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 중 가장 위대했던 육전사령관 Top 10

역사적으로 보면 손에 꼽히는 육전사령관이 많습니다. 이미 지구인의 경지를 뛰어넘어 외계스러운 통찰력과 전투력으로 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이끈 주역들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역사적으로 수많은 전투에서 신의 능력을 자랑했던 사령관이 많지만 오늘은 전세계에서 지구인 중 가장 위대했던 육전사령관 Top 10입니다. 그럼 살펴 보겠습니다. 



10. 가르친링


티벳의 가장 위대한 전쟁영웅 가르친링입니다.

계속되는 당제국의 침략을 전투력이 약한 토번의 군사로 수차례 막아낸 티벳의 전쟁영웅입니다. 

승패가 무려 50전 50패의 불패의 장군이며, 유명한 일화로는 가르친링이 소년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부대를 이끌고 당시 백제 수도인 부여를 침략하고 유리했던 당시 소정방의 군대를 격파하였고,

추후에 정식 장군이 이후엔 고구려를 멸망시켰던 설인귀와 전쟁을 하여 그를 굴복시켰습니다. 

하지만 가르친링은 당시 왕권 강화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반역죄를 뒤집어 쓰고 그의 가문은 

대대적인 숙청을 당하는데 그는 결국 자신이 죽는 것이 자신의 토번을 살리는 것이라 생각하고 투신을 하게 됩니다. 

가르친링의 대표적인 전투로는 5만의 토번군으로 30만 당군을 격파했었던 소라한산 전투는

그의 전술도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는 전투입니다. 




9. 구스타프 2세 아돌프


1594~1632년, 구스타프 2세 아돌프는 스웨덴의 왕이면서 핀란드의 대공이었으며, 

북방의 사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는 특히 외국어에 능통했으며 당시 스웨덴의 군대는

너무나 약했었다. 기술이나 군대 지식이 없었고, 군대의 무장 또한 매우 열악했다.

그는 이후 무기를 제조하는 자국의 장인들의 세금을 면제해주었으며 유럽의 산업 노하우와 사업자들을

스웨덴으로 이주할 수 있게 하였고 이는 이후에 스웨덴의 산업과 군사의 기초를 만드는 계기를 만든 

장본인이였습니다. 그는 스웨덴을 1세기동안 유럽의 강대국으로 이끈다.

그리고 근대 군사접근전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전투 무기의 간소화와 경량화 등 전투에서 대포의 소구경화로 전투의 판도를 바꿔버립니다.

이후 그는 뤼첸 전투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8. 율리우스 카이사르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정략과 전투에 대한 천재적인 소질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임기응변의 대가라고 할 수 있으며 갈리아 총연합군의 수장 베르킨게토릭스와이 대전에서 

8만의 카이사르군이 26만의 갈리아군에게 포위 당하게 되었는데 그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서

전세를 역전시킵니다. 그리고 유명한 전투로 당시 지중해 해적을 완전히 토벌한 로마 최고의 장군이라는

폼페이우스와 전쟁인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자신의 군대보다 7배나 많은 기병을 보유했던 폼페이우스의 

군대에게 승리를 하게 됩니다. 



7. 한신


너무나도 유명한 중국의 명장인 한신입니다. 초나라를 무느뜨렸으며 한나라를 통일한 가장 

절대적인 공을 세운 한신은 중국 최고 지휘관으로 불리는 건한삼거로 통합니다. 

위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했던 한읍전투는 그의 뛰어난 지략으로 승리를 이끌고,

배수의 진으로 유명한 정형전투는 조나라의 20만 대군을 1만 정예병과 2만의 노인과 아녀자들을 

데리고 승리한 전투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조나라를 상대로 펼쳤던 살수대첩은 그의 뛰어난 

지략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전투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로는 한나라 건국 후 참수를 당하게 됩니다. 



6. 티무르


티무르 제국을 건국한 명장이며 인류역사상 최후의 유목민 정복자입니다. 

