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 일본군에는 패전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습니다. 이미 일본은 전쟁을 수행할 자원과 전쟁을 승리로 이어갈 희망도 의지도 희미해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군 수뇌부들은 그들이 가진 권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 단단히 미쳐있었습니다. 태평양 전쟁에서는 거의 매일 패배를 거듭했었는데 이때 미치광이 수뇌부들이 생각해낸 전술이 바로 자살특공대, 가미카제 특공대였습니다. 


일명 '신풍 특공대'라고 해서 일본인들은 여기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진실을 살펴보면 단지 일본 군 수뇌부들의 욕심이 만들어낸 자기 최면일 뿐이었습니다. 




이미 미드웨이 해전과 필리핀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끝없이 미군에게 밀립니다. 우물 안 개구리였던 자신들의 기술력을 맹신했던 결과는 그들을 자멸로 이끌고 갔는데 이때 일본 수뇌부에서 생각해낸 전술이 바로 자살특공대, 가미카제입니다.

낡은 전투기 한대와 조종사 한 명이 항공모함을 박살 낼 수만 있다면 남는 장사라는 생각했던 당시 정신줄 놓은 일본 군부의 입맛에 딱 맞는 작전이었습니다.


결국 가미카제의 첫 전술로 미 함정 1척이 침몰되자 일본 수뇌부는 이 전술이면 전세를 회복할 수 있다는 어리석은 판단을 하였고, 계속해서 가미카제를 확대해 나가기로 합니다. 




가미카제는 절대 자발적이지 않았다


가미카제를 다룬 영화를 보면 출정에 앞서 모든 특공대원이 '천황만세', '천황을 위해 명예롭게 죽자' 등을 외치면 출정했다는 주장들이 미화되어서 나오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실제로 출정을 나서던 그들의 모습은 너무도 처절했는데, 죽는다는 생각에 전투기까지 혼자 힘으로 걷지 못해 지상의 요원이 전투기까지 부축하여 조정석에 집어넣으면 승강타를 잡고 소리 내어 우는 모습들을 비행장에서 쉽게 볼 수 있었다. 



가미카제 특공대의 생존자들의 말에 의하면 군부에 세뇌되거나 일부 소수의 전쟁 미치광이들은 기꺼이 특공대에 자원했었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파일럿들은 단지 의무감과 출정 회피시 본토의 가족들이 받게 되는 처벌이 무서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던 경우가 많았었다. 그리고 일부 부대에서는 그들이 임무를 회피하지 못하도록 강제적으로 전투기의 착륙장치를 제거하거나 조종사를 탑승시킨 채 전투기 유리창을 용접하는가 하면 항공유 자체를 적게 주유해서 돌아오지 못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언 발에 오줌 누기식 가미카제의 전술


가미카제 공격으로 격침된 선박은 47척.

정규 항공모함 0척 

호위 항공모함 3척

전함 0척

순양함 0척

구축함 14척

기타 수송선, 운반선, 유조선 등 20척 



가미카제 특공대의 주 목적은 미군의 항공모함과 전함을 격침시키는데 있었습니다. 하지만 창설 초기 경험있는 파일럿들이 가미카제로 대거 수장된 이후로는 오랜 시간 훈련을 받아야 하는 파일럿이 단 몇 달을 연습하여 특공대가 되었기 때문에 출정 후 미군의 항공모함에 자폭을 해야 하는데 초보 파일럿들은 미군의 대공포에 기겁을 해 바다에 추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결국 단 한 대의 항공모함도 침몰시키지 못했습니다. 

연합군과 미군의 피해도 많았지만 다행히 더 큰 희생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자살공격을 받은 미 항공모함


당시 항공모함은 일본의 자살공격에 직접적인 공격을 당해 큰 충격을 받았지만 미 항공모함의 뛰어난 설계 구조 덕분인지 단 1척도 격침되지 않았습니다. 


▲미 전함 미주리호

전함도 마찬가지였는데 미주리호는 가미카제의 공격을 받았지만 선체에 흠집만 나고 작은 화재가 난 것 외에도 큰 피해가 없었습니다. 모기가 살짝 긁고 지나간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진짜 제대로 된 베테랑 조종사들은 미군 항공모함의 대공포화를 멋지게 피한 후 항모에 착륙하여 당당히 항복했던 사례들도 있었는데 전쟁의 결과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강제적인 자살공격은 누구나 피하고 싶었을 겁니다. 




전투기 조종사는 양성하기 힘들다




전투기 조종사 한 명을 양성하는 데는 몇 년이라는 시간과 많은 비용이 들어갑니다. 당시 일본은 이미 전세가 기울었는데도 불구하고 군 수뇌부의 욕심으로 전투기 가미카제라는 무리수를 둡니다. 이러한 이유로 잘 교육된 파일럿들은 모두 전장에서 죽고, 훈련되지 않은 파일럿들이 전장에 투입되어 자신들의 목표였던 항공모함과 전함은 한 대도 격침하지 못한 채 죽어갔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1000여 대에 가까운 자살공격으로 단 3척의 함선만 파괴되었던 일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죽음은 허무함 그 자체였다. 



계속된 자살공격, 다양한 가미카제


▲자살 비행폭탄 '오카(일본명: 사쿠라바나)'


'오카'는 태평양 전쟁이 끝날 무렵에 852기나 제작되었던 폭격기에서 낙하된 채 자폭하는 비행선으로 동체 앞부분에 1200kg의 폭탄을 장착한 후 일본군이 탑승하여 폭탄과 함께 목숨을 던지는데, 당시 일본인들이 이 전술이 너무 어리석고 무모하다고 해서 이 비행체를 '바보'라는 뜻으로 '바가'라고 부르기도 하였고 동체 앞부분에는 벚꽃이 그려져 사쿠라바나로 불렀습니다. 


