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는 수없이 많은 무인들이 존재했습니다. 그중에서는 한가지 무기 또는 여러 다양한 무기로 당대 최고의 무인에 자리에 오르는가 하면 몇 세기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뛰어난 무예와 발자취를 남긴 영웅들도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조선의 검신으로 알려진 왜검을 배워 왜검을 베려 했던 검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오늘은 한국과 일본의 대표 3대 검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미지 - SBS드라마



한국, 일본 역사에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거나 또는 알려지지 않은 뛰어난 검객들이 많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한국 VS 일본, 3명씩 선택했답니다^^ (더 뛰어난 검객들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이미지와 내용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검신


사진- SBS 육룡이나르샤


고려의 여포, 무쌍액션의 검신 척준경 

(일본 검신과 1:3 대결도 문제없다?)


한국사 최고의 용장이자 검신이라 알려진 척.준.경. 

이미 드라마나 게임 등으로 많이 알려져 거의 모르는 분들이 없을 거 같습니다. 척준경은 모든 전투에서 역발산기개세의 용장으로 자신의 용역만으로도 가히 전세를 뒤집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역사에서 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고려 VS 여진 전쟁에서 여진족이 정주성을 공격했을 때인데, 그는 사령관에게 말 한 필과 무기를 요구한 뒤, 적진에 단신으로 뛰어들어 적장 2명의 목을 베고 소풍 다녀온 듯 유유히 귀환합니다. 여기서부터 그의 전설이 시작되죠.


이후에도 그는 도저히 인간계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공을 세웁니다. 

윤관을 따라 여진족 정벌에 나서서 역시 단신으로 칼과 방패만을 지닌 채, 성벽을 올라가 성안의 여진족들을 썰어버립니다. 이때 기세를 받은 고려군은 쉽게 성을 함락했었죠. (이미 신선계의 경지에 도달함)


* 그의 무용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들처럼 소설이 아니라 실제 '고려사', '고려사절요'에 실려 있는 실존 인물이라는 거죠.





일본 검술을 배워 일본을 베려 했던 검신, 김체건


조선의 군사들은 활과 칼을 지니고 있어도 전투에서 일본 무사들이 왜검을 들고 달려들면 기세에 눌리거나, 왜검법에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당시 훈련도감의 군교였던 김체건은 왜관에 숨어들어 3년의 시간 동안 일본의 왜검을 익힙니다.(왜검으로 검신의 경지에 오름)



숙종 앞에서 땅에 재를 뿌려두고 검술 시범을 보였는데 재에 발자국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그의 무예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이후 조선의 군병들에게 일본의 왜검을 전수했는데(그가 배워온 왜검은 '무예도보통지'에 글과 그림으로 설명됨), 그의 아들 김광택 역시 조선의 검신으로 알려질만큼 유명하죠.





검신 김체건의 아들, 검선 김광택


그의 아버지 검신 김체건에게 어려서부터 검술을 배워온 모태 검술인 김광택. 그는 또 당시 김신선이라 불리던 김홍기를 따라다니며 각종 경신법과 술법 등을 배웠는데, 그는 서울에서 금강산까지 두 번을 왕복해도 짚신이 닳지 않을 정도로 경공술도 뛰어났다고 전해집니다. 


유본학이 지은 '김광택전'에 따르면 그의 칼춤 실력이 신의 경지에 도달해 칼에 몸을 숨겨 보이지 않는다고 평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실기해석을 담당했던 '무사 백동수'가 바로 그의 제자며, 역사에 나타나는 뛰어난 활약상은 없지만 우리나라 검술의 체계를 잡아준 당대 최고의 검신이었습니다. 





일본의 검신


일본의 역사에도 뛰어난 무신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우리와는 다르게 일본의 조정과 귀족들은 무사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무사와 귀족의 연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주종 관계가 형성되면서 자연히 지방에서도 뛰어난 무사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이들이 조직적으로 관리되면서 많은 무인들이 생겨났죠. 



일본인에게 가장 존경받고 있는 검성 중에 한 명

카미이즈미 노부츠나(1508~1577)


공식, 비공식적으로 일본 검술의 역사상 최고의 검객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카게류의 창시자이며, 일본의 엘리트 무사 가문의 시초라고 불리는 '야규 세키슈사이'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무사시보다 이전의 인물이지만 무사시처럼 전국을 누비며, 강호들과 대결을 펼쳐 무패의 전설을 가지고 있고, 같은 시대를 살았던 검성 츠카하라 보쿠덴과 함께 일본 역사상 최강의 검객이죠.





일본 역사 최초의 검성

츠카하라 보쿠덴(1489~1571)


검성 카미이즈미도 젊은 시절 츠카하라에게 검술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일본 최초의 검성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39차례의 전쟁에 참전했었고, 전국을 방랑하면서 펼친 진검승부는 19차례나 있었지만 평생 그의 몸에 난 상처는 전쟁 중에 화살에 맞은 상처밖에 없었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검객이었습니다.  



그의 유명한 일화 중에는 '무수승류'라고 해서 '검을 빼지 않고 이기는 사람, 위험한 것은 미리 피해 가는 사람이 진정한 무사'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수승류'의 일화

그가 배를 타고 갈 때, 한 젊은 무사가 결투를 신청했다. 보쿠덴은 주위에 사람이 많으니 앞에 보이는 섬에서 싸우자고 한 후, 젊은 무사가 내리자 바로 배를 출발시켰는데 비겁하다고 외치는 젊은 무사에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무사'라고 했다는 일화입니다. ^^;;


(진짜 비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일본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1584~1645)


일본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졌고, 또 그들이 좋아하는 인물이죠. 우리나라에서도 미야모토 무사시라고 하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니까요^^

하지만 실제 일본 검술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은 그의 행적들이 미화된 부분이 많다고 주장합니다. 



두 자루 칼을 사용하는 이천일류의 시조로 그가 말년에 저술한 오륜서에는 60여 회의 실전을 치렀다고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 진검인지 목검인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다만 당시 일본의 검술가에 의하면 그의 검술은 '귀신의 검술이며,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졌고 사랑받는 검객입니다.  


실제 한국과 일본의 검신 3인방이 대결을 한다면 승산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저는 고려 검신 척준경이 다 이길 거 같습니다만...

다음 글에는 좀 더 흥미로운 소재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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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충원의 파월장병 제2묘역에는 일반 병사들과 함께 묻혀있는 장군의 묘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선을 넘으며,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의 한국 영웅인 그는 생전의 유언대로 장군 묘역이 아닌 죽음의 사선을 함께 했던 병사들과 묻히기를 소망했다고 합니다. 진정으로 군인을 사랑했고 조국을 사랑했던 그가 지금도 대한민국 군대와 군인의 전설로 불리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목사가 꿈인 청년이 장군이 되다


채명신 장군은 1926년 황해도 출생으로 항일운동가인 아버지와 크리스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목사의 꿈을 키우던 청년이었습니다. 하지만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남쪽으로 내려와 육군사관학교를 거쳐 군인의 길을 선택합니다. 