소지주의 아들로 태어나서 임관을 하게 되는데 이후 기병 60기로 적의 1000기병을 무찌르며

그의 대단한 활약은 시작됩니다. 

티무르의 전투를 보면 심리전과 그가 징키스칸의 휴예라고 자처했던 만큼 징기스칸과 

유사한 전략을 사용하였습니다. 전격전과 정보공작으로 인한 적군에게 항상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다양한 무기체계와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으로 그의 제국을 이루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5. 할리드 이븐 알 왈리드


조금은 생소한 분인데요. 이슬람 칼리프제국 시절의 장군으로 그의 별명으로는 

'신께서 뽑아든 검' 이라는 이슬람 세계의 최고의 장군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당시 이슬람 제국이 확대하는데 많은 공을 세우게 됩니다.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왜 세계에서 가장 위대했던 육전사령관으로 불리는지 알 수 있습니다. 

1만 5천의 병력으로 페르시아를 완전히 무력화시키고 동로마제국의 지리아 지배를 종식시켰으며

3개월 만에 당시 아라비아 반도를 제패했다고 보면 됩니다. 

그의 부대에는 기병이나 중기병도 없었고 전투력이 약한 경기병으로 페르시아와 동로마제국의 

중기병과 붕보병을 격파합니다. 이후 가장 유명했던 전투로 야르무크 전투에서 4만의 경보병과 

경기병으로 당시 최고의 중보병으로 유명했던 로마군 20만을 격파하게 됩니다. 



4. 한니발


희대의 전략가. 역사에서 수많은 지휘관들이 한니발의 작전을 응용합니다.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끌고간 세계 최고의 전략가입니다. 

다시 알프스 행군을 처음으로 해내며 로마 본진에 들어가 완전히 뒤흔들어버립니다. 

한니발은 2만 5천의 군사로 로마군 8만을 상대로 그의 뛰어난 전략으로 대승을 거둡니다.

그의 전술 '망치와 모루' 라는 포위전술은 이후 고대와중세 서양 전술의 교과서가 됩니다.



3.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제가 따로 설명을 드리지 않아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지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전략가입니다. 

당시 유럽의 모든 국가는 나폴레옹 이 한사람을 쫓아내기 위해 동맹을 하게 됩니다. 

그의 뛰어난 능력은 이미 잘 알고 계실 테고, 나폴레옹은 자신은 뛰어난 능력을 지녔지만 

그와 반대로 너무나 무능했던 그의 동생과 부관들의 배신, 건강 이상, 러시아 전쟁에서의 패배와 

스페인 전쟁의 부담으로 인해 결국에는 유럽의 연합군에게 패배하게 됩니다. 

여기서 또 유명한 일화가 하나있습니다. 패배후 유배를 갔지만 탈출하여 다시 군대를 모으게 됩니다. 

이때 2천의 군대로 파리에 재입성하여 전투를 하지만 다시 한 번 패배를 합니다. 



2. 알렉사드로스 대제


정복왕으로 유명한 그는 그의 스승 아리스토텔레스로 더욱 유명합니다. 

당시 최강국이었던 페르시아제국을 점령했으며 자신을 얕봤던 티벳를 아예 지구에서 지워버립니다. 

이집트를 지배했었고 인도의 북서부까지 점령하는 등 정복왕으로서 면모를 확실히 보여줍니다. 

페르시아군과의 전투에서는 4만의 병력으로 11만의 페르시아군을 상대로 다양한 전술을 시도합니다.



1. 수부타이


지구상 최고의 장군으로 몽골 제국의 최강 장군입니다. 

징기스칸의 가장 두터운 신임을 받았었고 당시 32개국 국가를 지도상에서 지워버렸는데

전투의 지우개라고 불러도 되겠습니다. 65번의 전투에서 모두 완승을 거두었으며,

그가 격파했던 지역들을 살펴보면 

중앙아시아의 수십개 국가와 이슬람 국가들, 러시아, 불가리아, 헝가리, 폴란드, 조지아, 아르메니아의

군대를 대파시킨 지구인 중 가장 위대한 육전사령관입니다.