▲자폭 어뢰 '가이텐'


어뢰의 명줄률을 극단적으로 높이기 위해서 조종사가 직접 어뢰에 탑승해서 적 적함에 돌진하는 일본 해군의 자살공격 무기로 명중률이 떨어진 일본 해군의 구식 어뢰들을 개조해서 만든 것으로 일본 해군 수뇌부에서는 쓸모없는 구식 어뢰를 사람을 탑승시켜 자폭용으로 개조한데 대해서 아주 현명(?)한 전술이었다는 평가를 했었다고 합니다.(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인 듯) 하지만 조종법이 어려워 훈련 중에 사망하는 인원이 발생하였고, 작전 중에 좁은 어뢰 내부에서 질식사하는 경우도 많아서 연합군에게 큰 피해는 입히지 못하였고, 엉뚱하고 기괴한 작전으로 병사들만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자폭 잠수함 '가이류'

군수공장에서 자폭용으로 저렇게 많은 잠수함들을 찍어내고 있습니다.


▲자폭 잠수부 '후쿠류'


가미카제의 끝판왕! 후쿠류입니다. 잠수부가 50kg이 넘는 잠수복을 착용한 상태로 적 함선에 접근하여 폭탄이 장착된 창을 함선에 찔러서 격파한다는 원리인데 도대체 군 수뇌부에서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도 안 되는 방법을 생각했는지.. 실전에 투입되기전 벌써 훈련 중에 이미 300명에 가까운 사망자가 발생하였고 다행히 이 작전은 전쟁이 끝나면서 실전에 투입되지는 않았습니다. 


▲자폭 보트 '신요'


작은 보트에 폭탄을 싣고 전속력으로 적 함선을 향해 충돌하는 원리였지만 전속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느려 터지고 선체가 얇아서 함선에 접근하기 전에 기관포에 맞아 폭발하는 경우가 많았고 얕은 파도에도 배가 뒤집어지는 일도 많았으며, 적함을 향해 달려가다가 두려움에 항복하는 등 전장에서 승과는 거의 없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가미카제를 지시한 자들은 어떻게 되었나?




지휘관의 의무란 전장에서 모범을 보이며, 자신이 거느린 부하를 한 명이라도 살리는 것이데, 당시 일본 군 수뇌부는 전쟁에서 패하면 자신들도 죽겠다는 말로 군인으로서 의무만 강요하여 수많은 부하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정작 전쟁이 끝나자 대부분의 군 간부들은 누구 하나 그 말에 책임을 지는 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처럼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가미카제 특공대란 단지 이미 전쟁을 수행할 능력조차 없어 패전이 확실 시 된 상황에서 일본 군 수뇌부의 욕심이 만들어낸 말도 안 되고 엉뚱한 자기 최면일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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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영토분쟁 지역인 쿠릴열도 남부에 위치한 4개의 섬은 1855년 이후 영유권이 4차례나 바뀔 정도로 사연이 깊은 섬입니다. 분쟁의 시작은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직후 쿠릴열도와 남 사할린 지역까지 자신들의 영토로 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이때 2차 대전에 소련의 참전을 기대했던 미국과 영국은 소련에 2차 대전을 참전하면 일본에 빼앗긴 남부 사할린과 쿠릴열도의 영유권을 인정하겠다는 제의를 하였고, 남 사할린까지 일본에 영토를 빼앗겨 수치를 당한 소련은 이 제의를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곧 전쟁이 끝나자 소련은 일본에 빼앗긴 사할린과 쿠릴열도에 직접 군대를 상륙시켜 쿠릴열도 전역을 점령하기에 이릅니다.  


▼쿠릴열도에 상륙한 소련군


이렇게 전후 일본은 1952년 4월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쿠릴열도에 대한 일체의 권리를 포기하게 하였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몇 년 후, 소련은 자국의 경제를 살리기 위해 일본의 경제 지원이 필요할 때라 여겨 1956년 일본과 외교관계를 재개하면서 하보마이와 시코탄 2개의 섬을 일본에 양도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일본의 망언


소련의 제의를 걷어차버리는 망언을 쏟아내는데.. 시코탄, 하보마이 외에도 쿠나시르와 이투루프까지 오히려 자신들의 고유 영토라고 주장하면서 강력하게 반환을 요구하였고 이로 인해서 러시아가 제안한 이 극적인 조약은 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본과 미국이 군사적 동맹 관계가 되자 소련은 모든 제안을 철회하였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분쟁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일본은 이 지역을 자신의 고유영토 임을 주장 중이며, 가끔 극우파들의 강경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그때마다 러시아는 무력시위를 해오면서 이 상황을 여유롭게 지켜보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러시아의 영토로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러시아 주민이 거주를 하고 있으며, 이투루프(에토로우), 쿠나시르(구나시리) 지역에는 이미 3,500명 규모의 러시아군이 주둔 중입니다. 


일본은 자신들이 쿠릴열도에 대한 강경 발언을 할 때마다 몇 배 더 강력하게 무력시위를 해온 러시아에 그동안 '유감'이라는 표현과 함께 눈치만 보고 있었는데 그런 일본에게도 드디어 기회가 찾아옵니다. 




2016년 12월 푸틴 대통령의 일본 방문!


당시 푸틴의 일본 방문이 확정되자 그동안 눈치만 보고 있던 일본은 푸틴의 방문과 함께 선물을 기대하게 되는데.. 

바로 

북방영토(쿠릴열도)의 반환!

외신에서도 연일 푸틴 대통령의 일본 방문으로 그동안 계속되었던 러일 영토분쟁이 마무리될 것이라고 잔뜩 기대를 모았었죠.



하지만 방문 기간 내내 일본과 아베 총리의 기대와는 달리 푸틴 대통령은 쿠릴열도에 대한 언급은 전혀 하지 않은 채 귀국하였고, 2달이 지나 2017년 2월 8일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의 내각 성명서가 공개되었죠.


내용을 알아보면,


그동안 일본식 이름으로 사용되었던 쿠릴열도의 명칭을 러시아식 명칭으로 완전히 변경한다는 내용입니다. 

소련의 5대 위인의 이름으로 '그로미코, 파르후트디노프, 일본에 항복 서명을 받은 쿠즈마 데레반코, 극동 사령관 알렉세이 그네츠코, 세계 최초 여성 원양어선 선장 안나 쉐티니나'.

쿠릴열도는 완벽한 러시아의 영토라는 것! 



이렇게 일본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문으로 쿠릴열도의 반환 또는 섬 2개를 반환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마주하게 되었고, 결국 일본의 헛된 꿈은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최근 일본을 다시 한 번 당황스럽게 만든 사건이 있었는데 러시아는 쿠릴열도의 명칭 변경 외에도 한 술 더 떠서 올해 안에 쿠릴열도 전체에 5,000~20,000명에 이르는 사단 규모의 군대를 배치한다고 밝혔었죠. 