▲송악산 육탄10용사


그리고 당시에는 군인들이 발령을 기피했던 제주도 9연대에 배치된 후 그는 군 통솔 철학인 '골육지정의 리더십'을 터득하는데 이 덕분에 그는 형제와 같은 부하들에 의해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는데 이후 송악산 전투와 남파 게릴라들을 토벌하기 위해 태백산에 투입되는 등 군인으로서 성장하게 됩니다.


'필사즉생 골육지정' 

육군 3사단 백골부대의 슬로건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 반드시 이기고, 뼈와 살을 다하여 형제처럼 뭉치는 단결력'이라는 뜻입니다.



▲북한 후방지역에 투입되기 전 찍은 기념사진(백골병단)


한국 최초의 유격부대 백골병단의 영웅 


채명신 장군의 활약이 시작된 시기는 6.25전쟁 초기 북한군 후방에 침투하여 게릴라전을 이끌었던 백골병단의 지휘관으로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제대로 훈련받은 병력도 부족했었고 부대 지휘관 또한 경험이 부족하여 일반적인 작전도 힘든 상황이었죠. 



그러나 북한군으로 위장한 백골병단은 북한군의 점령지로 침투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지금도 채명신 장군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로 소개되는 당시 적 후방을 책임 지던 인민군 63여단을 완전히 궤멸과, 대남 유격부대의 지휘관인 김원팔 인민군 중장을 생포해 사살(자결)하는 등 전무후무한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한국 전쟁 영웅에서 베트남 전쟁의 영웅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월남전 파병 결정, 하지만 채명신 장군은 개인적으로는 월남전 참전이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 하며 반대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국가의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파병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는 이미 6.25 전쟁에서의 경험을 활용하여 정립한 '중대전술기지'라는 개념을 이용해 '두코 전투'와 '짜빈동 전투'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만한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중대전술기지 개념도


'중대전술기지' 요약

적의 폭격과 침입에 대비해 2,3명이 들어갈 정도로 원형 구조로 호를 파놓고 거미줄처럼 연결합니다. 밖으로는 철조망, 크레모아, 지뢰 등을 설치하고 안으로는 박격포 진지, 헬기장 등을 설치하여 완전 요새를 구축하여 1개 중대 병력으로 대대 규모의 병력을 격퇴하는 전술기지입니다.



실제 두코 전투에서 채 장군의 맹호소속 9중대는 6배나 많은 북베트남군 2개 대대와의 전투에서 대승을 거둡니다. 이 전투로 인해서 그의 전술 개념은 전투에서 많은 성과를 올리게 되고 미군은 한국군에 독자적인 작전권을 넘겨주게 되죠!!

그 당시 베트남에서는 채 장군의 '양민과 베트콩 분리 정책'과 '중대기지 전술'을 미군이 사용했더라면 전쟁이 6개월 만에 끝났을 거라는 이야기가 외신에 흘러나올 정도로 그는 뛰어난 전술가였고 지휘관이었습니다.



▼이미지 크리스찬리뷰


전투에서 승리보다는 민간인 보호가 우선!


그는 전투도 중요했지만 전쟁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위해서 장병들과 함께 도로 보수, 구호식품 전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게 됩니다. 그의 이런 노력으로 주민들의 마음을 열고 자연스럽게 베트콩과 주민이 분리되었고, 이로 인해 보다 수월하게 광활한 지역을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먼저라고 생각하는 그의 모습은 현지 주민들뿐 아니라 그가 거느린 부하들의 마음까지도 단단하게 결속하는 효과를 가져와 부대원들의 전투력 증대에도 큰 힘을 발휘하게 되죠.



▼이미지 출처 - 국방홍보원


함께 싸웠던 파월장병이 묻혀있는 묘역에 묻어달라


그의 회고록에는 "이제는 떠나도 여한이 없다. 다만, 6.25전쟁과 베트남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와 조국 수호를 위해 땀과 눈물과 피를 흘리고 먼저 가신 전우들의 영령들 생각이 항상 마음에 남는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는 전역 후에도 기업으로부터 고액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국가에서 주는 연금으로 생활하는 등 대한민국 군인의 품위를 지켰습니다. 평소에 미국의 1,2차대전에 참전했던 장군이 국립묘원에 병사들과 함께 안장되어 있다는 말에 크게 감명을 받았는데, 



이후 그는 생의 마지막에서 "나를 파월 장병이 묻혀있는 묘역에 묻어달라" 유언을 남기고 2013년 11월 25일 8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그는 현충원 사병묘역에 그가 사랑했던 병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국방홍보원, 영상-국방부 유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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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기계화 보병사단는 대한민국 최강의 화력을 자랑하는 육군 최정예 기계화 부대입니다. 

단일 사단의 화력에 있어서는 아시아 최강의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북한의 남침 시 역습에 나서 기동군단과 함께 일격필살로 적의 기갑부대를 괴멸시키고 전쟁을 종결시킬 목적으로 편성된 '결전부대'입니다. 오늘은 결전부대가 왜 대한민국 최강의 화력이라 불리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결전부대(제20기계화 보병사단)는 수도기계화 보병사단, 제11기계화 보병사단과 함께 대한민국 유일의 공격 목적의 부대인 제7기동군단 예하 부대입니다.

(*11기계화 보병사단은 2016년 7군단 소속으로 개편)



1. 신화의 시작


제20기계화 보병사단은 6.25전쟁이 끝날 무렵인 1953년 2월 9일 강원도 양양에서 창설된 후, 중동부 전선의 M-1 고지 점령을 위해 남하한 중공군을 상대로 16번 고지를 빼앗기고 18번의 공격으로 고지를 점령했었는데 병력 대부분이 신병임에도 불구하고 투지와 끈기로 승리한 전설을 남기게 됩니다.

하지만 당시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북한군과 함께 아군의 피해도 상당했기 때문에 고지 점령을 두고 얼마나 치열했었는지 알 수 있겠습니다.   



이후 1981년 제20 차량화 보병사단으로, 2년 후 현재의 제20기계화 보병사단으로 다시 한 번 개편되면서 수도기계화 보병사단(맹호부대) 다음으로 북한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국군의 2번째 기계화 보병사단으로 탄생합니다.




2. 화끈한 화력과 뛰어난 기동력


유사시 모든 전력을 초집중하여 전선을 뚫고 올라가 전투를 종결 짖기 위한 목적이기 때문에 보유 전차의 수가 300여 대에 이를 정도로 막강합니다. 진군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가슴이 벅차오르네요.

