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정보기관의 기싸움, 대한민국 7대 간첩사건의 결과

남북한은 6.25 전쟁 이후 지금까지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북한은 적화통일을 위해서 우리 사회에 깊숙이 침투하여 있는 간첩을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혼란을 야기하며 언제든지 적화통일의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북한의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은 그들이 그동안 벌여왔던 간첩활동을 보면 잘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처럼 이들의 간첩활동을 감시하고 색출하는 기관으로 국정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중앙정보부 때부터 현재 국정원 시절까지 살펴보면 수많은 간첩사건들이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국정원이 해결했던 대한민국 7대 간첩 사건들이 있었는데 남북한 정보기관들의 기싸움이라고 할 수 있는 간첩과 국정원 간에 있었던 사건들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소리 없는 獻身(헌신), 오직 대한민국 守護(수호)와 榮光(영광)을 위하여" 


<국가정보원>

국정원 또는 NIS로 불리며 대통령 직속의 국가 최고 정보기관으로 국가의 정보활동에 관한 기본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정원의 전신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설립되었던 중앙정보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명칭은 1961~1980년까지 중앙정보부로 불렀으며, 1981~1998년까지 국가안전기획부, 그리고 재 국가정보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북한의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은 대한민국 7대 간첩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부여침투 무장간첩사건


*개요

1995년 4월 충남 부여지역에 고정간첩이 활동하고 있다는 첩보가 접수되었습니다. 이후 이를 포착한 안기부 요원(현, 국가정보원)과 경찰 대공요원 등 10여 명이 잠복 감시를 하던 중에 1995년 10월 24일 충남 00사찰에 나타난 2인을 불심 검문하는데 이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하였습니다. 


K 모 씨는 총격전 이후 인근의 국도에서 체포되었으며, 도주했던 나머지 한 명은 정보기관과 군경의 수색작전과 매복 작전에 의해 10월 27일 인근의 마을에서 총격전 끝에 검거하였지만 심각한 총상을 입고 치료 중 사망하면서 이 사건은 마무리되었습니다. 이들이 정찰총국의 지령을 받고 활동하다가 발각되기까지의 상황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침투/간첩활동

생포된 K 모 씨는 1990년 제주도 해안을 통해서 1차 침투를 하였고, 고위급 남파 간첩인 L 모 씨(북 권력서열 22위)와 함께 5개월 동안 한국에서 간첩활동 후 북으로 함께 복귀하였습니다. 


K 모씨는 1995년 8월 P 모 씨와 함께 공작조를 편성하여 다시 제주도 해안으로 2차 침투하는데 성공하여 한국에서 포섭 대상자를 물색 한 후, 자신들의 신분을 과감하게 노출을 하였는데, '북한에서 온 당 연락원'이라 직접 신분을 밝히며 함께 통일 운동을 하자고 재야 운동권 인사들을 포섭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전, 인천, 남양주에 다수의 무인 포스트를 설치하여 공작금과 권총, 독총, 무전기, 난수표 등을 은닉하는 등 본격적으로 간첩활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무인 포스트(드보크)>란

공작원 상호가 직접 접촉 없이 제3의 장소(나무, 바위, 비선, 이메일 등)을 이용하여 무기, 공작금, 통신장비 등을 주고받는 간첩들의 연락수단을 말합니다.



*사건 특징

북한에서 '혁명 2세대' 출신들을 교육하여 '새세대 공작원'을 양성하여 남파한 사건입니다. 

이들은 포섭 대상자에게 자신의 신분을 직접 북한 공작원이라고 밝히는 등 대담한 공작 전술을 펼친 점이 이전의 간첩들과 다른 특징입니다.




2. 북한직파 부부간첩 사건



*개요

1997년 10월 울산의 재야단체 간부의 신고로 밝혀진 간첩사건으로 자신에게 남녀 2명이 찾아와 '북한에서 왔다 북으로 같이 가자고' 했다며 사건을 접수합니다. 이 정보를 추적해서 부부간첩인 C 모씨, K 모씨를 검거한 후 국내에서 이들과 연계된 간첩 2명을 더 적발한 간첩사건입니다. 


*침투/간첩활동

이들 부부간첩은 이미 북한과 연계된 K 씨(모 대학교수)와 S 씨(공기업 간부)에 대한 사상검열과 신규 대상의 포섭 지령을 받은 후 1997년 8월에 국내에 침투합니다. 이들은 서울에 본거지를 마련하고 간첩 장비를 공원과 산 등 드보크 6개소를 설치했으며 재야단체에서 활동하는 인물을 포섭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사건 특징

최초의 부부간첩 사건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게 되는데 사회지도층인 유명 대학교수와 국가 기간시설을 관리하는 공기업 직원이 한국 사회에서 오랜 기간 동안 간첩으로 활동한 사실이 드러난 점입니다. 


그리고 1997녀 2월에 있었던 이한영(1982년 귀순, 김정일 처조카) 권총 피살 사건이 북한의 짓이란 걸 규명하였고, 북한의 간첩이 한국에 침투하여 간첩행위뿐 아니라 보복살인도 실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사건이었습니다. 





3. 국적세탁간첩 우회침투 사건


*개요

태국인으로 국적을 세탁하여 1996~1998년까지 3회에 걸쳐서 국내에 침투한 북한 노동당 35실 공작원을 추적하면서 2006년 7월 다시 필리핀으로 국적을 국적을 세탁한 후 국내에 침투하려는 것을 검거한 사건입니다. 


*침투/간첩활동

1993년 9월 태국에서 '마놋 세림'으로 국적을 세탁한 다음 국내에 총 3회 입국하여 원자력 발전소와 레이다 기지 등 '전시 탁격 목표'를 촬영하여 북한에 전달하였습니다. 





4. 황장엽 암살목적 북한공작원 침투 사건


*개요

북한 전 노동당 비서 황장엽을 암살하기 위해 탈북자로 위장하였다가 검거된 북한 인민무력부 정찰총국 소속 현역 소좌인 K, D 씨가 검거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당시 큰 이슈가 되었고 김정일은 어떻게든 자신의 입장에서는 조국을 배신한 황장엽을 암살하려 했습니다. 또한 김정일은 황장엽이 북에 두고 온 가족과 친인척 등 1000여 명에 가까운 이들의 숙청을 명령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침투/간첩활동

2009년 11월 정찰 총국장 김영철에게 황장엽을 처단하라는 지령을 받은 후 탈북자로 위장한 채 제3국을 통해 국내에 입국합니다.

하지만 탈북자 입국 심사과정에서 이들 암살조는 정체가 드러나면서 검거되었던 간첩사건입니다.


*사건 특징

황장엽 암살조 간첩 침투 사건은 최초로 탈북자로 위장하여 국내로 침투한 간첩사건입니다.





5. 민족민주혁명당 간첩 사건


*개요

1998년 12월 남해안에서 우리 군에 의해 격침당한 북한 잠수정 안에서 국내에 연계되어 활동하는 간첩들이 단서를 찾게 됩니다. 이 단서로 1999년 8월 민족민주혁명당 총책인 K 씨와 조직책 H 씨 등 핵심 인물들을 검거했던 간첩사건입니다.


*침투/간첩활동

우리 군에 의해서 북한 잠수정에서 피살된 H 씨는 1998년 10월 '민족민주혁명당' 조직 검열을 한국에서 마치고 잠수정을 이용해서 다시 북으로 복귀하는 중에 사살되었습니다. 



*사건 특징

인터넷 통신망을 최초로 간첩 지령 송/수신 수단으로 사용한 간첩사건이며, 이 사건은 국내 주사파 조직이 북한 간첩에 포섭되어 북한 노동당의 지령을 받는 조직으로 변화된 사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6. 일심회 간첩사건


*개요

북한의 지령을 받은 미국 시민권자인 J 씨는 386운동권 출신의 정, 재계 인사를 포섭하여 '일심회'를 결성했습니다. 이는 국내 고위 인사들을 통해 국내의 정세를 북한에 보고하는 등의 간첩활동을 파헤친 사건입니다. 


*침투/간첩활동

J 씨가 미국 유학중 북한 공작조에 포섭된 후 국내로 입국하여 IT업계에 근무하면서 386운동권 출신들과 친분을 만들고 그들을 포섭하여 이들의 사상 성향을 북한에 보고한 사건입니다. 