이미지-서울경제


결국 일본은 그동안 쿠릴열도가 자신들의 영토라고 강력히 주장은 하면서도 은근히 러시아의 눈치를 보며, 러시아가 먼저 영토를 반환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완전히 그 기대는 날아가 버렸습니다.  


한편 러시아의 사단 병력 배치 발표는 쿠릴열도를 절대 일본에 절대 반환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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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의 상징이었던 동독과 서독의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지 26년이 지났지만 세계 여러 지역의 국경에는 지금도 대립과 전쟁의 상징인 국경의 장벽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종교적 이념의 대립은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항상 전쟁을 수반했습니다. 이처럼 국가와 지역 간의 대립은 그 경계 지역에 높은 장벽들이 설치되었는데, 많은 전문가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이런 장벽들이 정보와 통신의 발달로 서서히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반대로 최근에는 테러와 난민 유입을 방지하기 위해서 세계 곳곳에 더 많은 장벽들이 설치되고 있습니다. 


대립과 전쟁, 희생의 한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 세계에 존재하는 국경의 장벽들을 알아보겠습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현장


세계에 존재하는 국경의 장벽들


1. 이스라엘 장벽 (1,017km)


이스라엘은 현재 레바논, 시리아, 이집트와의 국경 및 가자 지구, 요르단의 서안 지방을 장벽으로 둘러싸고 있는데, 이스라엘의 네탄야후 총리가 2015년 6월에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요르단 국경에 장벽을 세우기로 했습니다. 이 계획이 완료되면 이스라엘 국토는 전체가 장벽으로 둘러싸이게 됩니다. 자신들의 안전을 위해서 설치하는 장벽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들만의 세상에 고립된 모습이기도 합니다. 





2. 미국과 멕시코 장벽 (3,141km)



미국과 멕시코 장벽은 세계에서 가장 통행량이 많은 곳입니다. 외관상으로 많이 흐름해 보여서 일까요? 한 해 동안 장벽을 넘어서 미국으로 밀입국하는 인원이 17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있으나 마나한 국경 장벽인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허술한 장벽을 다시 세우기 위해 이미 입찰 지침까지 내린 상태죠.  



하지만 이렇게 허름하게 보여도 장벽의 1,000 km 정도는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하에 있고 이 장벽을 넘기 위해 많은 멕시코인들이 죽기도 했습니다. 만약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시대로 다시 장벽을 보수한다면 33조 원 정도 비용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3. 북아일랜드 장벽 (15km)



북아일랜드 장벽은 종교적인 대립으로 만들어진 장벽으로 1969년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충돌로 신교도와 구교도의 거주 지역을 장벽으로 분리하고 이습니다. 특히 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이 북아일랜드의 수도 벨파스트인데 야간에는 경계가 삼엄하기 때문에 외출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평화의 벽




4. 이라크 장벽 (5km)



시아파와 수니파의 오랜 싸움으로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의 수니파 거주 구역인 아자미야를 적대적이니 시아파로부터 격리하기 위해 미군이 건설하다가 현재는 너무 많은 반대 의견이 있어 현재 장벽은 미완성의 상태로 존재합니다. 




5. 사우디와 예멘 장벽 (1800km)



사우디는 예멘과의 국경에 1,800k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국경 장벽을 설치한 상태이며, 이곳은 외관상 펜스만 설치되어 있는 거 같지만 밀입국자와 밀수꾼들을 막기 위해서 각종 센서가 설치되어 있고, 수시로 군인 차량이 순찰을 하고 있는 지역입니다. 




6. 이란과 파키스탄 장벽 (700km)



시아파와 수니파의 종교 대립으로 이란에 의해 만들어진 장벽으로 두게 90cm, 높이 3m에 이르는 장벽입니다. 도대체 종교가 뭐라고 거의 모든 분쟁의 원인이 종교에 의한 것이네요.




지금까지 소개해드린 종교와 이념이 대립에 의한 장벽 외에도 지금 이 시간에도 여러 국가에서 난민들의 유입을 막기 위한 새로운 갈등의 장벽들이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는 남북한 군사분계선 역시 이산가족의 설움과 아픔을 간직한 장벽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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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무렵, 일부 국가에서는 박쥐나 개, 고양이, 돌고래 등 동물들을 이용한 실험들이 알게 모르게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당시에는 훈련된 동물들을 주로 자폭용 폭탄과 함께 적진에 투입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용했는데 동물의 생존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시도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2차대전의 동물 영웅으로 알려진 불곰 '보이텍'은 전장에서 폴란드군 전우들과 함께 작전을 펼치고 끈끈한 우정을 나눈 계급과 군번까지 있었던 정식 병사였으며 폴란드군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럼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폴란드군 소속으로 전쟁에 참전했던 용감한 병사가 있었습니다. 

'미소 짓는 천사'라는 이름의 '보이텍' 이등병.



보이텍은 2차 세계대전부터 지금까지 폴란드 2군단 22포병 보급 중대의 마스코트로 폴란드 육군의 영웅으로 그의 전우들과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지금도 폴란드에는 시내 광장이나 공원에서 보이텍의 동상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불곰 '보이텍'은 어떻게 폴란드 육군과 함께 전장에서 병사로서 싸울 수 있었을까요?


1943년, 폴란드 2군단 22보급 중대원들은 한 소년으로부터 태어난지 8주 밖에 되지 않은 엄마를 잃은 아기 곰을 우연히 구입합니다. 보이텍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어렸을 때부터 병사들의 손에서 우유와 꿀 등을 먹고 자라면서 부대 생활을 함께했는데 그때부터 보이텍은 시리아 불곰이 아닌 병사들의 친구이자 동료가 됩니다. 



전장에서 군인들이 얼마나 보이텍을 정성 들여 키웠는지 보이텍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랍니다.