물론 물량적인 면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전세계에서 3세대 전차를 4번째로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사단 전력으로는 아시아에서 최강 화력으로 알려질 만큼 전력 확충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K-2 흑표전차

최초로 20사단에 배치된 흑표전차는 120mm 활강포와 지상에서 70Km로 기동할 수 있는 1500마력의 힘과 스노클링 기능을 이용해 4m의 강물도 흑표전차를 막을 수 없습니다. 현존하는 최강의 4세대 전차로 그 우수성은 이미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중량은 에이브람스보다 가벼운 60톤으로 기동성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 하며, 장갑관통방어력은 1000mm K-1A1의 2배에 이릅니다.(보통 철갑탄 관통능력은 800mm)북한의 선군호와 최신 전차 외에는 흑표와 대전해서 이길 수 있는 전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전부대 훈련모습




▲K1A1 전차

북한의 T72 전차에 대응하기 위한 3.5세대 전차로 120mm 활강포와 전차장 및 포수석 열영상 조준 장비와 탄도계산기, 특수 복합장갑 등 기존의 K1전차의 화력, 방호력, 명중률, 기동력을 대폭 향상시킨 전차로 지상에서 65Km로 기동할 수 있으며 흑표와 함께 제20기계화 보병사단의 대표 전력입니다. 







▲K21 보병전투장갑차


40mm 기관포와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으며, 차량 내부에 보병 전투원 9명을 탑승한 채로 지상에서 시속 70Km의 속도를 낼 수 있으며, 한 번 주유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주행이 가능한 전투력과 기동력 그리고 방호력까지 두루 갖춘 팔방미인이죠. 





▲K-30 비호


우리나라는 저고도 방공망이 취약하다는 이유로 국군의 저고도 방공망의 필요성 때문에 개발된 자주대공포입니다. 대공 유도탄인 신궁을 장착해서 7Km내의 적 항공기와 교전이 가능하며, 2문의 KKCB 포는 분당 60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지상의 적과 저공으로 침입하는 적 항공기를 타격할 수 있는 복합 무기체계입니다.





3. 쏘고! 쏘고! 쏘고! 결전부대는 오로지 훈련


여기까지는 제20기계화 보병사단이 보유한 주력 장비들을 간단히 살펴봤습니다. 물론 장비만 좋다고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신 장비가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그 장비를 운용하는 사람의 능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전부대에서는 실전에서 최단 시간에 전투를 종결 짖기 위해 상상도 못할 많은 훈련량을 소화하고 있으며 이는 곧 운용 인력 개개인의 장비에 대한 숙련도가 레전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남한강 도하훈련을 위해 집결 중인 제20기계화 보병사단


우리 육군의 제20기계화 보병사단의 훈련량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로 진짜 훈련이 많습니다.


▲남한강 도하훈련 중인 K-21 보병전투차량


▲흙먼지를 날리면 기동 중인 K-2 흑표전차


북한은 또다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함으로써 보란 듯이 도발을 해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결자로 불리는 결전부대는 육군 최정예 기계화 부대의 막강한 위용과 함께 언제나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사진출처-국방홍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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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탐관 '화신'



무속인에 불과한 일반인이 대한민국의 전체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국정농단 사건은 지금까지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역사를 되짚어 봤을 때, 국가의 기간이 이렇게 흔들렸던 경우가 있었던가요? 그런데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순실도 울고 갈만한 최대의 국정농단 스캔들이 존재한답니다. 단지 한 사람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그치지 않고, 그 욕심이 국가를 패망의 길로 이끌었던 '중국 최고의 간신이자 부패의 신' 화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청나라 건륭제(1711~1799) 

조부 강희제와 아버지 옹정제의 뒤를 이어 18세기 정치, 경제, 군사, 문화 등 청나라 최대의 전성기를 이룩한 황제. 

하지만 말년에는 부패와 사치로 나라가 쇠락의 길로 들어섭니다.



타고난 입담과 재치로 황제의 눈에 들다


젊은 시절 화신은 우연한 기회에 건륭제의 눈에 들었는데 건륭제는 그의 뛰어난 언변과 재치에 반했죠. 이후 황제의 총애를 받으면서 승승장구하여 권력서열 2위에 오르게 되고 자신의 아들을 건륭제의 막내딸인 화효공주와 결혼시키는 등 황제의 그늘 아래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릅니다.

이렇게 권력을 거머쥔 화신은 청나라의 모든 분야에서 온갖 비리를 저지르고 재물 모으기에 여념이 없었죠. 


사람의 욕심이란 정말 끝이 없는 거 같아요.


▼대탐관 '화신'


황제를 호위하는 일개 교위(校尉)에서 황제의 사돈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과 비리를 저질렀던 화신!

지금부터 최순실도 울고 갈 중국 역사 속 최대 국정농단 스캔들의 주역인 '화신'이 어떤 식으로 청나라를 말아드셨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황제에게 올리는 진장품 가로채기


화신은 청나라의 주요 요직을 거치면서 국가의 세금 징수와 관련된 일도 하게 되는데, 자신에게 뇌물을 바치는 이들에게는 세금을 감면해주는가 하면 일부 상인들에게는 독점권을 내어주면서 평생을 뜯어먹고 살게 됩니다. 




또한 그는 전국 각지에서 건륭제에게 올라가는 진상품도 자신이 직접 확인을 했는데 자신의 마음에 드는 진상품들은 같은 것이라도 더 좋은 것은 자기가 갖고 2급으로 분류되는 것은 황제에게 보낼 정도로 황제의 눈과 귀를 다 막고 자신의 부를 축적하는데 있어서는 온갖 악행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뇌물을 받고 장군을 임명


중국의 한 현에서 관원들의 횡포에 못이겨 민란이 일어났는데, 그 규모가 커져 건륭제가 화신에게 군사를 일으켜 민란을 제압하라고 명을 내립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뇌물을 받고 장군을 임명하는 등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문어발식으로 뭐든지 확장해 갔었죠. 

당시 청나라의 감찰부에서는 화신의 부정을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미 조정의 모든 관료들이 화신의 손아귀에 있었기 때문에 건륭제에게 보고조차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 보고를 했어도 바로 묵살된 채로 파면을 당했겠죠?



이렇게 모든 요직을 자신의 사람으로 채운 화신은 이후에 더 많은 재물을 노골적으로 모아들이게 됩니다.

그런데 건륭제는 화신이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그를 믿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죽을 때까지 말이죠. 





중국 역사상 최대의 재물을 긁어모으다


화신의 재물에 대한 욕심은 해가 갈수록 더 심해졌는데 죄를 진 관리에게 돈을 받고 면책해주는가 하면, 국가의 모든 사업에 개입하여 이권을 챙겼답니다.