(이는 아마 국내 정, 재계 인사들의 사상 성향을 파악하여 향후 포섭될 확률이 높은 인사를 집중해서 포섭하기 위한 활동으로 할 수 있겠습니다.)


- 인터넷 영어학원 원자인 S, **당 사무총장 C, 국회의원 보좌관 P 씨를 포섭하여 '일심회'를 구성하고 중국에서 북한 대외연락부 공작원과 접선을 시도하는 등 장기간 간첩활동을 해왔습니다. 


▲일심회 보고와 북한 지령 경로

일심회 조직원 >> 국내와 PC방 >>해와 e메일 >> 북한 대외 연락부




7. 지하당 왕재산 간첩사건


*개요

주사파 운동권 출신 K 씨가 1993년 8월 김일성으로부터 '남한 혁명 지도부 결성'을 위한 지령을 받아 주사파 운동권 출신 4명을 포섭하여 지하당 '왕재산'을 결성한 간첩사건입니다.

이에 북의 255국으로부터 2014년까지 인천시청, 포탄 공장, 군/경 대상자를 포섭하여 그들이 말하는 결정적 시기에 폭파하라는 지령을 받습니다. 



*사건 특징

우리 군의 군사자료 등을 북한에 보고하였으며, 국회 정당과 관공서에서도 조직원들을 포섭 또는 침투를 시도한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겉으로는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뒤로는 언제든지 적화통일을 위해 꾸준히 간첩활동을 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습니다.


이들은 간첩 통신으로 새로운 첨단 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신문기사로 위장한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는 등 국정원과 북한의 정찰총국 간의 지능적인 싸움이 치열해졌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의 임무에 대해서도 간단히 알려드리겠습니다.

<참고> 

국가정보원 임무

1. 대공수사 - 북한의 대남 침투, 도발 사건 해결, 안보 위해 단체 현황, 주요 수사 결과

2. 대북 정보 - 북한의 각종 도발, 위협 조기경보, 북한 정세 진단, 대북 정책 수립 지원, 대한민국 주도의 대한민국 실현

3. 방첩- 방첩 개념, 스파이 사건

4. 산업 보완 - 기술유출 현황, 국가 핵심기술, 법령정보, 산업스파이 식별, 업무시 사업 보안 행동수칙, 해외출장시 사업보안 행동수칙

5. 대테러 - 국내, 국제 테러 정보

6. 사이버 안보 - 사이버위기경보, 보안 적합성 검증, 암호모듈 검증, 

7. 국제범죄 - 국제범죄유형, 국제범죄 실태, 국제범죄 피해사례, 예방요령, 신고요령

8. 국가 안보 - 보안업무 소개

9. 북한이탈주민보호



여기까지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에서 조사하고 해결했던 대한민국 7대 간첩사건에 대해서 다루어 봤습니다. 

대한민국 정보기관은 한 때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A급 기관이었습니다. 최근 들어 미중러일의 국제정세와 북한의 계속되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뛰어난 정보력을 보유하는 것이 국민의 행복과 안전을 위하는 길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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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포병전력은 그들의 핵과 함께 우리에게 가장 큰 위협 요소입니다. 휴전선을 기준으로 해서 620포병군단은 170mm 곡산포 1개 여단과 120, 130, 150mm 자주포 6개 여단, 120, 240mm 방사포 6개 여단 등 대략 12개 여단의 포병전력은 북한의 남침시 다른 포병군단과 함께 일시에 공격을 해올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전 시 초기에 반드시 우리 군이 제압해야 하는 목표이기도 합니다. 오늘은 개전 시 남북한 포병 전력 중 자주포의 대결에 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2천 vs 4천의 싸움, 남북한 자주포 대결의 승자는?"


전쟁이 발발하면 지상군의 탱크, 장갑차와 같은 기갑전력은 적진을 향해 돌진을 하면서 근접전을 펼치게 됩니다. 이때 근접전이 발생되기 전에 후방 30km 지점에서 포병전력은 지원사격을 합니다. (또는 북한의 포병부대의 선공시 응징의 개념으로 맞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적의 화력이나 보병이 집결한 지역에 대량의 포 공격이 가해지면 지상군은 전투력을 상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남한 자주포 대략 2,000문



1. K-55 155mm


보유수량 1,800여문


K-55는 미 육군의 M109A2 자주포를 라이선스 생산하여 우리나라의 지형조건에 맞게 생산한 자주포입니다. 

발포 시 반동을 제어하기 위해서 스페이드를 두 개 고정해야 하는 단점이 있지만 북한의 해안포는 굉장히 많은 지지대를 이용해서 반동을 잡고 있는데 이는 개전 시 포 한 발을 쏘려면 K-55는 스페이드 두 개만, 북한 해안포는 이것저것 지지대를 챙긴다고 시간 다 보내게 됩니다. (포병의 기본은 신속, 정확입니다)


[K-55 제원]

구경:155mm 곡사포, 사거리: 18km ~ 24km, 사격속도: 분당 1~2발, 가격: 10억 원, 최고 속도: 56.3km/h




영상:youtube


2. K-55A1 155mm


보유수량 현재 K-55를 매년 80여문 씩 개량 중


K-55의 개량형인 K-55A1은 세계 2위의 K-9 자주포의 기술력에 근접(70~80%)한 최신형 모델로 미군의 최신 개량형인 M109A6 팔라딘 자주포의 성능보다 뛰어납니다. 

K-9의 반자동 장전 장비와 사격통제장치가 탑재되며 사거리 연장탄을 사용할 경우 대폭 사거리가 증가하며(30km), 엔진이 멈춘 상태에서도 전자전 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보조 동력 장치가 있습니다. 


[K-55A1 제원]

구경: 155mm 곡사포, 사거리: 18km ~ 32km, 사격속도: 분당 1~4발, 가격: 19억 원, 최고 속도: 56km/h





3. K-9 155mm 


보유수량 950여문


세계 최고 성능의 자주포로 한국 포병전력의 핵심입니다. 

현대 전장에서 K-55의 한계점을 인식하고 10여 년의 연구 끝에 개발한 K-9 자주포는 현재 세계 1위 자주포인 독일의 PzH2000오 맞먹을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자랑합니다. 


발포 시 스페이드가 필요없기 때문에 사격 준비 시간이 단축되었고, 고폭탄이 10m 이내에서 폭발하더라도 안전할 만큼 뛰어난 방호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또 MRSI 사격이 가능해졌습니다. 


*MRSI 사격이란 여러 포탄을 같은 지점에 떨어지게 하여 살상력을 극대화하면서 목표물을 정확히 타격하는 사격.


[K-9 제원]

구경: 155mm 곡사포, 사거리: 40.6km ~ 53km, 사격속도: 급속 15초 이내 3발/최대 3분간 분당 6발/지속 1시간 동안 분당 2발, 가격: 40억 원, 최고 속도: 67km/h



<참고>

현대전쟁에서 포병의 개념은 간단히 말해서 2S입니다. "Shoot & Scoop"

포격(Shoot) 후 바로 이동하여 (Scoop) 적으로부터 아군의 포대 발사 위치를 혼동스럽게 만듭니다.


자주포는 탱크의 기동력에 대형 포로 무장됩니다. 

북한 포병전력을 살펴보면, 휴전선 인근에 주둔한 대부분의 포병전력은 지하 개통에 위치한 견인포들 뿐입니다. 

이미 우리 군에 자신들의 위치가 다 노출된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기 대문에 "포격 후 바로 이동"이 쉽지 않습니다. 이는 곧 선제공격은 유용할지 모르더라도 우리 군이 지상전력과 공중전력에 그대로 원점을 노출하게 되어 선방 이후 전멸할 수 밖에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북한 자주포(자행포) 대략 4,000여문



1. M-1974 152mm 


북한의 152mm 곡사포는 포신이 짧은 것이 특징입니다. 북한은 각종 야포들을 자주화하여 각 기계화 부대에 배치를 계속 해왔습니다. 하지만 성능은 우리나라의 자주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 경운기에 올려 놓은 수준으로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유효사거리는 17.4km, 발사속도: 분당 6~7발, 최고 속도: 39km/h, 인원: 5명






2. M-1975 130mm


중국의 54식 자주포를 카피한 것으로 구 소련의 M-40 견인포를 YW-531 차체에 탑재한 것입니다. 소염기 장착 여부로 M-1981과 구분이 가능하며 최근에는 SA-16 지대공 미사일을 장착한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유효사거리는 27.4km(최근 개량을 통해 34km 수준에 도달), 발사속도: 분당 8발, 최고 속도: 40km/h





3. M-1981 122mm


북한의 승리 자동차공장에서 생산된 덕천형 차체에 소련의 D74 122mm 또는 중국 60식 122mm 야포를 탑재한 방식입니다. 