제주도 4.3사건의 배경과 원인


오늘은 제주도 4.3사건에 대해서 글을 적어볼까 합니다 

1948년 4월3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으로 무력충동과 진압과정에서 있었던 제주도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입니다. 

이 당시에 희생된 주민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너무나 많은 무고한 주민들도 있었습니다. 

이념의 대립이 가져온 무서운 사건으로 항상 힘 없는 국민들이 희생을 당했던 역사입니다. 



제주도 4.3사건의 발단


독립전까지 제주도는 일본군의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그에 따른 일제의 부역자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일본이 패망하자 일본군은 철수를 하고 육지로 나갔던 주민 6만 여명이 다시 제주도로 들어오면서 

제주도는 극심한 취업난과 갑작스런 인구의 증가로 식량이 부족하고 전염병이 창궐하며 당시 식량정책 또한 

실패로 돌아가면서 민심은 갈수록 미군정에 반감을 가지게 됩니다. 



주민들은 독립에 대한 기대가 컸지만 미군이 들어와서 치안을 담당할 경찰을 해방 전 일제시대 때 일본에 부역했던 

경찰들을 다시 고용했고 이들 중에는 이러한 지위를 이용하여 갖가지 부정과 부패를 저질렀고 주민들은 갈수록 불만이 높아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947년 "3.1절 발포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제주도 4.3사건이 시작되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3.1절 발포사건은 당시 좌파였던 민주주의민족전선이 기념 집회를 열었는데 가두행진을 할 즈음 구경하던 어린아이가 경찰이 탄 말에 

치여 3.1절 발포사건의 발단이 됩니다. 



경찰이 탄 말이 아이를 치고 그냥 가려고 하자 이를 본 군중들은 경찰에게 돌을 던지면 쫓아갔는데....


이 시기에는 주민들이 경찰에 대한 불만이 상당히 높았던 시기입니다. 쫓아오던 주민들을 본 경찰들은 주민들을 

경찰서를 습격하는 단체로 오인하여 비무장한 군중들에게 총을 발포하여 6명 사망, 6명 중상을 입습니다. 


이 사태를 미군정은 수습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시위대의 경찰서 습격사건"으로 매도하고 민주주의민족전선 간부와

학생들을 강제 연행하는데 이에 시민들은 경찰에 대한 반감이 더욱 높아졌고 .. 이를 놓치지 않은 남로당은 주민들을 

부추겨 반경활동을 더욱 거세게 진행합니다. 


1948년 4월 3일 

350여 명의 무장대가 제주도 내 12개 경찰서를 습격하는 사건을 계기로 6개월 동안 이와 비슷한 유혈사태가 계속되었고,

이승만 정부는 제주도의 문제를 정부에 대한 반정부 시위로 규정하고 1948년 11월 21일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게 됩니다. 


이렇게 강경진압작전이 계속되자 진압대에 의한 주민 사망자와 무장대에 의한 주민의 사망자 수가 계속해서 늘어갔으며

그 사망자 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숫자였습니다. 

진압대에 의한 주민은 14000여 명, 무장대에 의한 주민 사망자 수는 1100여 명에 이릅니다. 

사망자 중에는 남녀노소, 임산부까지 할 거 없이 잔인하게 살해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6.25전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하니... 당시 제주도는 그야말로 지옥이라고 할 수 있었겠습니다.



※ 제주도 4.3사건을 요약해보면..

"서로 다른 이념적 갈등이 극대화 되어 일어난 사건"으로 저는 생각합니다. 


해방 후, 미군정의 친일파 등용과 일제시대 일제의 부역자 경찰출신들을 미군정 경찰로 등용합니다. 

밀수품 단속을 빙자한 모리행위, 6만 여명에 이르는 귀한인구의 실직, 경제난, 생필품 부족, 전염병 등 

군정 경찰, 서북 청년단체와 극우 단체들의 횡포에 대한 제주도민들의 반감 등이 복합적으로 일어난 사건으로 봅니다. 


