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언월도, 큰 쇠자루의 끝에 달이 누운 듯한 도(刀)를 용이 물고 있는 모습을 한 '대도류 병장기'로 무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벌써 머릿속으로 삼국지의 관우를 떠올리고 계실지 모르겠네요 ^^. 멋들어지게 흘러내린 흰 수염을 흩날리며 한 손에는 청룡언월도를 쥔 관우의 모습은 강함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들과 그들과 운명을 함께 했던 무기들은 많이 있지만 대도류 병장기는 동양의 무기가 가지는 신비로움과 함께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 어떤 힘이 존재하는 거 같습니다.



 


개인에 따라 다르겠지만 관우는 삼국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무인들 중에 현대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니고 있는 80근(48kg)에 달하는 청룡언월도 역시 그의 캐릭터와 가장 잘 어울리는 '필살 아이템이'이죠.



중국의 청룡언월도는 80근인데 이걸 어떻게 휘둘러?


명나라의 병법가 모원의도가 말하길 "청룡언월도는 기예의 웅장함은 보여줄 수 있으나 전장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80근이나 되는 무게 때문인데.. 

80근으로 말하자면 48kg 정도의 무게입니다. 이것을 전장에서 자유자재로 사용할 정도라면 체격이나 힘이 일반인들보다 배는 되어야지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니면 단지 관우라서 가능했던 것일까요?



그런데 실제로 우리 역사에서 실존하는 인물 중에 관우 못지않은 청룡언월도의 고수가 3인이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신가요? 

실제로 더 많은 무인이 청룡언월도를 사용했지만 오늘은 그중에 가장 유명했던 고수 3인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그럼 지금 저와 함께 우리 역사 속의 청룡언월도의 고수를 찾아 함께 떠나보겠습니다. 



청룡언월도!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군에 의해 전파되다

그런데 무게가...


하지만 전장에서 조선의 일반 무장들이 사용하기에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무게였습니다. 한 번 휘둘렀다가는 자신도 함께 날아갈 정도였으니까요..

이쯤 되면 아무리 좋고 멋진 무기라도 뭔가 변화를 줘야겠죠?


당장 무거운 장식과 크기를 줄이면서 파워가 조금 약해졌지만 대신 도의 날은 더욱 서슬이 퍼렇고 가볍게 제작되어 적과 조우했을 때 이 병기를 휘두르면 적들의 간담이 서늘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 후기의 무관들은 일본의 왜검을 수련하였고, 기병은 청룡언월도를 이용한 마상월도(馬上月刀)를 수련하였습니다. 




본격!

한국사 속의 청룡언월도 고수를 찾아라!



제1 고수, 효종 (1619~1659) 


내 기필코, 이 굴욕을 갚고야 말테다. 

이 조선을 부강하게 만드리라.


조선 제17대 왕이며, 인조의 차남으로 병자호란 이후 형인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서 8년 동안 수모를 겪으며 볼모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귀국 후 소현세자가 돌연 사망하자 효종이 세자에 책봉이 되는데 1649년 즉위하여 '삼전도의 굴욕'과 인질 생활의 굴욕을 갚고자 북벌을 주장하며 군제의 개편과 군사훈련에 올인하게 됩니다.



▲유물로 남아있는 효종의 청룡언월도와 철퇴

그는 그와 뜻을 함께하는 무관들과 북벌을 위해 기병과 조총수, 살수를 양성하는데 모든 전력을 기울였으며, 오직 북벌만을 생각하면서 자신 또한 언월도와 철퇴를 들고 무공 수련에 온 힘을 다 쏟았다는데..


그런데 저 무겁기로 소문난 언월도와 철퇴를 들고 어떻게 수련을 했을까요? 

보통 임금이라면 유약하고 심약하고.. 그런 느낌이잖아요?