베트남전 당시 월맹군은 소련제 D74 122mm를 해안포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유효사거리는 24km, 발사속도: 분당 5발, 최고 속도: 40km/h, 인원: 7명





4. M-1991 122mm


북한의 유일한 포탑 밀폐형 자주포로 M-1981과 마찬가지로 소련제 D-74 주포를 사용합니다. 

포탑이 360도 회전이 가능하며 6륜을 사용합니다.





5. M-1992 130mm 


독천형 차체에 SM-4-1 해안포를 장착한 자주포입니다. 너무나 큰 포의 크기로 고정 진지에서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반동으로 인한 포의 파손을 막기 위해서 페이드 및 나무 보조장치를 사용하는데 수동장전이기 때문에 밀대를 밀어서 장약을 넣고 탄두를 넣어 발포합니다. (자주포라고 말 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입니다)


유효사거리: 27.1km, 발사속도: 수동 장전, 최고속도: 고정식 자주포, 인원: 6명





6. M-1977 122mm


북한이 보유한 122mm 자주포 중에서 가장 오래된 자주포입니다.

독천형 자체에서 약간 변형을 해서 사용 중이며 D-30 주포를 장착한 오픈형 자주포입니다. 


유효사거리: 21km, 발사속도: 분당 7발, 최고속도: 40km/h, 인원: 5~6명





7. M-1978 170mm 곡산포


북한이 보유한 자주포 중에서 가장 거대하며 강력한 170mm 자주포입니다. (2가지 버전)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이란에 보급되었고, 현재 휴전선 부근에 다량 배치되어 있으며 '서울 불바다'의 근거가 바로 이 장사정포입니다.


①M-1978

T-54/5 또는 중국의 59식 전차의 차체 위에 구 소련의 107mm 해안포를 탑재하였으며 완전 개방형 포탑입니다. 

유효사거리: 40~60km, 발사속도 : 1~2발/5분, 최고속도: 40km/h, 인원: 8명


② M-1989

독천형 차체에 170mm 포를 탑재한 형태로 M-1978을 개량한 후기형 곡산포입니다. 

장전 속도가 더욱 빨라졌으며 탄약 이송장치가 장착되어 12발까지 장착할 수 있고 현재 40대 가량 운용 중에 있습니다.

유효사거리: 40km, 발사속도: 1~2발/5분, 최고속도: 40km/h, 인원: 6명 





2천 vs 4천의 싸움, 남북한 자주포 대결의 승자는? 


<결론>


1. 북한의 자주포 전력은 대부분 방호장치가 없는 개방형 포탑입니다. 

-> 우리 군의 포병사격 시 DPICM탄 등 집속탄을 사용한다면 적의 포병부대는 쉽게 제압할 수 있습니다. 


2. Shoot & Scoop 즉, 북한은 포격 후 바로 이동이 되지 않는 견인포가 대부분입니다.

->만약 북한이 포격을 할 경우 적의 포병부대는 대부분 견인포이기 대문에 선공 시 이미 도발 원점을 노출하게 됩니다. 이에 우리 포병의 최신 자주포와 공군 전력으로 원점 타격하면 북한의 포병력이 우리보다 2배 가까이 많더라도 분명 우리 군이 괴멸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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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용맹했던 총잡이 이야기


1923년 1월 12일 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의 탄압의 상징이었던 종로경찰서에는 큰 폭발이 일어납니다. 당시 종로경찰서는 일제의 상징이었습니다. 큰 소동이 일어난 후 범인을 잡기 위해 혈안이 된 일본 경찰은 검거작전을 펼쳤는데 이에 대항하여 두 자루의 권총을 들고 홀로 400여 명의 일본 무장경찰과 3시간의 혈투로 벌였던 영웅이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35년간의 독립투쟁 역사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으며 당시 일본의 자존심에 큰 타격을 줬던 민족 영웅의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이미지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양손에 두 자루의 권총을 쥐고 10일 동안 서울 시내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총격전,

수많은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면서도 절대 독립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고 용감하게 싸웠던 김상옥 열사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 않겠소." 


<참고>

김상옥(金相玉, 1890. 1. 5~1923. 1. 22) 

1880년 서울 동대문 효제동 출생.

1912년 영덕 철물상회를 운영.

1913년 경북 비밀결사 광복단을 결성.

1919년 3.1운동 이후 독립운동에 투신하면서 비밀결사 단체인 혁신당 결성과 암살 단체를 만들어 일본 고관과 민족 반역자 처단에 앞장.

1923년 1월 12일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후 400여 명의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고 자결.



1. 독립운동에 투신


1890년 서울 동대문 효문동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공장의 직공으로 일하면서 성장했는데 이후 1912년 영덕 철물상회를 경영하게 됩니다. 

이후 3.1운동을 겪으면서 대한민국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혁신단을 조직하여 혁신공보를 발간하는 등 일제 억압 속에서 독립운동을 하지만 일제에게 인쇄시설 등을 압수당하고 40일 동안 고문을 당한 후 평화적인 독립운동의 한계를 느껴 무력투쟁을 할 것을 결심합니다.





2. 일본총독 암살 계획


1920년 8월 24일 미국의원단을 환영하기 위해 총독 사이토가 환영을 나온다고 알려지자 암살 계획을 세우지만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동료들이 잡힌 후 거사가 어렵게 되자 1920년 11월 상해로 망명합니다. 

이후 그는 총독 암살을 다시 실행에 옮기기 위해 의열단에 입단하여 일본 총독 암살과 관공서 파괴계획을 세웁니다.





"생사가 이번 거사에 달렸소.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서나 봅시다.

나는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는 않겠소."


3. 종로경찰서 폭파


총독 암살에 뜻을 같이 하는 동지들과 함게 나무상자에 권총 4정과 탄환 8백 발을 숨겨 12울 1일 서울에 도착합니다. 

거사가 실패할 경우 자결하겠다는 각오와 함께 당시 민족 탄압의 상징이었던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성공적으로 투척하여 수많은 독립투사들을 체포하고 고문했던 일제의 자존심에 굴욕을 안겨줍니다.





4. 가장 위대하고 용맹했던 400:1 총격전


종로경찰서 폭탄 투척 사건 후 김상옥 열사는 후암동에 있는 매부의 집에 은신하여 있던 중 제국의회에 참여하는 사이토 총독을 다시 암살하려고 했지만 당시 한인 순사였던 조용수의 밀고에 의해 발각되어 무장 경찰 20여 명에게 포위를 당합니다. 

하지만 그는 뛰어난 사격술로 포위망을 뚫고 효제동 이혜수의 집에 은신하게 됩니다. 





5. 의로운 자결


1월 22일 새벽, 수 백명의 일본 경찰이 효제동 일대를 삼엄하게 포위를 하지만 김상옥 의사는 권총 두 자루를 들고 오히려 포위망을 뚫고 뛰쳐나오면서 400여 명(1000여 명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과 총격전을 벌이게 됩니다. 



홀로 4백 여명의 일본 경찰과 맞선 그는 3시간 동안 사투 끝에 일경 16명을 사살하고 결국에는 마지막 남은 탄환 한 발이 장전된 권총을 머리에 대고 벽에 기댄 채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자결을 합니다. 

자결을 했지만 일본 병사들은 겁에 질려 그에게 다가가지도 못한채 김상옥 열사의 어머니가 시신을 수습. 열사의 몸에는 총 11발의 총상이 있었다고 전해지는데 수백명의 일본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면서 10발의 총상을 입었지만 끝까지 대항했던 민족영웅이었습니다. 