그런데 당시 그토록 많은 부정을 저질렀어도 국가 재정이 거들 나지 않았었는데 실제로 그는 탁월한 재정 운영 능력을 또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정의 모든 주요 요직에 자신이 뇌물을 받고 임명한 관리들을 앉혀 놓는 등 이미 그 누구도 그를 어떻게 해볼 수가 없을 정도로 국가 재정을 완전히 장악했죠. 말년의 건륭제는 거의 꼭두각시나 다름없었죠.


▼건륭제


1796년 건륭제가 아들 가경제에게 왕위를 물려줬는데, 태자 시절부터 화신의 부정부패를 혐오하던 가경제는 3년 후 건륭제가 사망하자 즉시 체포하여 사지를 자르는 극형을 내리지만 화효공주의 간곡한 청에 하얀 천에 목을 매 자진을 명하는데 화신의 나이 당시 50세 때의 일입니다.

 


그리고 화신이 죽자 가경제는 그의 재산을 몰수했는데 놀랍게도 그 양이 모두 9억냥으로 당시 청나라의 총예산의 12년 치를 훨씬 넘었다고 전해집니다. 

일개 관료가 모을 수 있는 재산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로 화신이 얼마나 많은 부패와 비리를 저질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건륭제는 화신이 분명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었는데도 왜 그를 막지 않았을까요?

아무튼 오늘 화신의 이야기로 간신 뒤에는 늘 권력자의 부주의와 무관심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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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북한이 정말 조용해졌습니다. 도대체 뭘 하는지 궁금할 정도로 조용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청와대를 공격한다느니, ICBM으로 워싱턴을 폭격한다느니 따다다다! 말이 많았었는데요. 하지만 이제 이런 생떼도 통하지 않을 거 같습니다. 미국의 새로운 국방장관이 제임스 매티스이기 때문이죠. 68세의 노장이지만 지금도 뼛속까지 해병대 피가 끓고 있는 일명 '매드 독(Mad god)'이니까요^^

북한은 아마 B-1B 전략폭격기보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을 더 두려워할 거 같아요. 그럼 이유에 대해서 알아볼까요? 


 




고양이 앞에 쥐, 북한이 미국 국방장관을 두려워하는 이유


제임스 매티스 (James Norman Mattis)는 1969년 해병대 병사로 입대합니다. 그리고 제대 후, 자신의 적성이 군인이다 생각했는지 다시 센터럴워싱턴대 ROTC 임관 후 대장까지 오르는 전설적인 군인이 되죠. 또한 군인으로써 언제나 적국과 테러리스트에 대해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으며, 지금은 미군들에게 가장 존경받고 있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간단히 그의 경력과 함께 최근 한국과 미국을 상대로 전쟁이라도 벌일 것처럼 위협했던 북한이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을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눈치 살피는 중..


'제임스 매티스' 경력

1969년 해병대 병사로 입대 후 제대.

1972년 센트럴워싱턴대 ROTC 임관 후 대장까지 진급.

2007년~2010년 미국 합동군사령부 사령관

2010년~2013년 미국 중부사령부 사령관

2007년~2013년 미국 해병대 대장

2017년~ 제26대 미국 국방부 장관


미 해병대원들의 투표가 있었는데요. 해병대 중 실제 전투에서 '가장 람보처럼 싸울 거 같은 해병대'로 매티스 국방장관이 1위를 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 정말 뼛속까지 해병대라는 말이 실감됩니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의 왈,

'매티스는 전투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고, 언제나 테러리스트들을 이겼다'


매티스 미 국방은 1969년에서 2013년 복무 기간 동안 걸프전쟁, 911테러에 대한 보복 전쟁인 아프가니스탄 전쟁 그리고 이라크 전쟁을 모두 직접 지휘한 실전 지휘관으로 현존하는 오리지널 리얼 라이프 히어로입니다.

또한 미국 역사상 군 장성 출신이 미국 국방장관에 오른 경우는 2차 세계 대전 때 트루먼 대통령이 임명한 조지 마셜 육군 참모총장 이후 6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네요. 


북한을 미국의 안보를 해칠 위험 국가로 보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미친개(Mad god)' 매티스를 국방장관의 자리에 앉힌 이유를 알 거 같은 부분입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피 끓는 해병대 '매티스'


걸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에서 직접 현장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그는 굉장히 직설적인 사람으로 알려졌는데 일전에 NBC News의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 상황을 질문 했을 때 '아프가니스탄에는 여성이 베일을 쓰지 않는 이유로 여자를 때리는 건달이 많다. 이런 놈들은 총으로 쏴야 된다'라고 할 정도로 호전적인 성격으로 '미친개', '전사승려' 등의 별명이 붙었습니다. 


물론 이런 발언들은 일부에서는 거부감을 나타내지만, 해병대로서 그리고 항상 최전선에서 전투에 임하는 군인으로서 해석한다면, 항상 전투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해병대의 자존심 묻어나는 군인의 기개라고 생각이 드네요.



매티스 미 국방장관 '어록'

적이 먼저 도발하면 반드시 모두 굴복시킨다.

해병대는 패자라는 글자를 쓸 줄 모른다.

무기를 사용하기 전에 머리부터 써라.

사냥꾼이 되지 않으면 먹잇감이 된다.

▲군인으로서 그의 가치관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북한이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그의 정치적 입장


'북한의 핵위협은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안보 문제로 본다.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 옵션도 생각하고 있다.' 


그가 이야기했던 이 두 문장만으로도 북한정권은 그를 가장 두려워 할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북한과 김정은이 최근 몇 년 동안 들었던 말 중에 가장 무서웠던 말이 아닐까요? ^^ 


▲2월 10일 괌 기지에 도착한 미국 항공모함 칼빈슨호 


그리고 이제 곧 있으면 열리는 3월 한미연합훈련도 북한이 그를 두려워하는 이유에 속합니다. 

미국과 한국의 첨단 무기들과 인원들이 총 집결하는 훈련이기 때문에 북한의 입장에서는 혹시나 훈련이 실전으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죠.

그동안 북한의 행적들을 살펴보면 한미훈련기간에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답니다.


'2017 한미 연합훈련'은 역대 최고의 규모로 펼쳐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에 따라 칼빈슨호에 탑재된 최신 무기들 외에도 미국의 폭격기 3총사 B-1B, B-52, B-2와 F-22 스텔스 전투기, 핵 추진 잠수함, 이지스 구축함 등 

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모든 전략 자산을 매티스 미 국방이 쥐고 있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지금 가장 두려운 존재는 매티스 미 국방장관 일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발자취


첫째,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은 장관으로 취임한 직후 '북한의 핵시설 격퇴 조치'를 담은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이 부분은 실제 북한의 핵시설 파괴를 위한 행동이 실천될 수 있으며, 또는 그렇지 않고 보고서의 형태로 만들어졌다는 것만으로도 중국과 북한에게는 상당히 큰 압박이 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둘째,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은 북한 정권을 위험하고 신뢰할 수 없는 존재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가 한때 오바마 행정부 시절 이란에 대한 평가와 같은데, 당시 그는 오바마의 이란 핵 협상을 비판해 온 강경파죠.