부대 병사들 모두와 사이가 좋았던 보이텍은 다른 시리아 불곰과는 다르게 성격이 유순해 부대 내의 다른 동물과도 허물없이 지냈는데, 군사훈련도 잘 소화했기 때문에 폴란드 육군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후 곧 부대의 마스코트가 되어버린 보이텍^^



그렇게 아기 불곰이었던 보이텍은 키 180cm, 몸무게 113kg의 듬직한 병사로 자라서 정식으로 폴란드 2군단 22보급 중대원에 배속되어서 계급과 군번, 그리고 심지어 월급통장까지 부여받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병사들 군사훈련에 소질을 보였던 보이텍.




병사들 키만큼 성장한 보이텍은 이제 목봉체조도 병사들 못지않게 잘하게 됩니다. 훈련을 잘 받을 때마다 과일과 꿀, 시럽을 받았지만 사실 보이텍이 정말 좋아했던 메뉴는 병사들이 상으로 줬던 맥주와 담배였습니다. 특히 담배를 무척 좋아했는데 불이 붙지 않은 담배는 쳐다도 보지 않을 정도로 담배를 즐겼다고 합니다. 



보이텍은 실제 전투에도 참전했습니다. 1944년 몬테카지노 전투에 참전하여 포탄과 탄약 상자를 나르는 임무를 수행했었는데, 포탄 한발이라도 떨어뜨리는 날에는 아군에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는데도 임무 중에 한 번도 포탄과 탄약 상자를 땅에 떨어뜨리는 경우가 없을 정도로 군대 체질이었죠.



그리고 보이텍이 병사로서 더 인정을 받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부대의 보급품을 훔쳐 가는 도둑을 잡고, 영내 순찰 중에 독일군 스파이를 잡는 전과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이것을 계기로 부대 마크와 군장까지 보이텍을 상징하는 모양으로 바뀌고 22보급 중대의 마스코트가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해당 부대는 2년 뒤에 해산되어 보이텍의 전우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고, 보이텍 전역을 하여 영국의 에든버러 동물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동물원 생활은 한편으로는 편했지만 전장에서 전우들과 늘 함께였던 보이텍은 그렇게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폴란드의 명물이었던 그를 보러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도 동굴에서 나오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함께 했던 전우들은 알아보았는지 전우들이 그를 보기위해 동물원을 찾아오면 항상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그때마다 보이텍은 전우들에게 늘 하는 제스처가 있었는데 '친구! 담배 좀 줘' 였다고 합니다. 



이후 그의 전우들은 보이텍을 위해 동물원에 자주 방문하였고, 몰래 철장을 넘어 보이텍과 놀아주기도 했으며, 가끔 담배도 함께 피웠다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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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로 알려진 아이슬란드는 노르웨이와 그린란드 사이에 있는 인구 33만 명의 북대서양의 섬나라입니다. 특이하게도 이 섬나라는 NATO 가입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군대가 없으며, 소규모의 '해안경비대'가 그와 비슷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군대가 없지만 '평화지수 세계 1위의 나라'라는 타이틀을 가진 것 외에도 아이슬란드에는 우리가 몰랐던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부터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총군사력, 4척의 해안경비대 함정과 4대의 헬기



아이슬란드의 국방력은 4대의 해안경비 함정과 4대의 헬기가 전부입니다. 대신 NATO 회원국으로 국가방위는 대부분 동맹국에 의지하고 있으며, 군대는 없지만 해안경비대와 경찰 출신의 인물들을 뽑아 세계의 평화 유지군 활동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자국에는 군대가 없지만 평화 유지를 위해서 외국에 주둔한다니...ㅎ



2. 유로 2016 이전에는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이슬란드에는 73개의 아마추어 클럽팀이 5개 리그로 시즌을 진행하며, 유럽축구연맹(UEFA) 공인 축구 지도자가 600명이나 있습니다. 인구대비 엄청난 숫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로 2016에 출전하여 8강에 올라 전세계를 놀라게 했었는데, 더욱 놀라운 점은 몇 명의 선수를 제외하면 본업이 의사, 주유소 알바, 영화감독, 핸드볼 선수 등의 다양한 직업군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유로 2016의 가장 HOT했던 축구팀이었죠. 



3. 축구 대표팀 골키퍼는 영화 감독 출신이다.



아이슬란드의 현역 축구 대표팀 골키퍼인 하네스 할도르손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감독으로 생계를 유지했었고, 2012년 아이슬란드 유로비전 비디오를 직접 만들기도 했습니다. 핸섬한 마스크에 대표팀의 골키퍼, 그리고 영화감독까지.. 아이슬란드 축구 대표팀은 할도르손 외에도 각양각색의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유명하죠.



4. 국민가수, 요정 비요크



비요크는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여성 뮤지션으로 독특한 음악 스타일과 예술적인 뮤직비디오로 인해 한국에도 광팬이 많으며, 그녀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아이슬란드 인구보다 많은 43만 명입니다.



5. 축구 대표팀 감독은 치과의사



아이슬란드의 축구 대표팀 감독인 헤이미르 하들리그림손은 감독이 되기 전에는 고향에서 치과의사였고, 지금도 파트타임 치과의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선수들 치과 치료는 자신이 모두 해줄 수 있겠네요^^



6. 신화의 고향, 지금도 신화 속에 사는 국민들



아이슬란드는 신화의 나라다. 국민의 54.4%가 지금까지도 신화에 등장하는 요정(트롤, 엘프)의 존재를 믿고 있으며,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연에 숨어서 자신들에게 행복과 정의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신화 광팬입니다. 



7. 미팅은 야외 온천이 꿀이지?



화산 기반인 야외 온천이 많아 남녀노소 모든 국민들이 온천에서 미팅, 소개팅, 회의, 회식, 여가 등의 만남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세계 5대 온천으로 알려진 아이슬란드의 블루라군 온천은 꼭 한 번 가볼 만한 곳입니다. 



8. 아이슬란드는 정말 ICE만 있다?



아이슬란드의 겨울은 최저 기온이 평균 영하 4도 이상이며, 최고 기온은 4도 정도 됩니다. 하지만 이름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굉장히 추운 나라로 오해하고 있죠. 아이슬란드란 이름은 처음 바이킹들이 이 섬을 발견했을 때 너무나 아름다워 자신들만 소유하고 싶어서 이름을 일부러 ICE + LAND로 지었다고 합니다. 얼음 밖에 없는 땅이라고 소문을 내기 위해서죠.