타고난 무골, 피맺힌 한


무장들도 휘두르기 어려운 청룡언월도를 들고 말을 달릴 정도로 효종의 체격이나 힘은 장사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제를 개편하고 그 오랜 시간 동안 왕인 자신이 직접 언월도를 들고 무공 수련을 하며 군사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아마도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아버지 인조의 굴욕을 두 눈으로 지켜본 아들의 피맺힌 한이였을 거 같습니다.





제2 고수, 장조 사도세자 (1735~1762) 


조선의 검신, 김체건과 

당대 최고의 무술가들에게 배우다


어려서부터 무예에 능했던 그는 위에서 언급했던 고조부인 효종을 빼다 박았다고 할 만큼 무인의 기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습니다. 

어릴 때는 매우 영민하여 아버지 영조에게 무한 사랑을 받았지만 차츰 공부와는 담을 쌓았고, 사춘기 소년마냥 무예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의 주위에는 당대 제일검으로 불렀던 검신 김체건과 최고의 무술가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쉽게 말한다면 왕이 될 사람이 무인의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었다고나 할까요? ^^ 



이런 환경에서는 누구라도 당연히 무술을 좋아할 수밖에 없겠죠. 더구나 14세 어린 나이에 고조부의 청룡언월도와 철퇴를 들고 무술 수련을 할 만큼 타고난 무골이었고 이미 어린 나이에 상당한 무공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협지로 이야기한다면 천하제일검 스승의 몇 갑자 내공을 전수받은 제자 정도로 생각하시면 될 거 같군요^^ 


그리고 만에 하나 그가 죽지 않고 왕이 되었다면, 고조부 효종의 북벌의 정신이 깃든 청룡언월도를 휘두르며 만주 벌판을 달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랬다면 조선의 영토는 만주지역까지 이르며 지금은 중국과 대등한 국가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봅니다.




▼무사 백동수의 백동수역(좌), 여운역(우)


제3 고수, 백동수 (1743~1816)


강한 조선을 꿈꾸었던 조선의 협객


우리 역사에 존재했던 무술 고수들 중에는 무협지에 등장해도 될 만큼 뛰어난 무인들이 많습니다. 그중에는 '최고의 무사' 타이틀에 항상 포함되는 인물들이 있는데 오늘 소개해드리는 한국사 속의 청룡언월도 고수 3인 중 마지막 인물인 무사 백동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조선 후기의 무인으로 기병술, 활쏘기 등 다양한 무예에 소질이 있었고, 당시 조선의 검신으로 불렀던 김체건의 아들인 검선 김광택에게 검술을 배웠던 인물입니다. 검신의 아들 검선에게 무술을 전수받았다면 그의 무공 수위가 얼마나 높았을지 짐작할 수 있을 거 같네요.



조선 기병 무기의 최고봉! 청룡언월도


강한 조선을 지향했던 백동수는 무예가 뛰어났던 장교 몇 명과 함께 당시 군영마다 달랐던 무예 기법들을 기병 무예 18가지와 마상무예 6가지로 합쳐 '무예도보통지'를 만들었으며, 전국 팔도의 군영에 훈련 교범으로 보급합니다. 

최근 방영했던 드라마 '무사 백동수'에서는 검술에 관련된 영상이 대부분이었는데 실제 무사 백동수는 청룡언월도를 이용한 마상월도의 고수 중에 고수였다고 전해집니다.


마상월도(馬上月刀)

말을 타고 달리면서 월도를 사용하는 기법으로 조선의 기병들이 필수로 익혔으며, 무예도보통지의 그림 중 유일하게 수염을 기른 시연자가 있는데, 일반 무사들이 쉽게 펼칠 수 있는 기예가 아니기 때문에 그가 바로 백동수라고 지금까지 추측하고 있습니다. 



오늘 준비한 내용은 여기까지입니다. 


도전하는 국가는 창대하고 안일한 방법으로 살려고 한 국가는 쇠퇴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인류 역사가 보여주는 진리인 거 같습니다. 

'평화는 우리 힘이 강할 때만 보장된다'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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