그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

'적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적을 괴멸시켜야지 전쟁은 비로소 끝나는 것입니다.'


(미국과 동맹국을 위협하는 적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답변입니다.)



세째,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은 이란과 북한을 전세계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란은 핵 협상 이후에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행했는데, 트럼프 행정부와 매티스는 이 부분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당시 인터뷰 내용 중에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 이외에도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어필을 했었고, 미국의 상원 외교위원장 역시 북한과 이란의 위협적인 행동에 대해서 더이상 인내하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다는 점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자신들이 추진했던 정책노선에서 이제는 새로운 시도와 변화를 해야 할 때라고 생각됩니다.

핵과 미사일을 앞세워 전세계를 상대로 도박을 한다면 이제는 분명 그에 대한 책임이 따를 수 있다는 것을 꼭 알았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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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빵모자에 나팔바지 그리고 타이와 함께 해군 수병들의 군복은 전 세계 어디를 가나 동일합니다. 간혹 길에서 휴가 나온 수병들을 만나게 되면 육군과 공군 장병들을 볼 때와는 다르게 신선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분명 육군과 공군의 복장과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데 여기에는 우리 일반인과 육군 공군은 모르는 해군만의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럼 전세계 해군의 복장에 담긴 의미 함께 알아볼까요!


 

설마 아직도 그 옛날 그 시절 패션에 빠져있는 거야?



해군 복장의 의미, 이렇게~ 깊은 뜻이? 


1. 해군이 나팔바지를 고집하는 이유


많은 분들이 저와 비슷한 생각을 해보셨을 거에요. 해군 바지를 보면 항상 팔랑팔랑~~ 거리는 것을 보셨을 텐데요. 

여기에도 우리가 모르는 이유가 있다고 하네요. 해군은 바다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물에 들어가거나 하는 일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바지가 젖지 않게 하려고 쉽게 걷어올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하네요^^ 





2. 치렁치렁한 타이는 왜 멋인가?


왜 해군은 타이를 할까? 사실 예전에 이 부분이 가장 궁금했었는데요^^.

여기에도 육군과 공군은 모르는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하네요. 늘 바다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자신이나 또는 동료가 불시에 물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데, 이때 목에 두르고 있는 타이가 물에 빠진 동료의 생명을 구하는 도구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있는데 자신이 바다에 빠졌을 때 이 타이를 풀어서 다리에 묶어두면 상어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고 해요.

이렇게 하면 다리 길이와 타이의 길이가 더 해져서 엄청 길어 보이는데 상어는 자신보다 긴 상대는 공격하지 않기 때문이랍니다^^

아~ 이렇게 깊은 뜻이 있을 줄이야.




▲이미지 해군블로그 '블루페이퍼'


3. 수병의 상징! 빵모자


수병의 모자인 빵모는 비상시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비상상황 시 해군의 함정에 물이 들어올 때, 급히 바닷물을 퍼내거나 식수가 없을 때 빗물을 받아두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고 하네요. 


좀 별나 보였던 해군 복장이 사실은 굉장한 실용성을 겸비한 최고의 군복이었네요^^ 

아래는 요즘 북한 해군의 평온한 일상입니다.


<북한 해군 복장>






퀴즈 하나, 


해군 함선에는 쥐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이미지 '방위사업청 블로그'


부두에는 불라드라고 하는 쇠말뚝이 있습니다. 한 번쯤 보셨죠? 

이것의 역할은 함정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건데 예전에는 쥐들이 이 불라드에 묶여있는 밧줄인 홋줄을 타고 배 안으로 침입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함선에 쥐들이 함께 생활하는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홋줄 중간에 하나 또는 두 개의 쥐마개(쥐방패)를 설치하면 함선에 쥐가 절대 침입을 못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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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범 전 특전 사령관의 최근 발언으로 인해 한국 특수부대의 특전용 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바로 한국 특수부대원들이 사용할 7만 원짜리 람보칼의 예산에 대한 이야기인데 부결되는 바람에 시꺼러워졌죠. 그런데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도 특수부대는 자신들만의 개성있는 칼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특히, 네이비 씰, 스페츠나츠, GIGN, 야밤 등 세계의 유명한 특수부대는 작전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 최첨단 장비와 무기들을 사용하고 있죠. 그리고 근접전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특전용 칼을 보유하고 있는데 오늘은 한국 특수부대가 부러워하는 세계 특수부대가 쓰는 칼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Strider SMF 65만 원



미 해병 특수작전 사령부 (MARSOC) - 미국

해병 특수작전 사령부의 알파팀의 전용 군용칼입니다. 티타늄 프레임으로 강하고 변함이 없는 칼로 유명합니다.




2. MK 3 Navy Knife 9만 원



네이비 씰 - 미국

미국 네이비 씰의 공식 군용칼입니다. 15Cm의 스테인리스 스틸 칼날을 갖추고 있으며, 아마존에서 실제로 80달러에 판매되고 있는 칼입니다. 




3. Ka-Bar 6만8천 원



미 해병대 제식대검

미국의 오랜된 군용칼로 Ka-Bar은 전투에서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와이어를 자르거나 크레이트를 열 수 있는 등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있습니다. 현재 아마존에서도 판매되고 있는 칼입니다. 




4. Glauca B1 44만 원



프랑스 특수부대 GIGN에서 사용하는 대검

테러 또는 인질과 관련된 사건들을 해결하는 프랑스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멀티 기능을 갖춘 단검입니다. 

수갑을 끊을 수 있는 기능과 두꺼운 창문을 부술 수 있는 기능도 있는 만능 멀티 툴입니다.




5. Fairbairn-Sykes 9만3천 원



영국 SAS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대검 

2차 대전부터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 칼입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영국에서는 전설적인 군용칼로 통한다고 하네요^^




6. Karambit 5만6천 원



캐나다 합동기동부대 JTF2에 사용하는 대검.

카람빗은 자기방어용으로 합동기동부대원들은 2개씩 지니고 다닙니다. 

발칸 전쟁에서 세르비아의 스나이퍼들을 제거하는데 사용되기도 했다고 하네요.




7. WING-Tactic 37만 원



프랑스 특수부대 GIGN에서 사용하는 대검

Glauca B1보다 단순한 임무를 수행할 때 사용하며 길이는 28Cm입니다. 
현재 민간용으로도 판매되고 있으며 영화에서 자주 보던 칼이네요.