▲김상옥 열사가 사용했던 권총 [이미지: 김상옥의사기념사업회]


그의 나이 34세, 

온몸을 바쳐 일제에 대항했던 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용맹했던 총잡이로 불렸던 열사는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한줄기 빛처럼 조국 광복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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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미필은 절대 모르는 '군대 계급별 파워'


대한민국의 20대 초반의 건강한 남자라면 누구나 군대를 갑니다. 입대를 하고 어색했던 짧은 머리가 익숙해질 때쯤 자대 배치를 받고 본격적인 군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계급사회라고 불리는 군대! 군인들은 계급에 따라 똑같다고 할 정도로 비슷한 능력치, 권력, 파워 등을 갖게 됩니다. 미필은 모르는 군대 안에 존재하는 군대 계급별 파워를 지금부터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군대 미필은 절대 모르는 '군대 (육군) 계급별 파워' "


*군 복무하신 분들은 대부분 공감하실 내용입니다. 



10위 일병 


일병은 한 마디로 '일꾼'(드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는 계급이 제일 낮은 이병이 10위라고 생각하실 텐데 실제 군대에서 가장 바쁘고 스트레스받고 있는 계급은 일병입니다. 위로는 상병과 병장들의 갈굼 아닌 갈굼을 받아야 하고 밑으로는 이등병을 관리하고 보살펴야 합니다. 

군 생활할 때 생각해보면 거의 모든 소대에는 흔히 A급이라는 일병들이 한두명은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맞후임인 이등병들이 실수라도 하면 아무리 A급 일병이라고 해도 박살 나기 마련입니다. 

이병들도 챙겨야 하고 상병, 병장들도 챙겨야 하는 사실상 제일 낮은 계급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9위 이병 


군대에서 가장 낮은 계급입니다. 실제로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제일 불쌍하게 생각하는 계급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알고보면 처음 자대 배치받는 순간부터 이등병은 웬만해서는 엉뚱한 짓을 해도 열외입니다. 왜냐? 이병이기 때문입니다. 실수를 해도 '이병이 뭘 알겠냐', '일병이 잘못 가르쳤네' 등의 말로 일병이 모두 커버를 하게 됩니다. 얼차려도 통하지 않고 말도 통하지 않고, 스타크래프트의 '라바' 같은 존재인 무적 방어 이등별(스타)이라고 불립니다.

심하게 혼내기라도 하면 바로 '마음의 편지'라도 쓰는 날에는 내무반에 철퇴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마음의 편지'란 군대에서 익명으로 이루어지는 편지입니다. 부대 환경이나 또는 힘든 점 등을 작성해서 편지함에 넣게 되면 그날 지휘관이 확인하게 됩니다.



8위 상병 


험난했던 일병 생활을 끝으로 상병이 되면 이제 험나한 생활에서 살짝 벗어나게 됩니다. 

본격적으로 일병들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투력이 뛰어난 상병 같은 경우에는 실세로 군림할 수 있지만 부대 사정에 따라 꼬인 군번인 경우는 상병이 되어도 일병처럼 생활할 수 있는 단점이 있습니다.




7위 신임 하사/ 신임 소위 


서로 계급은 다른데 군대 내에서 파워가 없다는 부분에서는 동일한 계급입니다. 이 둘 계급의 공통점은 부대 내 간부라는 계층에서 일개미로 통하며 실무 배치를 받으면 밖에서 듣고 온건 많아서 하나같이 초반에 사병들을 장악하려 합니다. 

하지만 결국엔 병장들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신임 소위 파워는 새로 전입 온 이등병과 같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신임 소위는 꼭 한 번 이런 실수를 합니다>

* 자대 배치를 받은 신임 소위가 행보관에게 상사라는 이유로 대놓고 반말하는 경우. (중대장에게 완전히 찍히는 행동입니다)




6위 병장 


일반 병들의 왕. 절대권력으로 항상 자신들의 짬과 전투력을 과시하면서 거드름을 피우지만 요즘은 절대권력까지는 아닌 듯합니다. 

내무반에서 병장이 있는 자리는 공기부터가 틀리게 느껴집니다. 이들은 항상 제대할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5위 중위(소대장) 


일단 계급은 높지만 부대 내에서 실질적으로 파워는 높지 않은 편입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중대장들에게 많이 당하는 편입니다. 

자신의 계급을 내세우고 싶어 하지만 중사들이 맞먹는 경우가 많으며 말년 병장들은 친한 동네형 정도로 생각합니다. 





4위 중사(부소대장)


부내 내에서 실세로 통하며 나이도 제법 되며 짬도 되기 때문에 전투력도 절대 무시 못하는 존재입니다. 

말년 병장들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로 일반 병들에게는 그야말로 천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중대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상당해서 중대장도 쉽게 건들지 못하는 존재로 족구까지 잘하면 그야말로 부대 내 실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3위 중대장(대위) 


중대의 대장으로 많은 분들이 중대에서 파워가 제일 높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장기복무 여부에 따른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으며 중대를 책임지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매우 힘든 계급입니다. 게다가 대대급의 압력(보통 작전과장한테 많이 털림)과 명령을 받는 계층으로 권력 행사가 자유롭지 않습니다.




2위 행정보급관(상사) 


중대장 다음으로 중대의 투고!

진급 걱정으로 매일 머리를 싸매고 있는 대외와는 다르게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부대를 누비는 계층입니다. 

전입 온 이등병들은 하나같이 '어? 뭐 하는 사람이지?'라고 할 만큼 자유롭고 자기 뜻대로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20년 가까운 짬으로 부대를 컨트롤합니다.

지닌 전투력과 작업 실력만으로도 전 부대원들의 순종을 이끌어 낼 수 있으며 계급상 상관인 소위, 중위 정도는 진척 조카처럼 대할 수 있습니다.




1위 제대 앞둔 중위, 중사 


ROCT, 학군단 출신의 장교로 중위로 전역을 합니다. 부대 내에서 아무도 터치를 못할 만큼 자유도가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사고가 아니고서는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 제대 앞둔 중위는 부대의 온갖 내부 사정들을 상세히 알고 있습니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핵폭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제대를 앞둔 병장과는 비교 자체가 안될 만큼 배째라는 식을 구사할 수 있는 계층입니다. 


끝으로 조금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군필이신 분들은 많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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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공중전, 시작과 동시에 북한이 도망쳐야 하는 이유


지금 북한은 핵 실험과 ICBM 발사 준비 등 언제든지 대남 도발을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상태입니다. 이런 도발은 그들이 외교적으로 불리할 때 항상 사용했던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계속되는 도발 위협 속에서 만에 하나 그들이 실제 도발을 감행한다면 가장 효과적인 응징 수단은 우리 전투기에 의한 도발 원점과 주요 거점 타격을 들 수 있겠습니다. 



현재 북한 공군 전력의 40% 이상이 평양과 원산선 이남에 배치된 상태에서 공군기의 기습적인 도발이 예상될 때를 가정해서 한국 공군의 전투기와 북한 공군의 전투기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한국과 북한 전투기 보유수량 (헬기, 수송기 포함)"

한국 항공기 917대 VS 북한 항공기 1,200대



"북한 공군의 전투기 종류와 전력 수준"


공군은 원래 시설과 장비, 그리고 조종사의 훈련 등 많은 자금이 투입되고 유지가 되어야 합니다. 실질적으로 북한은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지원을 하지 않는다고 봐도 될 것입니다. 6.25전쟁에서 사용하던 전투기들을 지금도 운용하고 있는 실정이고 미사일도 제대로 장착이 안되는 기종들이 거의 대부분일 정도로 개선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북한의 공군 전력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MIG-15 [대략 50기 보유]


6.25때 사용하던 1세대 고물 전투기로 미사일 장착도 안됩니다. 무장으로는 기관총과 로켓포만 장착이 가능해서 우리나라 훈련기에 기관총만 달고 싸워도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수준입니다. 북한에서는 기습작전에 자폭용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기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MIG-17 [대략 107대 보유]


MIG-15와 함께 1세대 전투기로 37미리 기관포 외에 미사일 공대공 미사일 장착이 되지 않는 퇴물 전투기입니다. 

