서 들어본 듯한 뭐뭐류~~ 뭐뭐류~~ 이런 느낌이네요 ^^


그런데 실제로 지금 일본에서 전해내려오는 검법 중에는 위에 언급한 유파가 없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유명한 검법이 아니라는 설도 있고 당시 일본에는 굉장히 많은 유파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극히 일부만 전해져 내려왔고 대부분 많은 유파의 검술이 거의 사라졌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조선 최고의 검신, 김체건

"나는 단지 국가가 약해서 외세의 침입에 백성과 국토가 유린당한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무인들이 약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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