8. Ballistic Knife 가격미상



러시아의 스페츠나츠가 사용하는 대검.

탄도검으로 버튼을 누르면 칼날이 총알처럼 튕겨 나가는 아주 위험한 검입니다. 

현재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판매가 금지된 칼인데 90년대에 미국과 유럽에서 많이 유행했던 칼입니다. 




9. Ari B'Lilah 가격미상



이스라엘 특수부대 '야밤'에서 사용하는 대검.

세계 최초로 제조업체와 특수부대원들이 함께 디자인한 군용칼인데 이 칼이 유명해진 이유는 민간용으로 절대 구매할 수 없는 칼이기 때문이죠




10. Kukri 5만6천 원



네팔의 특수부대 구르카 부대에서 사용하는 대검

영국 육군 부대에 편제되어 있느 구르카 부대는 '전 세계에서 가장 훈련이 잘된 전투부대 톱10'에서 3위에 들 정도로 전투력이 높은 부대입니다. 

네팔의 전통 무기인 Kukri를 사용하고 있으며, 길이가 45Cm로 길다.




M7 신형 제식대검



한국 특수부대의 대검 

현재 대한민국 특전사, 해병대, 공군 특수부대, 육군 특공부대에서 사용하고 있는데, 실제 한국 특수부대의 칼을 보니까 외국 특수부대에서 사용하는 특전용 칼을 부러워할 수밖에 없을 거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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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게 생긴 모습 때문인지 일반 과일하고는 비교불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과일이라고 선정된 10가지 과일이네요. 과일 하나에 수천만 원이 넘는 것도 있고,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과일부터 슈퍼리치들만 먹을 수 있는 과일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상상초월, 과일들에 대해서 알아볼게요!


10. 아기부처 배 - 12,000원



중국과 베트남에서 인기 있는 먹으면 행운이 온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2009년 중국의 한 농부가 출시했는데 이렇게 만들기까지 6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특히 새해 선물로 많이 팔리는데 일반 배와 비교해서 비싼 가격이지만 항상 품절 대란을 겪을 만큼 현지에서는 큰 인기를 누린다고 하네요^^



9. 세카이이치 사과 - 25,000원



'세계 제일'이라는 뜻의 사과로 둘레가 15인치로 일반 사과보다 크며 당도가 높고 신맛이 적은 것이 특징입니다.

세계 제일의 세카이이치 사과 꼭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일본에서 재배되고 있습니다^^



8. 데코폰 - 90,000원



한라봉의 원조로 알려져 있는 데포콘!

역시 일본 과일이며 우리나라 한라봉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가격은 훨씬 비싸답니다.



7. 셈비키야 딸기 - 97,000



일본의 고급 과일상에서 판매하는 딸기로 한 팩당 무려 97,000에 판매되고 있는 딸기입니다. 

일반 딸기보다 당도가 훨씬 높고 모양이 아름답다고 하는데.. 과연 딸기 한 팩을 10만 원 가까운 돈을 주고 구매할 사람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6. 네모난 수박 - 900,000원



네모난 수박은 일본의 가가와현에서 생산되는데, 식용보다는 관상용으로 많이 판매되는 과일이라고 합니다. ㅎ

수박 1통에 90만 원이라니...



5. 헬리건의 잃어버린 정원 파인애플 - 1,800,000원



영국의 콘월에 위치한 곳으로 유럽에 남아있는 유일한 파인애플 재배지라서 그런지 가격이 정말 셉니다.




4. 타이요 노 타마고 망고 - 2,000,000원



일본 현지에서 가장 고급 망고로 알려져 있는데 일명 '태양의 알'이라는 뜻의 고급 망고입니다. 

당도가 매우 높기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일본에는 정말 비싸고 특이한 과일이 많은 거 같아요!




3. 루비 로마 포도 - 4,600,000원



일본의 이시키현의 농부들이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연구해서 개발한 포도입니다. 

알이 굵고 당도가 높아서 의외로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네요. ㅡㅡ^




2. 덴수케 수박 - 7,000,000원



일본의 훗카이도에서만 재배되는 검은 색상에 줄무늬가 없는 수박입니다. 

먹었는데 만약에 맛이 없다면? 교환될까요?




1. 유바리 멜론 - 26,000,000원



일본 유바리시의 특산품으로 멜론 위에 갓을 씌운 모습이 특이하네요. 

일본에는 정말 특이하고 독특한 과일들이 많이 있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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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현재 휴전상태입니다. 당장 몇 분 후에 전쟁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지만 가끔은 이런 상황들을 쉽게 잊는 거 같습니다. 북한은 김정은 체제에서 지금까지 100여 회 이상 도발을 하고있습니다.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당장 전쟁이라도 일으킬 거처럼 위협 수위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북한의 도발에 항상 완벽한 대비태세를 갖추어야 하며 가장 효과적인 무기체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오늘은 이러한 현실 때문에 국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대량살상무기인 집속탄을 한국이 절대 포기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집속탄은 원자폭탄 다음으로 강력한 무기?


넓은 지역에 무차별적으로 강철비를 쏟아붓기 때문에 적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집속탄'입니다.

단, 목표지역 설정 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은 국제적으로 집속탄의 생산 또는 비축을 금지하는 협약(오슬로)에 많은 나라들이 가입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나라들은 한국처럼 전쟁 가능성이 없거나 또는 주변국보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보유한 나라가 많습니다. 


현재 전쟁 중이거나 휴전 중인 나라는 가입을 하지 않은 상태죠.

(미국,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 한국은 이 협약을 체결하지 않은 상태)  


 *한국은 이 협약에 가입하지 못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북한 




'집속탄'

'클러스터 폭탄(cluster bomb)' 또는 '모자 폭탄'이라고 부릅니다.

하나의 폭탄이 일정 고도에서 수십~수백 개의 자탄으로 분리된 후 낙하하면서 지상에 광범위한 타격을 주는 대량살상무기입니다.


▼집속탄은 '강철의 비'로 불리며, 폭격 범위가 넓다


가끔 미국의 전략폭격기가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할 때 자탄들이 떨어지면서 낙하산이 펴지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그게 바로 집속탄입니다. 

집속탄의 장점은 화력이 강하며 타격 범위가 넓은 것을 들 수 있는데, 반면에 큰 단점 또한 있습니다. 

바로 불발률이 높다는 것이죠


세계 여러 국가에서는 포탄의 불발률을 대략 2% 이내로 관리하고 있는데 집속탄의 경우는 특별한 센스, 장치가 없이 대량으로 살포하기 때문에 불발탄이 나올 확률이 다른 폭탄 보다 높습니다.