9. 세계 최초로 남녀 근로자 임금이 동일하다




세계경제포럼(WEF)에 의하면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양성평등이 가장 잘 실현되고 있는 국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에서 여전히 여성의 급여는 남자보다 14~18% 정도 낮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새로운 법안이 의회에 제출되면서 아이슬란드의 모든 기업체가 세계 최초로 '동일노동 동일임금' 인증제를 도입함으로써 남녀임금 동일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10. 맥도날드가 없는 나라도 있어?



아이슬란드는 세계에서 국민 1인당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로 손꼽힐 정도로 잘 사는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2008년 은행업계가 붕괴되고, 유로화가 급등하면서 맥도날드 매장은 독일로부터 식자재 수입 비용이 두 배 이상 오르자 더이상 영업을 할 수 없어 철수하게 되죠. 

결국 유럽 국가 중에서 아르메니아, 보스니아, 알바니아 등 작은 국가와 함께 맥도날드가 없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11. 추운 나라인데 술을 못 마시게 했다고?



추운 지방은 추위를 이기기 위해 보통 음주 문화가 발달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는 1915년부터 1989년까지 금주법에 의해서 맥주 판매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술이 금지되었었죠. 그 이유는 오랜 기간 동안 덴마크의 식민 지배를 받아왔었고, 1940년 독립을 선언한 이후로 국민투표에 의해 맥주 문화가 발달한 덴마크의 음주문화를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애국주의적 금주법이 통과되었기 때문입니다. 



12. 무기가 뭐죠? 아이슬란드 경찰은 무기를 소지하지 않아요.



경찰이 무기를 소지하지 않을 정도로 아이슬란드에는 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총기 사용법을 모르는 경찰이 많고, 총기를 사용할 수 있는 경찰도 전체 20%에 불과하다고 하네요. 특이한 점은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지만, 단일 민족이며 이웃과 유대관계가 높고, 잘 정비된 복지제도 때문에 시민들이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부분은 정말 부럽네요.



13. 축구 역사상 A매치에서 부자가 함께 뜀.



때는 1996년 4월, 아이슬란드 대표팀은 A매치에서 애스토니아와 친선 경기를 뛰게 됩니다. 당시 아이슬란드 대표팀의 아르노르 구디온센은 그의 아들 에이두르와 교체 투입되어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부자가 함께 A매치에서 경기를 뛰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죠.



14. 대표팀 주장은 전직 핸드볼 선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이슬란드의 대표 스포츠는 핸드볼이었습니다. 대표팀 주장인 아론 군나르손 역시 15세까지는 핸드볼 선수로 활약했었는데 이처럼 아이슬란드 축구 대표팀은 감독부터 여러 선수들이 특별한 사연들이 있는 선수가 많습니다. 위 사진은 경기가 끝나고 군나르손이 호날두에게 셔츠 교환을 부탁하는 모습이네요.



14. 인구는 작지만 세계 최대의 콜라 소비국.



세계에서 가장 콜라는 많이 마시는 나라! 위산과다나 이가 썩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냥 즐길 뿐이다. 1인 당 연간 콜라 소비량이 무려 489잔이나  됩니다. 


이처럼 인구 33만 명의 북대서양의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군대가 없는 나라로 유명한 것 외에도 아주 특이하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은 나라입니다. 계절 또한 다른 나라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여름과 겨울이 있는데 겨울에 낮의 길이는 겨우 4시간을 조금 넘고, 여름에는 낮의 길이가 21시간이나 되어 환한 밤에 맥주 한 잔을 할 수 있는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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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북유럽의 가장 큰 나라이며 중립국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평화와 복지의 나라일 거라는 인식과는 달리 냉전시대에는 강대국들과 인접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중립국으로 살아남기 위해서 항상 전쟁에 대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이러한 노력은 군사 기술의 발전과 국방력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오래전부터 국토 곳곳에 각종 대피소와 전쟁 물자들을 비축할 수 있는 시설들을 만들어 왔는데 스톡홀름 서쪽 70km 발트해 앞바다에 위치한 무스쾨섬에는 오래전부터 소련 해군이 함부로 넘볼 수 없었던 스웨덴 해군의 '비밀 군사기지'가 있습니다. 




1950년에 스웨덴 해군은 소련 해군의 막강한 전력이 자국의 영해로 침략할 것을 예상하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서 비밀 지하기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이 계획을 실행합니다. 이렇게 요새화된 비밀해군기지를 보유하기 위해서 시작된 19년이라는 긴 공사는 1969년에 끝나고 드디어 무스쾨섬에 비밀해군기지가 완성되었습니다. 



무스쾨(MUSKÖ)섬

'스웨덴 해군의 비밀군사기지'이며, 지하 도시입니다. 무스쾨섬 비밀해군기지는 중립국이지만 강대국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항상 전쟁에 대비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의지가 나타난 시설물입니다. 이곳은 군사시설 외에도 병원과 핵전쟁 대피소, 상가, 국회의사당 등 세계 최대 규모의 시설로 알려졌습니다



수백 년 동안 중립국가로서 스웨덴이 단 한 번도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인구 천만 명 이하의 그들이 가진 강력한 군사기술과 국방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습니다. 




▼스웨덴 해군의 Visby급 스텔스 코르벳함


수도 스톡홀름에서 남쪽 70km 발트해의 무스쾨섬에 비밀해군기지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는 스웨덴 왕립 해군 제4 전투 함대가 배치되어 작전을 수행하였습니다. 특이하게도 허름한 외부의 입구와는 달리 이곳은 유사시 2,000여 명의 병력을 수용할 수 있고, 부상자 치료를 위한 의료시설과 스웨덴 해군의 최대급인 비스비급 군함과 2척의 잠수함이 동시에 정박할 수 있으며, 이곳에서 군함과 잠수함을 직접 건조할 수 있는 시설도 갖추어져 있습니다. 