북한에서는 현재 훈련기로 사용하고 있으며 속도는 마하 1미만으로 남북한 공중전 발생 시 F-16 전투기와는 이미 상대 자체가 안되며 역시 기습작전에 작폭용으로 사용될 기종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3. MIG-19 [대략 100기 보유]


1990년대 이웅평 상위가 몰고 귀순해 온 전투기로 유명합니다. 당시에는 최신형 전투기로 북한의 조종사가 최신형 전투기를 직접 몰고 귀순함으로 국익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중국산 단거리 미사일을 장착했지만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이기 때문에 사거리가 짧고 유도미사일이 아니라서 공중전 발생 시 최신 레이더와 긴 사거리의 미사일을 장착한 F-15를 보기도 전에 격추될 확률이 높습니다. 





4. MIG-21 [대략 200기 보유]


2세대 전투기로 북한의 주력 전투기입니다. 우리나라 전투기와 비교를 한다면 제공호 정도와 겨우 비슷할 정도로 빔펠K-13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무장하고 있지만 RWR 경보장치(적의 미사일에 조준당할 경우 경보음일 들림)도 없어서 한국 공군기 F-16과 1:1을 한다면 게임 자체가 될 수 없습니다. 





5. MIG-23 [대량 50기 보유]


미그 23은 한국 공군기도 쉽게 무시 못할 기종입니다. RWR 경보장치가 달려 있는 기종인데 지난 연평도 포격 사태에서 우리 군의 공군기가 미사일 락온을 걸자 RWR 경고를 확인하고 바로 도망간 기록이 있습니다. 

한때 명품 전투기로 통했지만 지금은 국군 F-16과 비교하면 사정거리, 속도, 레이더 등 모든 면에서 월등하기 때문에 날아오는 즉시 출격해서 격추시킬 수 있습니다. 실제로 1980년대 이스라엘 공군기 F-4, F-16, F-15, A-4 96대와 시리아 공군기 미그 23과 미그 21 62대가 공중전에서 이스라엘 공군기는 1기만 격추당하고 시리아 공군기는 56대가 격추당하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6. MIG-29 [40기 보유]


북한이 보유한 최신 4세대 전투기입니다. 현재 독일과 러시아에서도 보유하고 있는 모델입니다, 하지만 북한이 보유한 전투기는 초기 기본 모델이기 때문에 실제 성능은 아주 떨어지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단 국군의 F-4, F-5에게는 승산이 있는 기종이지만 F-16에게는 상대가 안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북한이 이토록 오래된 전투기들을 지금도 운용할 수 있는 이유는 연간 비행시간이 15시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군의 경우는 연간 180시간을 비행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이미 공군기를 운용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에 최대한 비행시간을 줄이면서 기체를 오랜 시간 유지하는 실정입니다.





"한국 공군의 전투기 종류와 전력수준"


한국은 1983년 이웅평 씨가 미그 19기를 가지고 귀순하기 전까지 공군의 전력은 평편이 없었습니다. 당시 이웅평 씨의 조종사 복장만 비교해봐도 쉽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북한 보다 열악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몰고 온 전투기와 조종사복 덕분에 한국 공군의 문제점을 바로 개선할 수 있었고 지금은 아시아 최고의 공군력을 지닌 국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1. KA-1 


프로펠러가 달린 KT-1 초등훈련기를 기초로 만든 경공격기입니다. 북한의 1세대 전투기와 항공기를 상대하는데 무리가 있지만 유도 미사일을 장착한다면 북한 1세대 비행기들과 붙었을 때 충분히 승산이 있습니다. 





2. F-4 팬텀 [40기 보유]


3세대 전투기로 베트남전에서 활약한 기동성이 뛰어난 전투기입니다. 국군의 F-4D는 현재 퇴역을 했고 F-4E는 4여 대 운용 중에 있습니다. 한때 '미그기 킬러'로 불렸으며 오래된 전투기지만 AIM-120(AMRAAM 공대공 미사일) 장착시 상당히 강한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3. F-5 [100기 보유]


대한항공에서 라이선스로 제작한 전투기입니다. 레이더와 속도, 무장이 빈약한 편이지만 2020년까지 운용할 계획입니다. 

베트남전에서 미국이 실전 운용 테스트를 했으며 당시 테스트에 참여한 파일럿 그룹에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1977년 실전에서 2기의 F-4 편대가 4기의 MIG-21 편대를 모두 겪추시켰던 기록이 있습니다. 





4. F/A-50 [60~120까지 보유할 예정]


T-50 고등훈련기를 베이스로 제작한 경공격기로 AIM-120 또는  AIM-9를 장착하면 공대전까지 가능한 3.5세대 전투기입니다. 

전자전 장비는 F-16보다 뛰어나지만 전체적인 성능은 F-16의 70%가량 발휘합니다. 





5. F-16C/D, KF-16 [30/130기 보유]


한국의 주력 전투기로 4세대 전투기입니다. 최대 마하 2.0의 속력을 낼 수 있으며 전투행동반경은 580Km, 외부 연료 장착시 최대 전투행동 반경 900Km입니다. 하드 포인트는 9개이며 공대공 무장과 JASSM 순항미사일, 하푼 미사일, 매버릭 미사일, 대 레이더 유도미사일, 유도폭탄, 정밀 유도폭탄 등 공대지 무장을 최대 6.9톤까지 장착 가능합니다. 한마디로 떴다 하면 북한 전투기들을 다 잡을 수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6. F-15K [60기 보유]


얼마 전까지 동북아 최강의 전투기로 4.5세대 전투기입니다. 북한 공군에는 현재 F-15K에 대적할 전투기가 현재 없습니다. 무장 능력 또한 11톤이라는 경이적인 무장량을 자랑하며 특히 공대지 능력은 더욱 뛰어납니다. 

북한 공군기들의 기습 타이밍만 잡는다면 100% 승산이 있을 만큼 막강한 한국 공군의 전력입니다. 





7. F-35 [향후 40여 기 보유할 예정]


2018년부터 7조 3000억원을 들여 40여 대를 순차적으로 도입하기로 계약한 스텔스 전투기입니다. 

이미 북한 전투기들은 상대 자체가 안될 만큼 뛰어난 전투기입니다. 앞으로 한국 공군이 40여 대를 보유하는 자체만으로도 북한의 도발과 전쟁억지에 많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막강한 공군 전력은 그 나라 군대의 전체 전력이라고 해도 될 만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국가가 뛰어난 전투기와 조종사들을 보유한다면 적의 도발이 예상되거나 도발 시, 즉각 응징 및 보복 타격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곧 도발과 전쟁 억지의 기능까지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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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빌테면 덤벼라! 북한 특수부대가 두렵지 않은 이유


나라와 국민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군대. 최근 국제정세가 불안해지면서 "강한 군대가 없는 국가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라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봅니다. 북한의 계속적인 도발과 유사시 우리 국토의 후방으로 침투할 북한 특수부대는 무시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북한 특수부대가 두렵지 않은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을 지키는 육/해/공군 소속의 세계 최강 특수부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1. 육군 특수전사령부(특전사)  


"안되면 되게 하라!"

"귀신 같이 접근하여, 번개 같이 타격하고, 연기 같이 사라져라."


*임무

육상/해상/공중의 다양한 루트를 통해서 적진에 침투하여 교란작전, 게릴라전, 요인 암살, 인질 구출, 목표 섬멸, 심리전 등의 비정규전을 수행하는 육군 본부 직할의 기능 사령부입니다 


일반인들에게는 "공수부대" 라고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

1,3,7,9,11,13 여단으로 6개의 공수특전여단과 사령부 직할 대테러 부대인 707특수임무대대, 파병 전담 부대인 국제평화지원단, 특수전학교로 구성됩니다. 5개 중대로 편제되어 각 팀 총 12명 정도의 대원이 한 팀을 구서합니다. 


*역할

팀 내 특전 주특기인 통신/폭파/정보/의무/화기로 나뉘어 각 주특기 보직에 담당관 2명을 두고 2명씩 이루어진 팀을 2개의 조로 별도 분리하여 작전을 수행합니다. (한쪽 팀이 전멸을 하더라도 다른 팀은 작전 수행이 가능합니다)



*활동

1958년 4월에 창설하여 미 육군 그린베레에게 위탁교육을 받아 1960년대부터 대간첩작전에 투입되어 적 공비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고 베트남전에 투입되어 특수임무를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보복작전에 투입되어 북한군 초소 여러 개를 파괴한 전과도 있습니다. 