▼최신형 집속탄 CUB--105 대장갑 탄두 내장(적외선 추적)

1발로 전차 40대를 박살 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불발탄들은 결국 지뢰처럼 작용해서 민간인들의 피해로 이어졌는데, 최근에는 클러스터 폭탄의 자탄을 스마트 폭탄으로 제작하는데 금속을 탐지해서 직접 타격하거나 공중에서 투하된 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터지는 방식으로 개량되고 있습니다. 


집속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드렸고 지금부터는 

이 무기를 한국이 보유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금지된 무기 집속탄, 한국이 절대 포기 못하는 이유


1. 집속탄 보유 배경


가장 큰 원인은 북한입니다. 남북한 주요 군사력 비교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의 군사력은 119만 명에 이르며, 유사시 200~300만 명까지 전선에 즉각 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전차, 장갑차, 포병 등 남한의 2배 정도의 이르는 전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북한군이 장기전에 대한 수행능력은 떨어지지만 도발 초반에는 우리 측의 군과 민간에 상당한 피해를 줄 것은 당연합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장비들이 아무리 낡고 장기전 운용능력이 떨어진다고 하더라고 한국과 미국의 정보자산을 동원하여 북한의 도발이 예상되거나 도발 시에 가장 효과적으로 타격을 줄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한데 집속탄은 이러 상황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적을 불능상태로 만들 수 있는 무기입니다. 





전시에 북한의 대규모 병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압


2. 대인 살상용


지구 상의 모든 무기는 살상용입니다.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한국군이 선제 공격을 하지 않는 이상 북한군은 불시에 남침을 할 것이며, 한국은 선제타격을 허용한 이후 대응을 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 경우 선제 공격을 하는 북한군은 전혀 타격을 입지 않은 상태에서 개전 초반에 대규모로 우리군의 방어선을 뚫고 쇄도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경우 불시에 시작된 남침으로 우리는 예비군의 소집 등 전면적인 대책을 수립하기도 전에 당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휴전선 지역으로 *제파전술이 뛰어난 북한군의 공세를 한국군의 선형 보병 방어로는 사실 방어하기가 매우 가다로운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북한군의 '제파전술'

파상공격(波狀攻擊)이라고도 하며, 적에게 부대 재편성과 증원의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 공격 제대를 한꺼번에 투입하지 않고, 순차적으로 투입하는 전술.


이렇게 개전 초기에 선제공격을 당하고 제파전술에 밀리게 되면, 수도권 이북지역은 말 그대로 남북한 전력의 집중으로 초토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남북한이 함께 공멸할 수 있는 상황까지 갈 수 있는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개전 초기에 북한군의 전력이 우리 민간인 거주 지역까지 쇄도하기 전에 반드시 방어를 해야 하며, 남쪽으로 쇄도하는 북한군을 확실히 괴멸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무기가 있어야 합니다.





남북한 전차 2400 VS 4200


3. 기갑부대


북한의 전차 보유 대수는 우리군의 2배에 이르는 수준입니다. 물론 장비가 노후화되어서 장기전에 불리할 수 있지만 우리 측의 인명 피해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는 개전 초기에 막강한 화력으로 일시에 괴멸시켜야 합니다.


▼남하하는 북한군 전차와 보병을 일시에 괴멸시킵니다.




이때 가장 효과적인 무기로는 항공탄은 대장갑 탄두를 사용하는 CBU-89를 들 수 있으며, 지상 무기로는 현재 우리 군과 미군이 운용하고 있는 M270 MLRS와 천무 다연장, ATACMS 미사일 등을 들 수 있겠습니다. 


▼한국군과 미군에서 운용 중인 M270 MLRS 


'M270 MLRS'

차량 한대에 12문이 장착되며, 1문의 화력은 2개 포병대대의 화력과 비슷합니다.

MLRS 1대는 적의 대대 또는 밀집된 사단을 괴멸시킬 수 있으며, 북한군 전차와 장사정포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자원입니다.


▼ATACMA(에이태킴스) 미사일


ATACMA 미사일 1발에는 무려 500개의 자탄이 들어있으며, 1발당 축구장 3개의 면적을 일시에 파괴할 수 있는 북한군 보병과 전차부대가 가장 무서워하는 우리군의 전력입니다. 





북한군 도발 시, 적의 원점 타격에도 효과적


선제공격을 당했을 때, 적의 원점 또는 2차 공격이 예상되는 지역에 전투기를 이용해서 최단 시간에 효과적으로 타격을 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비행장, 기갑부대, 사단 등 북한군의 화력이 집중된 곳을 집속탄 미사일 몇 발로 효과적으로 북한군을 전투불능 상태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에는 꼭 필요한 무기라고 생각됩니다. 


▼6.25 전쟁 중 전쟁고아

 

이처럼 한국은 현재 집속탄 금지 협약에 가입을 하고 싶어도 남북 분단의 휴전상태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입니다. 

더구나 북한은 이미 핵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금도 ICBM, SLBM, 원자력 잠수함 등 핵 전력을 계속 키워나가고 있는 실정이며, 앞으로 북한군의 해체나 대대적인 축소가 이루어지거나 현재의 안보상황이 변하지 않는 이상 한국은 어쩔 수 없이 이런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힘 없이는 평화도 번영도 없다' 강한 한국을 만듭시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공감은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지금으로부터 48년 전 1969년 3월, 중국과 소련의 국경지역인 우수리강의 작은 섬 '전바오섬'은 중국과 소련, 어느쪽에도 영유권이 없었기 때문에 좁은 섬에 양국의 국경경비대가 함께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중국과 소련은 이념적 대립이 있었던 시기인데 이 지역은 양국 간의 갈등을 표출했던 대표적인 장소로 변합니다. 그리고 얼마후 양국 경비대간의 몸싸움이 발생하는데.. 이 몸싸움이 국제 사회에 큰 획을 그읏던 사건의 시초가 됩니다. 



사건의 발단은 국경 경비를 담당하는 양국 군인들의 자존심이 걸린 몸싸움이 원인이었습니다. 


이십 년 동안 이어진 중국과 구소련의 갈등



당시 양국의 사회적 분위기는 '쇼윈도 부부'였다?


1956년 2월 소련의 흐루시초프 총리는 1인 독재노선에 대해서 비판하는 연설을 하는데 중국의 모택동 역시 1인 독재체제였기 때문에 그는 흐루시초프의 발언에 격분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양국의 갈등은 깊어졌고 결국 1960년도에 소련은 중국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중국에 있는 군사기술자들과 공업 자원들을 철수시킵니다. 화가난 중국은 급기야 자신들이 공산주의의 정통이라고 내세우며 소련의 흐루시초프를 '공산주의의 적'이라고까지 비난을 하며 대립을 합니다. 


결국 공산주의라는 한 식탁에 앉아 있었던 중국이 

흙 묻은 발을 올리게 되는데...