또한 지금 당장이라도 전쟁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작전 지휘본부와 전함 기동 통제소도 갖추어져 있다고 하니 평화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전장 120m, 전폭 15m, 전고 50m급의 대형 토크가 3개


▼전투에서 피해를 입은 함선을 즉시 수리할 수 있는 선박 수리 시설 3곳


무스쾨 비밀해군기지는 군함과 잠수함의 정박과 수리, 건조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해상과 공중에서 보급이 완전히 차단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병력의 이동과 물자 보급을 위해 지상과 수도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지하 2,800m에 위치한 해저터널이 존재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평화로운 중립국으로만 알고 있던 스웨덴은 내부적으로는 오랜 시간 동안 인접한 나라의 침략을 막기 위해 군사 기술과 국방력을 키우는데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스쾨 비밀해군기지가 외부에 노출이 되기 시작하면서 소련과 여러 나라에서는 이곳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을 했지만 냉전시대에는 끝내 이곳의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특히, 소련은 이곳의 비밀스러운 정체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스웨덴을 함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처럼 인구 천만 명도 되지 않는 작은 나라인 스웨덴은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전함과 잠수함, 비행기, 탱크 등을 자체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과 유사시 인구의 60% 이상을 대피시킬 수 있는 지하시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강대국들 사이에서 중립국가로서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느 한 진영에 소속되기보다는 자체적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그 지위를 이어오는 것을 선택한 스웨덴은 우리 한국이 가장 본받아야 할 나라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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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가장 큰 전쟁 중에 하나이며 수많은 사상자를 낸 1차 세계대전은 7천만명의 군인이 참여한 전쟁입니다. 당시에 미국은 연합국에 가입하여 전쟁을 수행하였는데, 미군의 군인 부족으로 편성된 369부대는 미군 최초로 흑인으로만 이루어진 흑인 부대였습니다. 



인종차별이 사회 전체에 만연했던 시절, 나라를 위해 자원입대를 한 그들이었지만 군대 내에서도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의 벽은 높았습니다. 흑인 부대원들은 부대 주변 상가나 식당에서도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멸시를 받았었죠.

하지만 이런 멸시 속에서도 이들은 1차 세계대전 중 가장 용맹했던 부대로 알려지게 됩니다. 



그들의 부대는 연합군에서 영웅들만 모인 부대로 알려지게 되며 '할렘 헬파이터스'라는 별명으로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됩니다.

(2명의 메달 오브 아너와 171명의 369 부대 병사들이 프랑스군으로부터 무공 십자훈장과 레지옹도뇌르 훈장을 받음)


▼369 보병연대 부대원 기념 촬영.


이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미국과 나라를 위해 피 흘릴 준비가 되었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미군은 이들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말이죠.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전투가 아닌 부대 내에서 잡일만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이들의 전투력을 신뢰하지 않았던 미군은 결국 369 부대를 프랑스군 소속으로 넘겨버립니다. 


▼프랑스군 소속의 369 보병연대의 흑인 병사들


자신들을 군인으로서 인정해준 프랑스군


미군에게 버림받고 프랑스군 369 연대에 소속된 이들은 프랑스군이 사용하는 무기와 장비를 지급받고 흑인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싸우는 군인으로서 동등한 입장에서 전투를 할 수 있게 됩니다.



1918년 4월 8일,

프랑스군 소속으로 치른 첫 전투에서 369 부대는 최전선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귀신같은 활약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독일군과 프랑스군에게 '할렘 헬파이터스'라는 별명을 얻으며 '지옥에서 온 전투원'처럼 전장에서 사신과 같은 능력을 발휘하게 되죠.



이렇게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369 보병연대는 2개의 메달 오브 아너와 수백 개의 십자 훈장을 수여받는 등 1차 세계대전의 검은 영웅으로 영웅 칭호를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인기 게임에 등장했던 369 보병연대의 실존 인물인 헨리 존슨 일병의 유명한 일화는 만화와 영화로 제작될 정도였습니다. 


▼게임 베틀필드1의 헨리 존슨 일병




헨리 존슨 일병은 혼자서 30여 명의 독일군 돌격부대에 맞서 싸우면서 소총이 고장 나자 소총과 칼을 휘두르며 4발의 총상을 입은 채로 독일군 돌격부대를 방어한 1차 세계대전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또한 이들은 용맹함 외에도 흑인으로서 타고난 뛰어난 리듬감은 연주 실력으로 이어졌는데, 369 보병연대의 군악대 재즈 연주는 전장에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던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켰으며, 다른 부대의 군인들과 민간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얻으면서 시가행진이나 행군 시에는 이들의 연주가 늘 함께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시가행진 중인 369 보병연대


전쟁이 끝나자 제1차 세계대전의 검은 영웅들인 '할렘 헬파이터스'는  해산되었지만, 곧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그들은 다시 한 번 조국의 부름을 받고 결성되어 일본군에 대항해 치열한 전투를 하게 됩니다. 



할렘 헬파이터스는 인종차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용맹함으로 이후 미국의 흑인들이 미군에 입대하여 나라를 위해서 싸울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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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사드 배치 확정으로 중국은 현재 강도 높은 경제 보복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국 일부에서는 한국에 대한 강경한 발언들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사드 배치 지역에 대한 외과 수술식 선제타격론까지 거론되는 등 그 수위를 높혀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렇게 그들이 경제보복을 하는 이유는 한국의 사드 배치가 자신들의 안보 불안을 야기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중국이 이렇게 반발하는 행동이 정말 황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는데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드(THAAD)'

적의 탄도미사일 공격으로부터 방어를 위한 목적으로 제작된 공중 방어 시스템.


▲중국 관광객 감소로 한산한 명동거리


중국 당국은 한국의 사드 배치 확정으로 중국인들의 한국 관광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중국의 이런 경제 보복 조치는 우리나라에 한 해 동안 방문하는 중국 관광객의 수(800만 명)를 감안한다면 무시 못할 경제적 보복 조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중국의 현실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히려 한국이 더 큰 소리를 쳐야 할 입장임을 알 수 있습니다.


▼중국 동북지역의 미사일 배치도


상단의 자료에서 보듯이 중국 동북지역의 군사 배치는 정말 한국에 치명적으로 보입니다. 주둔하고 있는 각 부대의 공군 전력을 제외하더라도 중국의 동북 해안을 중심으로 북한과의 접경 지역까지 상당수의 중국 탄도미사일이 한국을 직접적으로 타격할 수 있는 지역에 배치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국과 북한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중국 816여단이 보유한 탄도미사일 DF-15, DF-21은 우리 안보를 감안한다면 한국에 가장 위협이 되는 미사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중국 전략미사일 부대의 DF-15, DF-21의 모습


▼816여단 퉁화 기지 미사일 보유량

DF-15 (둥펑 15 단거리 탄도미사일SRBM)

사정거리 600KM, 명중오차 300M, 보유수 1,200기


DF-21 (둥펑 21 중거리 탄도미사일)

사정거리 1,700KM, 명중오차 300M, 보유수 각 여단 12기 정도 예상


한국 사드 배치 확정으로 중국이 저렇게 각을 세우지만 실제로는 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뿐만이 아니라 일본의 오키나와 미군 기지까지 사정거리를 두는 탄도미사일을 배치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큰소리를 낼 나라는 한국이라는 말이죠.



