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1980년대 일명 '개구리복'으로 불렀던 교련복을 입고 학교 운동장에 모여 군사훈련을 받았던 시절. 운동장 한편에 모여 모형 총기를 들고 남학생들은 총검술과 제식훈련을 받았었고, 여학생들도 일명 예외 없이 구급교육을 받는 광경은 그 시절에는 학교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당시 교련은 고등학교와 대학교에 재학 중인 남녀 학생들을 상대로 실시된 군사 관련 교육훈련을 실시하는 필수 과목이었습니다. 지금은 상상도 안되는 교련 과목이 당시 생겨난 배경은 1968년 북한 특수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김신조 사건이 배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69년부터 남녀 고교의 필수 과목으로 채택되었었죠.
이때부터 전국 모든 학교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일주일에 1번에서 2번 정도 교련 수업을 받았습니다.
▲교련 선생님으로부터 제식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당시 교련을 담당한 선생님은 군인 장교 출신이었고, 학교 내에서 가장 무섭고 파워가 막강했습니다. 교련 선생님께는 오로지 복종만이 살길이었죠^^
교련 수업이 있는 날에는 거의 모든 학교의 운동장에서 학생들의 구령 소리와 기합소리가 하루 종일 들렸었고, 1년에 단 하루, 교련 실습 평가를 받는 날은 정말 큰 행사였습니다.
▲중앙에 있는 학생이 학생 연대장입니다.
진짜 군인들보다 늠름한 모습입니다.
학생 연대장은 전교에서 공부를 잘 하는 모범생이었고 특히, 학생들 사이에서 리더십도 있어야 했기 때문에 학생 연대장이 되면 교련 선생님 못지않게 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었죠.
▲학생 행렬
하얀 천을 목에 두르고 교련복을 입은 모습은 당시 군인들의 군복보다 멋졌습니다.
행렬 중에 '우로~ 봤' 포즈.
▲교련 시, 총검술과 제식 훈련
이때는 학교에 무기고가 따로 있었습니다. 실제 총기뿐 아니라 카빈, M16 모형 총기가 무기고에 항상 있었고, 교련 수업이 있는 날에는 학생들이 모두 교련복으로 입고 무기고 앞에 서서 총을 지급받는 모습은 지금 군인들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군인들보다 각이 살아있는 사격자세!
▲벌을 받고 있는 학생들
교련 수업을 받기 위해서는 교련복과 각반, 요대, 교련모 등 준비물을 챙겨야 하는데 당시에는 교련 수입이 시작하기 전에 준비물을 제대로 챙겨 오지 않은 학생들을 따로 교련 선생님이 체벌을 가하거나 얼차려를 주는 훈훈한?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잘 빼먹는 준비물은 아마도 각반?
▲총기 분해와 조립 중인 학생들
▲학생 교련 실습 평가일
당시 교련 수업은 여학교에서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여학생들은 주로 붕대감기와 구급법, 환자 이송법 등을 배우면서 전시에 간호 장교와 같은 역할을 했으며, 이 때문에 각 가정에 붕대가 없는 집이 없었고, 붕대 감는 법 또한 모르는 가정이 없었죠.
▲군용 들것을 놓고 환자 운송에 대한 수업을 받는 모습.
▲방독면을 착용 중인 여학생들.
1970년~1980년대에는 각 학교에서 필수과목이었던 교련 수업은 교련 선생님의 지도하에 굉장히 힘들게 진행되었던 수업이었는데 1980년대 말이 되면서 대부분 교육과정이 바뀌어 1992년부터는 교련 수업이 군사훈련에서 응급처치술 등을 배우는 것으로 바뀌었고, 그 이후에는 점차 대다수의 학교에서 교련 수업 자체를 폐지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추억이기도 했던, 그 시절의 교련 수업과 관련된 내용이었습니다.
▲영화 '친구'에 등장했던 장동건의 교련복 패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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