이런 갈등 속에서 중국은 1964년 드디어 핵 실험에 성공하였고, 이때부터는 소련군과 자주 자존심을 건 싸움을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양국 대표 군인들의 몸싸움이 원인이 되어 핵전쟁이 될뻔한 '우수리강 사건'입니다.



사건의 시초

농담을 주고받던 사이에서 주먹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다.


양국의 국경경비대는 얼어붙은 작은 섬에서 처음에는 서로가 사이가 좋았습니다. 남자들은 담배 한 대 나눠피우면 금방 친해지니까요.^^

아마 이들도 처음에는 그랬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도 얼마 가지 못했습니다 



농담으로 시작했던 영토 소유권에 대한 언쟁이 곧 몸싸움으로 발전했고, 양쪽 경비대들은 자존심을 건드리며 몸싸움을 했는데...

모든 싸움이 그렇듯이 결국에는 주먹싸움이 되었고, 이게 또 하다 보니 패싸움으로까지 번지게 되었습니다.



중국 VS 소련. ROUND 1

작은 고추가 맵다? NO


그런데 싸움의 시작은 누가 했을까요?

당연히 불곰국 군인이 먼저 시작을 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선방은 체격이 훨씬 작은 중국군이 날렸습니다. 

물론 결과는 소련군 승!


▼괜히 덤볐어..


중국 VS 소련. ROUND 2

군인과 국가의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다


먼저 시비를 건 중국군은 체격이 훨씬 큰 러시아군에게 상대 자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시 얼어붙은 강 위에서 중국 경비대는 거의 전멸하다시피 소련군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었죠. 그런데 첫 패배를 설욕하려고 중국 경비대는 다음날에도 소련군을 찾아가 시비를 걸고 패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개머리판을 세워서 달려드는 중국 경비대


결과는 다시 한 번 소련군이 이겼는데 중국은 이 패싸움으로 국경경비대와 중국의 체면이 곤두박질칩니다. 

일반인의 싸움이라면 모를까 군인 VS 군인의 싸움이기에 어찌 보면 국가의 체면이 걸린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싸움에서 두 번이나 패했으니 중국 군부에서 얼마나 이를 갈았을까요?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중국은 여기서 꾀를 냅니다. 그리고 다시 반격을 준비하는데...




중국 VS 소련. ROUND 3

중국의 복수혈전!


중국은 국경경비대 대원들을 전부 교체하는 결정을 내립니다. 

최정예 특수부대원들로 전부 교체하는데 이들은 동북지역을 담당하는 제49야전군 소속의 특수부대원들이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중국 군대에서 한가락 하는 실전 무술의 베테랑들이었는데.. 이 사실을 모르는 소련군들은 두 번이나 두들겨 팼던 중국군을 다시 만나자 이들을 놀리기 시작하였고, 또 한 번 양측 간에 패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체구만 믿고 까불었던 소련군은 중국의 특수부대원들에게 일방적으로 깨지고 부상자들을 겨우 부축하여 부대로 복귀합니다. 


이렇게 2패 후, 1승을 겨우 거둔 중국군이 소련군에게 통쾌한 복수를 하면서 이 사건은 마무리가 되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불곰국 군인들이 절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죠. 

소련 국방경비대의 대장은 상부에 상황을 보고하여 '이에는 이, 눈에는 눈'

특수부대원을 부대에 배속시켜줄 것을 요구하였고 승인이 떨어지자 소련 국경경비대 인원을 모두 극동방면군 소속 특수부대원들로 전원 교체합니다. 



작은 섬에서 시작된 군인들의 어깨싸움이 

국가의 군대를 대표하는 양국의 특수부대의 싸움으로 발전합니다.


복싱 잽으로 무장한 소련 특수부대의 지휘관 등장.


중국 특수부대에 복수를 하기 위해서 파견된 소련군 특수부대의 지휘관은 다리에 장애가 있었는데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난 싸움에서 승리한 중국군 특수부대원들은 그를 얍잡아 보고 또다시 먼저 싸움을 걸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는 일대일의 싸움에서 소련 지휘관의 잽 앞에 중국군 특수부대원들의 코가 완전 아작이 납니다. 녹다운1, 녹다운2, 녹다운3,, 

결국엔 잽의 귀재인 소련군 지휘관에게 중국군은 전부 코 뼈가 부러진 채 부대로 복귀하는 수모를 겪죠^^


▼병법의 마지막 단계 - 36계 줄행을 시전 중인 중국군 특수부대


중국 무술의 본고장 산둥성 출신 '산둥꼬마'의 출현


'산둥꼬마'

실존 인물로 '전바오섬'에서 소련 특수부대 지휘관과 1:1 싸움 중 권총 7발을 맞았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난 인물.

중국정부는 1969년 8월 1일에 그에게 영웅칭호'를 내렸습니다. 


중국군에서도 최정예로 알려진 제49집단군 소속 특수부대원들의 패배로 중국 군부는 노발대발하여 묘안을 찾기에 나섰고,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그 유명한 '산둥꼬마'로 알려진 중국군 최고의 무술가였습니다. 

그는 체격이 큰 소련군고의 패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부대에 목봉술을 전수합니다. 



양국 특수부대원들의 자존심 싸움이 핵 전쟁의 위기까지..


그리고 때가 되자 다시 한 번 양국의 특수부대원들은 시비가 붙었는데 목봉술로 무장한 중국군에게 소련군은 말 그대로 묵사발이 되었습니다. 이를 보고 있던 소련 지휘관은 산둥꼬마에게 1:1을 신청하고 승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그의 목봉술에 두들겨 맞기만 하다가 홧김에 그를 향해 7발의 권총을 쏘는데..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보던 중국과 소련의 경비대는 곧 교전에 들어가 인명피해까지 발생하게 됩니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중국과 소련의 핵 전쟁을 촉발 시킬 뻔했던 '우수리강 사건'입니다. 



결국 중국과 소련군의 특수부대원들의 어깨싸움(자존심)이 원인이 되어 2차례의 교전 끝에 중국군은 800여 명, 소련군은 6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국경에는 중국군 80만 명과 소련군 60만 명 등 대규모 병력이 동원되어 명령만 기다리며 대치하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소련의 알렉세이 코시긴 총리는 중국에 대한 선제 핵 공격을 계획했을 정도로 당시 상황은 중국과 소련, 형제국 간의 핵전쟁 발발의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갔었는데 다행히 그해 9월 소련 총리의 북경 방문을 계기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전바오섬' 충돌을 계기로 중국은 소련을 주된 적이라 명했고, 미국과는 핑퐁외교를 통해 화해의 시대를 열어가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중국과 러시아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을 견제하고 있는데, '국제 사회에서는 정말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라는 말이 실감이 나네요.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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