홍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

" 어떤 국가(한국)가 안보를 추구할 때 반드시 다른 나라의 안보와 지역의 안정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홍레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말은 정말 한국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816 퉁화 기지 외에도 한국을 사정권에 두고 있는 미사일을 합하면 1,000 여기가 훌쩍 넘는 탄도미사일이 한국을 사정권에 두고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중국과 북한의 접경 지역에 위치한 816여단의 임무는 유사시 북한 지원을 위한 부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사항은 DF-21은 미국의 항공모함 킬러로 남북한 개전과 동시에 미국 항공모함이 한국을 증원하지 못하도록 막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또한 사정거리가 600KM인 DF-15는 한국의 주요 부대와 주한미군 기지를 파괴하기 위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중국의 동북 지역에 위치한 공군 전력과 미사일 부대 중에서 겨우 한 곳인 퉁화 지역의 816연대 미사일 배치만 봐도 중국은 우리나라에 큰 소리를 칠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국의 안보만 중요시하고 정작 이웃한 나라의 안보는 무시하는 듯한 행동은 정말 한국 사드 배치에 반발하는 중국이 황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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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내전은 2011년 알 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시작된 반정부 집회가 내전의 형태로 확산되면서 지금까지 6년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난민 1,100만 명과 30만 명 이상이 사망한 알레포는 하루에도 폭탄이 50회 이상 떨어지는 살아있는 지옥이었습니다. 수많은 민간인과 어린아이들이 폭격 속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고통 속에 있을 때 그곳에서는 '화이트 헬멧'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민간인들을 구조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전쟁터의 천사들인 그들을 '화이트 헬멧'이라고 부릅니다. 


그럼, 화이트 헬멧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화이트 헬멧'

화이트 헬멧은 '시리아 민방위대(SCD)'를 말하며, 자율적인 민간 구조대로 시리아 내전에서 15명의 구조대가 편성된 이후, 현재 3,000여 명이 넘는 대원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시리아 내전에서 5년간의 구조활동으로 민간인 78,529명 이상을 구조했습니다.


이들은 정부군과 반군을 가리지 않고 구조에 나서고 있고, 구조 중에 폭격으로 지금까지 154명의 구조대원이 사망했습니다.


▼통폭탄이 알레포 민간인 지역에 떨어진 모습


한 번 들어오면 절대 살아나갈 수 없는 곳


알레포에는 하루에 50회 이상의 통폭탄(Barrel Bomb)이 떨어집니다. 

통폭탄은 큰 드럼통 안에 각종 쇠붙이와 기름, 폭약을 넣은 후 헬기를 이용해서 투하하는 살상력이 매우 높은 무기입니다. 이렇게 잔인한 무기가 민간인들과 아이들을 향해서 떨어집니다.


2015년 한 해 동안 알레포에 투하된 17,318개의 통폭탄으로 민간인 2,032명이 사망했습니다. 이 중에는 499명의 어린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6년 9월 알레포에서는...

2주 동안 106명의 어린이가 사망.


출처-the syria campaign 구조된 '옴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퍼붓는 통폭탄은 민간인들을 향해서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데 옴란은 구사일생으로 구조되었습니다.

알레포의 5살 꼬마 '옴란'은 화이트 헬멧 구조대에 의해서 무너진 벽돌 사이에서 구조된 후 전세계에 알레포의 참상을 알리게 되죠. 





깨진 약속들


2014년 유엔 안전보장 이사회는 2139 결의안을 통과시켰는데, 이는 민간인 지역에서 민간인을 상대로 무차별적인 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안전보장 이사회에서는 이 결의안을 위반할 경우 당사국들에 추가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지만 2015년 한 해 동안 민간인을 대상으로 17,318개의 통폭탄이 떨어졌고 수많은 어린이가 사망했습니다. 


UN 안전보장 이사회는 위반국들에 대해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출처-the syria campaign


그들은 전문 구조대가 아닙니다.


그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의사였고, 아빠였으며, 대학생이었고, 선생님이었습니다. 아무도 고통 속에 있는 민간인들을 도와주지 않자 그들은 자발적으로 모여 시민 구조대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출처-the syria campaign


우리가 가진 무기는 '화이트 헬멧'입니다.


하늘에서 무차별적으로 떨어지는 폭탄은 하루에 한 번만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첫 폭탄이 떨어진 후, 구조 중에 다시 2번째 폭격이 이어진다면 그들 역시 그곳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폭탄이 근처에 떨어져서 헬멧이 날아가고 없어도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그들을 위해서 또 폭격 속으로 뛰어듭니다.

이렇게 구조한 민간인이 지금까지 78,529여 명입니다.



▼구조 중에 2차 폭격으로 다친 화이트 헬멧 대원.

출처-the syria campaign

그들은 구조 중에 2차 폭격으로 인해서 지금까지 154명의 동료를 잃었습니다. 

자신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현장으로 뛰어가는 그들이 가진 무기는 '화이트 헬멧'입니다.




▼현장으로 가기 전에 아들과 인사를 나누는 대원

출처-the syria campaign


사람들을 구하러 간 사이에 자신의 집이 폭격을 당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 그들의 손길을 기다리는 이들을 위해서 현장으로 달려갑니다.





정부군 폭격 후 고립된 민간인을 구조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사진으로 보기에도 굉장히 위험해 보이는데, 그들은 이런 상황을 하루에도 수십 번 경험하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민간인들과 함께 말이죠.

 



▼2014년 무너진 건물 잔해에서 신생아를 구조한 칼레드 하라흐(오른쪽은 아이가 성장한 모습)


건물 잔해에서 구조한 아이가 이상없다는 것을 알고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는 얼마 후 폭격에 의해 사망하게 되죠.