요약,

1. 1948년 3울 1일, 경찰은 5.10선거를 반대하는 제주도민들에게 총을 쏜다.

2. 미군정은 이 발포사건을 정당방위로 주장하며 제주도민들을 폭도로 지정.

3. 이후 1948년 4월 3일, 350여 명의 무장대가 제주도 내 12개 경찰서를 습격하고 6개월간 유혈사태가이어짐.

4. 1948년 11월 21일 이승만 정부의 제주도 계엄령 선포. (반항하면 총살)

5. 계엄령에 반대하던 주민들이 산으로 들어가 무장대를 조직하여 대항함.


-무장대의 주장-

경찰과 반공청년단체의 탄압에 대한 저항이다. 

남한 단독선거 반대와 조국통일독립을 주장.






무인 전투 로봇 THeMIS ADDER


무인 전투 로봇은 이제 만화나 영화에서만 상상할 수 있는 체계가 아닙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이러한 전투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데 하늘의 무인기에 이어서 지상전에서도 병사들을 지원하거나 병사들을 대신해서 전쟁을 하는 날이 머지 않은 미래에 존재할 거 같습니다. 

얼마전 싱가포르에서는 Milrem와 ST Kinetics 사는 

무인 차량(UGB) 형태의 THeMIS ADDER의 첫 야외테스트를 실시하였습니다.

 


이 테스트의 목적은 전장에서 지상군의 화력을 지원하거나 직접 병사들을 대신해서 전장에 투입되어 자율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중인 무인 전투 로봇 THeMIS ADDER입니다. 외관 모습은 작은 탱크나 장갑차처럼 보입니다. 




THeMIS ADDER의 목적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부득이하게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밖에 없는 전장에서 

무인 차량에 기관총을 장착한채 작전을 직접 수행하고 아군의 인적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임무를 지원하며

가까운 미래에는 군인대신 로봇으로 대체하기 위한 지속적인 실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양사는 아직 완벽한 자율주행은 가능한 상태가 아니고 머지않아 완벽하게 자율주행을 하며 

임무를 완수 할 수 있도록 연구를 계속 할 것입니다. 지금은 무인 전투 로봇의 안정성과 원격으로 무장한 무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하는데 집중하였고 이 부분에서는 이번 야외테스트로 인해서 

상당한 발전이 있었음을 증명했습니다. 

참고-http://newatlas.com/themis-adder-weaponized-ugv-live-tests/46749/




전세계적으로 무인 전투 장비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는 가운데 이번 테스트는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후 기술 개발이 더 발전한다면 전장에서 사람 VS 사람이 아닌 로봇 VS 로붓의 전쟁을 할 날도 머지 않은 거 같습니다. 



THeMIS ADDER의 제원


무게 750~1000kg

속도 24~35km/h

포탑 360도 회전




B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Top 10


영국의 공영방송 BBC가 발표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 중에서 뽑은 Top 10입니다. 단순한 영화리스트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꽤 유명한 영화 평론가들 177인이 참옇서 100편을 선택한 우수한 영화리스트입니다. 시간이 많으면 1위부터 100까지 모두 소개해드리고 싶지만 어마어마한 자료로 인해 오늘은 100편 중에서 상위 10편만 간략히 설명드리고 100위 리스트는 포스트 맨 아래에 작성해서 올려드리겠습니다.

틈틈이 시간이 날 때 찾아서 감상하시면 좋을 거 같네요^^



10.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 (Joel and Ethan Coen, 2007)


인생에 단 한 번!! 당신에게 찾아온 기회!

배경은 텍사스, 사냥을 하던 모스는 우연히 시체로 둘러싸인 현장에서 총상을 입고 죽어가는 한 남자의 돈가방을 발견하게 된다.

죽음에 직면한 한 채 갈증을 호소하는 그 남자와 240만 달러의 현금이 든 가방 사이에서 모스는 돈가방을 선택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온 순간부터 총상을 입은채 적어가던 남자에 대한 가책으로 모스는 다시 새벽에 현장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모스를 기다리는 건 자신을 노리는 총탄과 자신의 뒤를 쫓는 추격자들.