2. 해병수색대 


"안 하면 할 때까지! 안 되면 될 때까지! 악에서 악으로!

은밀, 신속, 정확"


*임무

상륙작전시 상륙 본대의 상륙전까지 적의 해안가로 침투 정찰, 지휘관 암살, 목표타격, 장애물 요소 제거 등의 적지종심작전이 주 임무입니다. 

해병수색대는 해병대의 최정예 전력입니다.



*역사

1957년 2월 경기도 파주군 금촌 해병대 제1사단에서 창설된 특공 소대가 전신이며 1959년에 수색중대로 증편되었습니다.

60년대부터 육군 특전사에서 공수교육을 받아 왔으며 1970년대는 자체 공수훈련을 시작하여 현재는 동계 스키 훈련과 수중침투훈련까지 소화하고 있습니다.


*역할과 활동

주임무로는 해병 본대의 상륙작전 이전에 해상과 공중으로 미리 침투하여 정찰 및 정보 수집, 기습, 장애물 제거 등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상륙 본대의 안내 역할을 합니다. 

병 위주로 구성된 특수부대로 유일합니다. 





3.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불가능은 없다!"


*임무

UDT라고 많이 알고 있지만 정확한 명칭은 해군 특수전전단이라고 합니다. 

UDT 수중폭파대, SEAL은 해상 공중 지상 특수 침투 및 타격대, EOD는 폭팔물처리대, CT는 해상 대테러 특수 임무대를 말합니다 


*역사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때 활약했던 미 해군 수중폭파대를 모델로 1955년 11월 UDT 1기생을 배출했습니다. 

1976년 SEAL을 창설, 1990년대는 해상 대테러 특수반 CT를 창설하여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역할과 활동

특전사와 더불어 국방부 공인 특수부대로 제한적 임무를 수행하는 비공식 공작부대가 아니고 전천후 작전 능력과 전술능력을 보유한 부대입니다. 

해군 소속이지만 육해공으로 침투하여 대테러, 기뢰제거 등의 특수임무도 수행하는 전천후 부대입니다.





4. 해군 해난구조대 (SSU) 


"더 넓고 더 깊은 바다로!"


*임무

세계적 수준의 심해 잠수능력을 가진 대한민국 최정예 심해 잠수 특수부대입니다. 

평상시에는 해난구조작전과 항만 및 수로 장애물 제거, 함정 인양을 통한 정보 수집과 상륙작전시 전투 구조 임무를 수행합니다. 


*역사

1950년 9월 1일 군무원 중심으로 해군본부 함정국 해상 공작대로 창설.

1954년 8월 1일 해상 공작대에서 해난구조대 이름을 바꾸고 세월호 참사 후 3개 해역에 구조작전대를 창설하였습니다. 

지금은 심해 잠수대를 새롭게 편성하여 제1구조작전대(동해), 제2구조작전대(평택), 제3구조작전대(목포), 심해 잠수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역할과 활동

이들의 수영실력은 세계 최고의 수준입니다. 


제2차 연평해전 참수리 357호 인양

천안함 인양 수색

여수 반잠수정 인양

동해 북한 잠수정 인양 등 수백 건의 해난구조 탐색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 최정예 부대입니다.





5. 공군 공정통제사(CCT) 


실미도 684부대 후예


"First There, Last Out"


*임무

공군 특수부대입니다. 적진에 사전 침투하여 아군 본대에 지상 장애물과 적진의 기상정보를 수송기에 알려 아군의 투입을 유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공수 강하 외에도 수중침투, 장애물 제거, 폭발물 설치, 산악 매복 등의 작전도 수행하기 때문에 특전사와 유사하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역사

1978년 4월 제5전술공수비행단 예하 중대급 규모로 창설되었습니다. 

실미도 684부대의 후예로 잘 알려진 그들이 모든 특수부대가 인정하는 최강의 부대로 알려진 이유는 "가장 먼저 전장에 뛰어들고 가장 나중에 빠져나온다."라는 그들의 신조 때문입니다.


1968년 북한 124군부대의 청와대 습격사건에 대한 보복으로 김일성 주석궁 폭파 임무를 위해 구성된 것이 실미도 부대인데, 실미도 부대의 해체 후 7년 만에 만들어진 부대가 바로 CCT입니다. (실미도 부대를 양성했던 공군 정보교육대대가 교육합니다)

부대 마크가 지금도 실미도 부대 마크를 사용하는 최강의 엘리트 특수부대입니다. 



*역할과 활동

'침투로의 개척자'로 불리며 5년 정도 된 요원도 신병으로 취급할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과 전문지식을 습득해야 합니다. 

은 베레모가 이들의 상징입니다.


이들의 부여받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받는 훈련은 항공관제, 고공낙하, 스쿠버, 통신, 폭파, 야전 기상관측, 생환 등 1년 과정을 거치고, 707 대테러부대 훈련 4개월, 해군 UDT 훈련 6개월, 해병대 산악 레펠 2주 등 대한민국의 특수부대 훈련은 모두 종합해서 2년간 특수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6. 공군 항공구조사 (SART


"언제 어디든 우리는 간다"


대한민국 대표적인 특수부대인 UDT도 인정한 특수부대


*임무

적진에 추락한 아군 항공기 조종사를 구출하는 임무를 수행하며, 평상시에는 민관 군 필요한 곳에 출동하여 임무를 수행합니다. 


*역사

1958년 제10전투 비행단 예하 제33구조 비행 대대로 창설된 한국군 특수부대 중 유일하게 VIP 구출(공군 파일럿)에 특화된 공군 소속 부대입니다. 구조대는 조종사와 부조종사, 정비사, 구조사 등으로 구성됩니다. 



*역할과 활동

부대장을 제외한 부대원 70명이 모두 부사관으로 이루어진 소수 정예로 스쿠버, 고공강화 훈련과 이들의 의술은 의사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납니다. 

창설이래 주한민군 조종사 구출, 공군 조종사 구출, 목포 민항기 구출,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의 작전에 투입되어 4000여 명이 넘는 인명을 구조한 공군 소속 특수부대입니다.  


이미지 출처 : 국방부


이들이 기본 개인화기는 K-2 소총과 대검으로 최소 무장 수준을 갖추고 있습니다. 적진에 떨어진 조종사를 구해야 하면 교전이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이들은 교전이 이루어질 상황이 생기면 적의 무기를 뺏아서 사용하면 된다고 말할 정도로 뛰어난 전투력과 자부심으로 뭉친 특수부대입니다.



대한민국이 오늘도 평화로운 이유는 지금도 열심히 훈련과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국군 장병과 이들 최정예 특수부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명예를 위해, 나랄를 위해, 그리고 전우를 위해.

그들은 오늘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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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UDT, 불가능의 한계를 넘어선 그들만의 자부심 


해군 UDT는 '불가능은 없다!' 그들의 구호처럼 대원들 모두가 불가능의 한계를 넘어선 대한민국 해군의 최강 특수부대입니다. 이들은 UDT/SEAL이라고 칭하며 통상 UDT라고 부르고 있으며, '아덴만의 여명 작전'으로 대한민국 특수부대 수준이 세계 최강임을 전 세계에 보여준 대한민국 해군의 자부심입니다. 



대한민국 바다를 지키기 위해 자원입대한 이들은 대한민국의 어느 특수 부대보다도 자부심이 높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해군의 전천후 임무를 수행하는 해군 UDT! 

그들만의 자부심을 함께 느껴보겠습니다!


"불가능은 없다!" 



UDT/SEAL 자부심 1. 임무 


해병대의 본격적인 상륙 작전이 이루어지기 전에 적 해안가에 침투하여 기뢰와 수중 장애물과 레이더, 해안포 등을 제거하며, 상륙부대에 각종 해안 정보 등을 제공하는 임무를 맡고 있습니다. 


<참고>

UDT는 '수중폭파대' (Underwater Demolition Team)의 약자로 상륙작전시 미리 침투해 해변에 설치된 각종 수중 장애물을 폭파하는 임무 수행을 뜻함.

