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역사에서 칼과 활은 병사들의 주 무기였습니다. 하지만 총기류의 등장에 밀려 곧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현대적인 신무기가 대거 등장했던 2차 세계대전 당시 총 대신 활과 장검을 들고 전장에서 큰 공을 세웠던 전설적인 인물이 있었습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에서 '싸우는 잭' 또는 '미친 잭'으로 통했던 '잭 처칠' 중령입니다. 


패기 넘치는 '잭 처칠'의 명대사

"전투에 검을 차고 나가지 않는 장교는 복장 불량이다."



잭 처칠(Jack Churchille)은 1906년 월 16일 영국 출생으로 영국 사관학교 출신으로 1936년 군에서 제대 후 영화배우로 활동하기도 했었는데 그의 특이한 이력에는 1938년 영국군 백파이프 경연 대회에서 2등, 1939년 오슬로 세계 양궁대회에 영국 대표로 나갈 정도로 백파이프 연주와 활 쏘기에 타고난듯 했습니다. 




이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그는 다시 영국군 장교로 입대하는데 이때부터 특이한 정신무장과 행동으로 전설적인 전공을 세우게 됩니다. 


<전투에서 잭 처칠 중령의 무기> 

백파이프, 영국 장궁, 스코티시 브로드 소드(클레이백)을 총 대신 들고 다녔습니다.


<그의 전투법>

적의 총알이 날아와도 꼿꼿하게 서서 전진하며 자신의 장기인 스코틀랜드의 백파이프를 한곡 연주 한 후 칼을 뽑아 들고 괴성을 지르며 돌격하는 전투법을 사용했습니다^^ 


스코티시 브로드 소드(클레이백)


▲백파이프와 장궁


▲당시 잭 처칠을 그린 그림


그의 활약


▲세계양궁대회에 영국 국가대표로 출전한 잭 처칠



1940년 프랑스에서의 활약 


영국군의 프랑스 원정군에 들어가 싸웠는데, 어느 날 자신의 소대가 매복 중에 독일군 순찰대를 발견하자 잭 처칠은 자신의 부하들에게 "내가 저기 앞에 있는 독일군을 활로 쏴 죽이는 동시에 공격하라" 명령하고는 직접 독일군을 활로 저격해 쓰러트렸습니다. 저격 소총을 사용하면 되는데 말이죠..

이 기록은 2차 세계대전에서 유일하게 활에 의한 적 사살로 지금까지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이후 그는 일반 보병은 스릴이 없고 시시하다고 판단하여 영국 코만도에 자원하여 활동하였습니다. 



▲사진 중앙 지휘봉을 들고 있는 코만도 부대의 잭 처칠


1941년 노르웨이에서의 활약 


잭 처칠은 1941년 12월 27일, 자신이 맡은 코만도스 부대를 이끌고 당시 '양궁 작전(영국군과 노르웨이군의 합동작전)'에 참여하였는데, 지휘관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상륙함에 탑승하여 자신이 탑승한 상륙함이 가장 먼저 도착해서 램프가 개방되자마자 가장 먼저 뛰어내려 총알이 날아오든 말든 자신의 특기인 백파이프 연주 한 곡(당시 연주곡은 '캐머런 남자들의 행진')을 한 후 끝남과 동시에 수류탄을 던지며 독일군 벙커로 차례로 돌격했는데.. 


적 해안포 진지들을 수류탄으로 직접 박살을 내놓고 2시간 후 본부와 했던 통신을 살펴보면,


"해안포 점령 완료!" "아군 피해 거의 없음" "남은 해안포 진지는 지금 폭파하는 중"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이후 그는 독일군의 해안포 진지를 수류탄으로 전부 폭파했고 그 용맹함과 지휘관으로서 모범이 인정되어 그는 지휘관으로서 십자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상륙작전 중 가장 선두에서 브로드 소드를 들고 앞장서는 잭 처칠


1943년 이탈리아에서의 활약 


잭 처칠은 1943년 6월에 다시 한 번 코만도스의 지휘관으로 카타니아 해변에서 상륙작전에 참가하였습니다. 또 한번 그는 가장 먼저 상륙정에서 뛰어내려 그의 3대 무기인 브로드 소드와 활을 차고 백 파이프를 연주하며 전투에 임하게 됩니다.  


이때 본부에서 모리나 마을에 있는 독일군 관측소를 습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자신이 돌격할 때 엄호해줄 소총수 한 명과 단 두명이서 습격해 독일군 박격포 부대를 박살내고 혼자 42명의 독일군 포로들을 잡게 됩니다. 이때 그는 또 한 번 훈장을 수여 받았습니다. 

(그는 브로드 소드를 들고 돌격할 때 항상 '코만도오오~~'라고 외치면 적진을 향해 돌격했다고 합니다.)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


1944년 유고슬라비아에서의 활약


잭 처칠은 1500며의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과 자신의 코만도스 44명의 대원을 이끌고 브락섬에 상륙했지만 독일군들의 거센 공격으로 1500명의 파르티잔들은 잭과 코만도스 부대원들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이때, 잭은 백파이프를 꺼내들고 44명의 코만도스와 함께 독일군 점령지로 진격했지만, 박격포 공격으로 자신의 부하들을 다 잃고 자신은 수류탄을 까들고 적진에 돌격하다가 수류탄 폭발로 기절하여 포로가 됩니다. 



당시 잭 처칠은 포로수용소에서도 온갖 기행을 일삼았는데 독일군들도 그의 골때리는 행동으로 골머리를 앓았다고 합니다. 호시탐탐 탈출 기회를 노리다가 처음 탈출은 실패로 돌아갔었는데 두번째 시도에서는 수용소 정전이 되자마자 들고 있던 삽을 던져버리고 전력질주로 수용소를 벗어나 도보로 241km를 이동하여 이탈리아에 주둔 중이던 미군에 구출되었습니다^^ 평범한 군인들은 도저히 흉내 낼 수도 없는 일입니다.




1945년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미얀마로 출정


독일군의 포로수용소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는 1945년 일본군들이 전장에서 군도라는 장검을 사용한다는 소문을 듣고 하루라도 빨리 검을 든 일본군과 싸우기 위해 버마(미얀마) 원정대에 배속되어 이동 중, 인도에 도착하자마자 일본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놈의 미국만 아니었으면 10년은 더 싸울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하며 아쉬워할 정도로 전투광이었습니다.



그 후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잭 처칠은 팔레스타인 등 해외에 파견되어 코만도스를 지휘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고, 1959년 중령으로 예편한 후 영화배우 활동도 잠시 하다가 1996년 자신의 고향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전장에서는 '미친 잭'이라는 별명으로 쏟아지는 총탄을 다 피하며 태연하게 백파이프를 연주하며 장검을 들고 싸웠던 그의 용맹함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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