행운에는 댓가가 따른다.. 피의 댓가가..자신에게 찾아온 행운과 이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모스.

그리고 빼앗긴 것을 찾으려는 청부업자 안톤 쉬거. 이들을 추격하는 보안관 벨.



9.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A Separation (Asghar Farhadi, 2011)


이민에 대한 문제로 서로 의견이 달라 별거까지 하게 된 씨민과 나데르 부부.

나데르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간병을 위해 간병인 라지에르 고용하게 된다. 하지만 간병인 라지에가 잠시 집을 비워둔 사이 

치매에 걸린 아버지가 위험에 빠지게 되는데 이에 화가난 나데르는 라지에를 해고하고,,,

이후 시간이 지난 뒤, 라지에는 뱃속의 아이를 유산하고 나데르는 살인죄로 기소되고 되고 마는데...

이들에게는 그날 무슨 일이 있었나?



8. 하나 그리고 둘 

Yi Yi: A One and a Two (Edward Yang, 2000)


아제는 사귀고 있던 여자가 임신을 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런데 결혼식장에는 그의 또 다른 여자가 찾아오게 되는데..

그리고 NJ는 피로연장에서 첫 사랑 셰리와 30년만에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녀는 NJ를 원망하고 NJ는 혼란스러워 한다. NJ의 아내 밍밍은 집안 살림과 회사 일에 지쳐 잠시 집을 떠나 요양소로 향하고

NJ는 일본으로 출장을 가게 되는데 거기에서 다시 셰리와 만나는 NJ.



7.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 (Terrence Malick, 2011)


"아버지, 그 시절 당신이 미웠습니다."


건축가 잭, 그는 항상 같은 꿈을 꾸며 잠에서 깨어난다. 

19살 때 죽은 어린 동생.

배경은 미국의 텍사스. 오브라이언과 아내, 그리고 세 아들. 이들은 아주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자애로운 어머니와는 달리 너무나 엄격한 아버지 오브라이언은 아이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다. 

큰아들 잭은 항상 권위적인 아버지와 늘 부딛히게 되고 이들 사이에서는 미움이 자라게 된다. 



6.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 (Michel Gondry, 2004)


아픈 기억만을 지워주는 라쿠나시. 

조엘은 헤어진 연인 클레멘타인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라쿠나시를 찾아간다. 

하지만 기억이 지워질수록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과 행복의 순간들, 추억들은 지우기 싫어지는데..

이렇게 사랑은 다시 기억된다.



5. 보이후드 

Boyhood (Richard Linklater, 2014)


소년은 어떻게 어른이 될까?

수많은 기억 조각들로 이뤄진 단 하나의 특별한 이야기!

여섯 살 메이슨 주니어, 그리고 누나 사만다, 싱글맘 올리비아는 텍사스에 살고 있다. 

아빠는 일주일에 한 번 누나와 메이슨을 만나러 집으로 온다. 친구처럼 함께 해주는 아빠,가 좋지만 함께 할 수 없는 현실.

아빠가 없는 메이슨, 엄마는 항상 바쁘고 이사를 자주 다녀야 한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해 가는 메이슨..

여섯 살 메이슨의 세상은 어떨까?



4. 센과 이치로의 행방불명

Spirited Away (Hayao Miyazaki, 2001)


이사 가던 날, 수상한 터널을 지나자 인간에게는 금지된 신들의 세계로 간 치히로.

신들의 음식을 먹은 치히로의 부모님은 돼지로 변하는데..


겁에 질린 치히로에게 다가온 정체불명의 소년 하쿠. 치히로의 인간세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벌이는 상상을 초월하는 미션.



3.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 (Paul Thomas Anderson, 2007)


일확천금의 꿈.

지독한 알콜 중독자에 홀로 아들을 키우며 황무지 사막 한가운데서 금을 캐며 살아가는 광부.