▼아기를 구조한 후, 오열하는 화이트 헬멧 대원 '아부 카파'


시간이 지난 뒤 구조한 아기와 재회한 아부 카파의 모습입니다. 아기가 아주 건강하게 보여서 정말 다행입니다.



▼공습으로 책상 밑에 몸을 숨긴 아이들

출처-칼릴 아사히 로이터



지금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기를 지닌 자발적 민간 구조대 '화이트 헬멧'의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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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다녀온 남자들은 군대에서 먹는 밥을 일명 '짬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원래의 의미는 '군대에서 먹다가 남긴 밥'을 의미하는데 실제로는 '군대 생활의 경력'을 이야기하거나 '군대에서 먹는 밥'을 뜻합니다. 이렇게 군인이 되면 군대 급식을 먹게 되는데 군인들의 일과는 거의 대부분 훈련이 차지하기 때문에 힘든 훈련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군대 급식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은 군대가 보유한 첨단 무기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세계 각국의 군대 급식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베트남 군대 짬밥이 이렇게 맛있었어?



베트남의 군대 급식은 클래스가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과일과 야채, 고기 3가지 정도 되는 식단이 정량과는 상관없이 먹고 싶은 데로 먹을 수 있는 거처럼 보이네요. 



베트남의 GDP는 186,064백만 달러입니다. 그리고 현재 상비군은 48만 4천명 정도 되는데, 한 해 국방예산은 약 2조 7000억 원가량됩니다. 군인 수에 비해서는 상당히 부족해 보이는 예산이지만 군대 급식과 월급에 있어서는 투자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월급을 한화로 약 32만 원가량 받고 있는데 한국과 물가 포함 경제지수가 3.5배 정도 차이나는 것을 감안하면 110만 원 정도 받는 셈입니다.  





2. 중국 군대 급식은 중화요리?



세계 2위의 국방비 지출국인 중국은 한 해 국방예산으로 163조가량 지출하고 있는 나라로 해마다 그 액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육군, 해군, 공군 모든 분야에 막대한 예산을 풀어서 국방력을 강화하고 있고, 군인들의 식단에도 상당히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의 중화요리 수준의 급식입니다. 



그리고 사병의 월급은 500~600위안(한화 82,500~99,000원) 정도 받고 있는데, 기본급 외에도 복리후생의 종류가 30여 가지 정도 되며, 사회적으로도 군인에 대한 대우가 좋습니다. 

국방 예산과 군비가 풍족한 중국은 사병들의 식사에 돈을 아끼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중국이 사병들에게 좋은 대우를 하는 이유는 예전 홍군 시절부터 군대 장성들이 잘 싸우기 위해서는 사병들이 질 좋은 식사를 해야 한다는 마인드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풍족한 군대밥을 먹고 있습니다. 





3. 러시아 군대, 훈련은 빡세게! 짬밥은 우아하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러시아군의 군대 급식은 열악하기로 세계 최고의 수준이었습니다. 소련이 붕괴하면서 군대 식단 또한 함께 붕괴했기 때문이죠. 

러시아의 한 해 국방예산은 78조 3500억 원정도 되는데, 러시아 역시 중국과 마찬가지로 해마다 국방비를 증액하고 있으며 예전의 명성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소련 붕괴 후 러시아군의 군대 급식 클래스


위의 급식은 러시아 군인들의 훈련 강도는 힘들기로 유명한데 아침, 점심, 저녁 모든 식사를 모아서 한 끼로 먹어야지 겨우 훈련을 소화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최근 변화된 러시아군의 급식 클래스




4. 인도 군대의 기인열전, 힘의 원천은 카레?




기인열전을 보는 듯한 인도군의 군사 퍼레이드 모습입니다. 인도는 군사강국이죠.

인도의 한 해 국방예산은 60조 원 정도 되며, 해마다 큰 폭의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세계에서 중국 다음으로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인도에서는 식탁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있는데 사회에서든 군대에서든 절대 카레가 빠질 수 없죠!

아래 식판에서 보듯이 카레가 항상 메인입니다.





5. 일본 군대 급식 



일본 국방예산은 55조 원 정도 되며, 인도처럼 국방비 예산의 상승폭은 해마다 증가하고 있습니다. 

배식할 때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쟁반에 담아주는 경우가 많고, 음식 또한 민간에 위탁하는 편이어서 군대밥을 먹는지 사회밥을 먹는지 헷갈립니다. 



그리고 얼핏 보면 식단이 괜찮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절대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식단은 아닌 거 같습니다. 


▼해상 자위대의 경우 식판에 배식을 합니다. 

일본도 한국처럼 해군의 급식이 더 좋아 보입니다. 





6. 짬밥의 끝판왕! 미국 군대 짬밥 클래스



말이 필요 없는 미군의 급식 클래스입니다. 이미 잘 알고 있듯이 미군의 국방비는 전세계에서 어느 나라도 경쟁이 안될 만큼 엄청난 지출 규모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화 640조), 군대 배식 또한 막강하게 하고 있는데, 모든 배식은 뷔페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고민할 거 없이 과일, 야채, 고기, 음료 등 마음대로 먹고 싶은 대로 가져가서 먹으면 되는데, 미군이 이렇게 양질의 군대밥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음식을 제공하는 푸드 업체들 간의 경쟁에 의해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합니다. 



생선과 피클, 닭고기, 쇠고기, 샐러드, 음료, 감자 등 푸짐하게 보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몸무게 걱정이 될 만큼 고칼로리 식단입니다.



하지만 미군도 실제 전투 지역이나 훈련소에서는 간단하게 급식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졌습니다.





7. 점차 개선 중인 한국 군대 급식



한국 군대의 한 해 국방예산은 38조 8000억에 이릅니다. 상당히 많은 지출액이죠. 하지만 군대 급식에 있어서는 더 많은 개선이 이루어져야겠습니다. 

2017년부터는 전년도 대비 장병 1인당 1일 기본 급식비 147원이 인상되어서 현재는 7,481원으로 책정되었고, 건강한 장병 식습관을 위해서 국방부와 식약처 간의 MOU를 체결하였습니다.  


▼육군 아침 급식


▼해군 급식


▼예비군 급식

예비군 급식 수준은 상당히 개선된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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