SEAL은 (Sea, Air and Land)의 약자로 육해공을 가리지 않고 여러 특수 임무를 수행함을 뜻함.



UDT/SEAL 자부심 2. 역사 


1954년 6월 23일 해군 한국함대 예하에 상륙전대 창설.

이후 상륙전대 예하 해안대에 미 해군 UDT를 모델로 한 수중파괴대가 편성됩니다. 이로써 대한민국의 전천후 해군 특수전부대가 탄생하게 됩니다. 


<참고> 부대 명칭과 역할

*해군 특수전전단 = UDT = UDT/SEAL = 해군 특전단 등으로 불립니다. 

미 해군의 UDT와 SEAL을 모델로 하며, 명칭과 역할 또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UDT/SEAL 자부심 3. 선발 


'불가능은 없다!'를 모토로 하는 해군 특수전전단은 대한민국 바다를 지키는 최고의 특수부대로 1년에 2번 모집을 합니다. 

UDT 기본 지원자격으로는 18~28세 이하 중졸 이상이며 시력 0.8이상, 수영 200m 이상 가능해야 기본적인 지원자격이 주어집니다. 모집인원은 1년에 40여 명 정도로 포박 수영 훈련과 지옥주 훈련 등을 이겨내면 이들은 명실상부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하고 바다의 식인상어라고 불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DUT/SEAL의 자부심입니다.



▼영상출처: 국방부



UDT/SEAL 자부심 4. 교육 


병의 훈련은 10주를 받아야 하며, 간부(부사관)은 20~26주간의 혹독한 해군 특수전 초급반 과정을 수료해야 합니다. 

기초체력 강화 훈련을 통과하는 인원이 지원자의 40% 미만이라고 할 정도로 모든 훈련을 소화한 해군 UDT 대원들의 자부심은 최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UDT/SEAL 자부심 5. 훈련 


일반학 훈련 단계에는 구보, UDT 체조, 전투수영, IBS 운용법, 조정 등 혹독한 훈련을 하게 됩니다. 예로 UDT 체조는 평균적으로 1000회 이상 실시하는 프로그램으로 극한의 체력을 요구합니다. 



이렇게 4주 교육이 끝나면 지옥주가 시작됩니다. 

잠을 자지 않고 모든 훈련을 다 소화해야 하는데 IBS를 메고 산으로 바다로 다니고, 팀원들끼리 머리에 IBS를 메고 밥을 먹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견뎌내고 이겨냄으로써 '불가능은 없다!'라는 해군 UDT 대원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전우들과 함께 극한의 악조건과 스트레스를 극복하여 신체와 정신력의 한계에 도전한 그들!

불가능을 모르는 해군 UDT 대원들이 바로 대한민국 해군의 자부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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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로 불리는 그들만의 자부심, 해병 수색대

 

'해병 중의 해병'이라 불리며 해병대 속에서도 막강 전력인 그들은 부대 단위가 아닌 특전사나 UDT, SEAL 대원들처럼 팀 단위로 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들이 대한민국의 1%로 불리며 어느 부대에서도 볼 수 없는 자부심으로 가득 찬 이유는 선발, 훈련과정뿐만 아니라 최고의 특수부대로서 전시에 해병대 본대가 상륙작전을 개시하기 전에 먼저 적의 주요 거점에 도달하여 목숨을 걸고 정보 수집 및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있습니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특수부대로 그리고 무적 해병대의 특수부대로 그들이 가지는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 막강 해병대의 첨병인 해병 수색대의 자부심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참고>

*해병대- 상륙작전과 수륙양용작전을 주 임무로 하는 국가전략기동부대

*해병 수색대- 해병대의 전천후 특수부대로 육해공으로 침투 후 적지종심지역에서 정찰감시, 화력유도 등의 임무를 수행하는 팀 단위 부대


"신속, 은밀, 정확"

"물같이 침투하여 불같이 타격하고 바람처럼 퇴출하라"



자부심 1. 임무 


해병대 수색대는 해병대 본대의 상륙작전이 개시되기 1~2일 전에 적의 해안가에 사전 침투하여 정보 수집과 정찰 등 지휘체계를 파괴하여 해병대 상륙작전이 원활하게 수행될 수 있도록 합니다. 

(인천 상륙 작전에서도 이들 해병대 수색대의 역할이 있었기에 상륙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부심 2. 역사 


1950년 6.25 전쟁 기간 중 해병대 첨병 역할을 수행했으며, 1957년에 중대급으로 재편성되었습니다. 

1960년 미 해병 수색부대와 영국 해병대 코만도 부대와 연합훈련으로 전천후 특수부대로 다시 태어납니다.

1970년 베트남전 파병과 실전 경험으로 대간첩 작전, 수색, 도서지역 감시 등의 임무가 확대됩니다. 


현재는 대한민국 해병대에 총 2개의 수색대대와 2개의 수색중대가 있으며 아래는 연도별 불렀던 부대명입니다. 

1970년대 해병대 1사단 수색중대 또는 해병 수색대

1980년대 해병 특수수색대, 해병대 특수수색대

1990년대 이후로는 해병 수색대, 해병대 수색부대로 알려졌습니다.



자부심 3. 선발 


해병대에서 해병대 수색대는 가장 인기가 많고 지원율이 높습니다.(10명 모집에 300명 정도가 지원하여 거의 30:1의 지원율을 나타냅니다)  

이렇게 지원율이 높은 이유는 힘든 훈련과정과 자대 배치 후에도 지옥 같은 훈련이 기다리고 있지만 모든 훈련을 이겨내고 진정한 해병 수색대원이 되었을 때 가지는 자부심 때문일 것입니다. 


* 안경 착용자는 절대 수색대원이 될 수 없으며 체력 테스트와 심해 잠수, 잠수함 모의 이탈 훈련 등을 이겨 내고 합격해야지만 해병대 수색대에서 근무할 수 있습니다.



▼영상출처: 국방부



자부심 4. 교육 


일반 수색대 대원들은 7주간 기본 해병화 교육을 이수한 후 수색교육대 3주간 훈련을 받아야 하는데 이렇게 기본 교육을 모두 이수하면 다시 해당 수색대에 배치되는데 해병대 수색부대는 일반 사병이 경험할 수 없는 훈련들을 모두 경험할 정도로 힘듭니다. 

★복무 기간 동안 10주간 특수수색교육과 3주간 공수 교육은 필히 수료해야 함. 



자부심 5. 훈련 


해병 수색대는 IBS 고무보트, 전투수영, 스킨스쿠버, 리컵버리, 맥과이어, 설한지, 무적도, 천리행군, 생존술 등 고강도 훈련을 실시합니다.


해병대 수색대의 가장 혹독한 훈련으로 알려진 10주간 특수수색교육훈련은 이 과정에서 지원자의 30%가량이 탈락할 정도로 유명합니다. 

1주간의 지옥주(극기주) 훈련은 취침을 하지 않고 평소 식사량의 1/3만 섭취하며 7명이 200Kg의 보트를 머리에 이고 도심, 산악 지역으로 이동하는 훈련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한계를 경험하는 훈련으로 이 과정을 모둔 이겨낸 해병대 수색대원은 대한민국 1%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부심 6. 녹색 베레모 


해병 수색대가 가지는 자부심, 그들의 녹색 베레모입니다. 원래는 팔각모를 착용했지만, 수색대 장교의 건의로 1970년대 중반부터 부대 내부에서 착용해 왔으나 1983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착용하고 있습니다. 훈련 중에는 팔각모와 부니햇을 착용합니다. 


▲연기자이지만 한 분은 해병대원으로 한 분은 해병 수색대원으로 그들만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해병의 자부심이 묻어 나오는 거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자라면 누구나 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곳, 해병 수색대!