어느날 그는 석유 유전을 발굴하고 막대한 돈을 만지는데 석유 개발과 함께 물질에 대한 탐욕과 폭력으로 그의 꿈은 변하는데...



2.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Wong Kar-wai, 2000)


1962년의 홍콩.

상하이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에 두 가구가 이사를 온다. 

무역회사의 비서로 일하는 리첸과 남편,

직역 신문의 데스크로 일하는 차우와 그의 아내.


리첸과 차우는 바쁜 배우자들 때문에 항상 혼자인 시간이 많은데 이들은 우연히 자주 마주치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느끼고 가까워진다. 

사랑해서는 안 될 사이. 하지만 차우는 그런 리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데...



1. 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ive (David Lynch, 2001)


산타모니카로 향하는 LA의 도로 "멀홀랜드 드라이브"

스타의 꿈을 안고 LA에 온 베티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일어난 자동차 사고로 기억을 상실한 리타를 만나 

그녀의 기억을 되찾을 수 있게 도와준다. 이렇게 베티의 도움으로 리타는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한 단서를 찾던 중.

카페 여종업원의 명찰에서 다이앤이란 이름을 보는 순간 무엇인가 떠올린다. 

다이앤의 집을 찾아간 순간... 그들이 예상 못했던 끔찍한 비밀이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까지 BBC가 선정한 21세기 위대한 영화 Top 10입니다. 

제가 일부러 찾아봤던 영화도 보이고 오래전부터 10번 이상 봤던 영화도 보이네요 ^^

그리고 지금부터는 위대한 영화 100편을 올려드리겠습니다. 