해병 수색대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해병대의 최정예 대원들로 구성된 대한민국의 정예 특수부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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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 때리면 열 배로 갚는다! 한국 vs 북한 전차 현황


북한은 5차례에 걸친 핵 실험과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장거리 로켓을 성공적으로 발사했습니다. 또 최근에는 김정은이 참관한 가운데 실시한 청와대 타격훈련을 공개하는 등 노골적으로 위협 수위를 높여가고 있습니다. 시국이 혼란스러울 때 의도적인 도발을 하는 북한! 오늘은 북한의 전차부대 도발이 현실화 된다고 가정했을 때를 대비해 한국 주력 전차와 북한 주력 전차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국과 북한 전차 보유 수량 (2016 국방백서)"


한국 2400대 (해병대 포함) vs 북한 4300대


수적으로 볼 때 북한의 전차 보유량은 한국의 2배에 이르며 한국군이 열세로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알아보면 이미 한국은 1970년대 후반부터 3세대 전차 1547대를 지금까지 주력 전차로 운용 중에 있으므로 성능에서는 크게 우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2013년에 파악된 북한의 최신형 전차인 선군호가 우리 군에 파악되었고, 몇 년에 걸쳐 같은 기간 우리군이 전력화한 전차의 2배가 넘는 900여 대를 전력화함으로써 전차 전력이 급격히 강화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리고 최근 북한군의 위협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전차부대가 기습적으로 도발할 경우, 우리 군의 전차부대는 열 배의 화력으로 적을 섬멸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 한국과 북한의 세대별 주력전차 현황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3.5세대 전차 흑표 " 


우리 손으로 만든 세계 최고의 전차 K2 흑표입니다. 

K2 흑표느 1차 양산분 100대가 2015년 11월 26일 모두 생산 완료되었습니다. 현재 제20 기계화 보병사단에 배치 중입니다.

주무장으로는 독자 개발한 120mm 55구경 활강포를 사용하고 있으며 전면의 방호력이 800mm 급에 달합니다.




K2 흑표전차의 무장 능력이나 방호력이 우수한 것 외에도 모듈식으로 설계된 장갑은 향후 적의 기술 개발에 따른 무기에 대비해서 개발된 장갑을 손쉽게 추가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K1A1전차


"한국 3세대 전차  K1A1, K1, T-80U, T-80UK" 

(각 484대, 1027대, 33대, 3대)


K1A1 전차는 K1의 개량형 전차로 120mm 활강포를 탑재했으며 주요 핵심 부품이 국내 기술진에 의해 개발되고 장착되었으며 방호력과 복합 장갑제를 큰 폭으로 개선하여 현재 3.5세대 전차와 맞먹는 수준의 전차입니다. 주무장으로는 KM256 120mm 활강포를 사용하며 2012년 10월에는 디지털 성능을 개량한 K1A2가 출고되었습니다.


▲K1전차


K1 전차의 별명은 88전차로 불립니다. 3세대 주력 전차로 1970년대 북한이 T-62 전차에 대항하기 위해 70년대 중반부터 개발되어서 1985년 개발이 완료되었습니다. 현재 1027대가 실전 배치되었고 개량형으로는 K1A1 전차가 있습니다. 

주무장으로는 KM68A1 105mm 강선포를 탑재합니다.




▲북한의 선군호


"북한의 3세대 전차  선군호, 폭풍호" 

(선군호 900여 대, 폭풍호 500여 대)


선군호는 2010년 북한의 군사프레이드에서 처음 확인한 북한의 최신형 전차입니다. 우리나라의 K1 또는 K2를 상대하기 위해 개발된 것으로 추측하며 아직까지도 정확한 성능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방호력이 700mm 정도로 알려졌는데 이는 상당한 수준의 방호력이지만 현재 우리 보병의 대전차무기인 PZF-3 (팬저파우스트-3)로 파괴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아랫글 참고.)



▲북한의 폭풍호


폭풍호는 북한의 2세대 전차를 대체하기 위해서 개발된 북한의 주력전차입니다. 

k1에 대응하기 위해서 개발된 T-62 전차의 개량형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현재 우리군에 가장 위협적인 기갑 세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전차 vs 북한 전차 교전시"

북한이 한대 먼저 때리면 열 배로 갚을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가진 대한민국 주력전차!


1. 우리 군이 보유한 모든 전차의 105mm/120mm 강선/활강포는 현재 북한군의 모든 전차들의 사정거리 밖에서 북한군 전차의 전면 장갑을 관통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2. 우리 군의 전차 방호력은 600m 이상의 거리에서 북한군 전차에 포격을 받더라도 충분히 북한군의 APFSDS탄(장갑관통형탄)을 방호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3. 기본적인 전차 설계, 화력, 방어력, 기동력, 등 우리 군의 주력전차(MBT :Main Battle Tank)가 북한군의 주력전차를 충분히 압도합니다. 


4. 우리 군의 신형 APFSDS탄(장갑관통형탄)과 새로 개발된 120mm 탄은 세계 최고 수준의 관통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2.5세대 전차들 대부분을 관통할 정도의 수준입니다. 


마지막으로 전차의 성능 면에서는 우리 군이 북한 전차를 압도하더라고 성능 개발과 연구를 꾸준히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일전에 소개해드린 보병의 대전차 화력 또한 지금보다 더욱 발전시키고 증대시켜서 북한 전차에 대한 추가적인 보병 전력으로 더욱 막강하게 구성 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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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 시해사건, 일본이 지금까지 숨기려는 이유


1895년 10월 8일 새벽 5시.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역사의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조선의 국모가 일본의 조선침략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일본 공사 미우라고로의 지휘아래 '여우사냥'이라는 작전명으로 조선의 국모를 처참하게 시해한 사건입니다. 

그들이 이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켰던 원인과 숨겨야 했던 이유는? 지금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과거 일본이 저질렀던 악랄했던 사건을 다시 재조명 해보겠습니다.



"시대적 배경


조선을 놓고 한 판 승부를 벌인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합니다. 이제 그들은 청나라의 간섭없이 조선에 막대한 영향력을 펼치는 동시에 멀리 만주까지 세력을 넓히려는 야욕에 불탑니다. 

갑오개혁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조선의 내정에 관섭했던 일본은 조선에 친일 내각을 형성하여 이후 본격적으로 조선 침략을 시작하려는 시기였습니다.

이 당시 친일 내각의 구성원으로 김홍집, 박영효가 있습니다. 




"당시 일본이 한 나라의 국모를 시해한 원인"


일본은 조선 침략을 위해 다양한 방법들을 모색하는 상황에서 명성황후는 친일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러시아 공사관인 베베르의 도움을 받아 친러세력을 세우면서 일본인들의 압박하기 시작하는데, 위기감을 느낀 일본은 결국에 '여우사냥' 이라는 작전명 아래 황후의 암살을 계획합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 가담자들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서 어떤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러시아 세력을 몰아내려고 했습니다. 

당시 주한일본공사로 임명된 미우라는 '여우사냥' 작전을 위해 대원권 세력의 협조를 받았으며 일본 공사관 직원을 문관대시 무관출신으로 교체합니다.


▼범행에 가담한 상당수가 지식인이며 이후 일본의 장관직을 지낸 사람도 있습니다.



"명성황후 시해 과정


1895년 10월 8일 새벽 5시. 정체불명의 무리들은 경북궁 정문으로 들이 닥치며 궁궐을 수비하고 있던 훈련대 연대장 홍계훈과 일행을 살해하고, 고종의 침전인 곤령전에 난입하여 고종의 어의를 찢고 세자에게 칼을 겨누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일본군과 일본인 복장을 한 이들의 갑작스러운 습격으로 궁궐 수비대는 일시에 괴한들에게 장악됩니다.

궁내부 대신 이경직이 이들을 막자 총으로 사살한 후 고종이 보는 앞에서 다시 한 번 칼로 베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궁궐을 순식간에 장악한 이들은 명성황후의 침실인 옥호루로 곧장 난입하여 궁녀들을 악랄한 방법으로 살해하고 황후에게 칼로 상처를 입힌 후 옥호루에서 끌어냅니다. 이후 이들이 벌인 끔찍한 만행은 차마 입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는데 이들은 명성황후의 시신에 온갖 모욕적인 일들을 저지런 후 인근 녹원 솔밭에서 시신에 석유를 뿌리고 불에 태워버립니다. 



완전 범죄를 위해 흔적을 지운 그들은 도주했는데 이후 이 사건의 범인이 홍선대원군과 조선의 군인이라고 주장합니다.

일본에서는 이들의 만행이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전원 무죄석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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