102. 토니 어드만 Toni Erdmann(Maren Ade, 2016)
101.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Darren Aronofsky, 2000)
100. 카를로스 Carlos(Olivier Assayas, 2010)
99.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The Gleaners and I(Agnes Varda, 2000)
98. 텐 Ten(Abbas Kiarostami, 2002)
97. 백인의 것 White Material(Claire Denis, 2009)
96. 니모를 찾아서 Finding Nemo(Andrew Stanton, 2003)
95. 문라이즈 킹덤 Moonrise Kingdom(Wes Anderson, 2012)
94. 렛 미 인 Let the Right One In(Tomas Alfredson, 2008)
93. 라따뚜이 Ratatouille(Brad Bird, 2007)
92. 비겁한 로버트 포드의 제시 제임스 암살 The Assassination of Jesse James by the Coward Robert Ford(Andrew Dominik, 2007)
91.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 The Secret in Their Eyes(Juan Jose Campanella, 2009)
90. 피아니스트 The Pianist(Roman Polanski, 2002)
89. 얼굴없는 여자 The Headless Woman(Lucrecia Martel, 2008)
88. 스포트라이트 Spotlight(Tom McCarthy, 2015)
87. 아멜리에 Amelie(Jean-Pierre Jeunet, 2001)
86. 파 프롬 헤븐 Far From Heaven(Todd Haynes, 2002)
85. 예언자 A Prophet(Jacques Audiard, 2009)
84. 그녀 Her(Spike Jonze, 2013)
83. 에이 아이 A.I. Artificial Intelligence(Steven Spielberg, 2001)
82. 시리어스 맨 A Serious Man(Joel and Ethan Coen, 2009)
81. 셰임 Shame(Steve McQueen, 2011)
80. 리턴 The Return(Andrey Zvyagintsev, 2003)
79. 올모스트 페이머스 Almost Famous(Cameron Crowe, 2000)
78.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The Wolf of Wall Street(Martin Scorsese, 2013)
77. 잠수종과 나비 The Diving Bell and the Butterfly(Julian Schnabel, 2007)
76. 도그빌 Dogville(Lars von Trier, 2003)
75. 인히어런트 바이스 Inherent Vice(Paul Thomas Anderson, 2014)
74. 스프링 브레이커스 Spring Breakers(Harmony Korine, 2012)
73. 비포 선셋 Before Sunset(Richard Linklater, 2004)
72.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Jim Jarmusch, 2013)
71. 타부 Tabu(Miguel Gomes, 2012)
70.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Stories We Tell(Sarah Polley, 2012)
69. 캐롤 Carol(Todd Haynes, 2015)
68. 로얄 테넌바움 The Royal Tenenbaums(Wes Anderson, 2001)
67. 허트 로커 The Hurt Locker(Kathryn Bigelow, 2008)
66.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Spring, Summer, Fall, Winter…and Spring(Kim Ki-duk, 2003)
65. 피쉬 탱크 Fish Tank(Andrea Arnold, 2009)
64. 그레이트 뷰티 The Great Beauty(Paolo Sorrentino, 2013)
63. 토리노의 말 The Turin Horse(Bela Tarr and Agnes Hranitzky, 2011)
62.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Inglourious Basterds(Quentin Tarantino, 2009)
61. 언더 더 스킨 Under the Skin(Jonathan Glazer, 2013)
60. 징후와 세기 Syndromes and a Century(Apichatpong Weerasethakul, 2006)
59. 폭력의 역사 A History of Violence(David Cronenberg, 2005)
58. 물라데 Moolaade(Ousmane Sembene, 2004)
57. 제로 다크 서티 Zero Dark Thirty(Kathryn Bigelow, 2012)
56.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 Werckmeister Harmonies(Bela Tarr, director; Agnes Hranitzky, co-director, 2000)
55. 이다 Ida(Pawel Pawlikowski, 2013)
54.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나톨리아 Once Upon a Time in Anatolia(Nuri Bilge Ceylan, 2011)
53. 물랑 루즈 Moulin Rouge(Baz Luhrmann, 2001)
52. 열대병 Tropical Malady(Apichatpong Weerasethakul, 2004)
51. 인셉션 Inception(Christopher Nolan, 2010)
50. 자객 섭은낭 The Assassin(Hou Hsiao-hsien, 2015)
49. 언어와의 작별 Goodbye to Language(Jean-Luc Godard, 2014)
48. 브루클린 Brooklyn(John Crowley, 2015)
47. 리바이어던 Leviathan(Andrey Zvyagintsev, 2014)
46. 사랑을 카피하다 Certified Copy(Abbas Kiarostami, 2010)
45. 가장 따뜻한 색, 블루 Blue Is the Warmest Color(Abdellatif Kechiche, 2013)
44. 노예 12년 12 Years a Slave(Steve McQueen, 2013)
43. 멜랑콜리아 Melancholia(Lars von Trier, 2011)
42. 아무르 Amour(Michael Haneke, 2012)
41. 인사이드 아웃 Inside Out(Pete Docter, 2015)
40. 브로크백 마운틴 Brokeback Mountain(Ang Lee, 2005)
39. 뉴 월드 The New World(Terrence Malick, 2005)
38. 시티 오브 갓 City of God(Fernando Meirelles and Katia Lund, 2002)
37. 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Apichatpong Weerasethakul, 2010)
36. 팀북투 Timbuktu(Abderrahmane Sissako, 2014)
35. 와호장룡 Crouching Tiger, Hidden Dragon(Ang Lee, 2000)
34. 사울의 아들 Son of Saul(Laszlo Nemes, 2015)
33. 다크 나이트 The Dark Knight(Christopher Nolan, 2008)
32. 타인의 삶 The Lives of Others(Florian Henckel von Donnersmarck, 2006)
31. 마가렛 Margaret(Kenneth Lonergan, 2011)
30. 올드 보이 Oldboy(Park Chan-wook, 2003)
29. 월-E WALL-E(Andrew Stanton, 2008)
28. 그녀에게 Talk to Her(Pedro Almodovar, 2002)
27.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David Fincher, 2010)
26. 25시 25th Hour(Spike Lee, 2002)
25. 메멘토 Memento(Christopher Nolan, 2000)
24. 마스터 The Master(Paul Thomas Anderson, 2012)
23. 히든 Cache(Michael Haneke, 2005)
22.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Lost in Translation(Sofia Coppola, 2003)
21.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Wes Anderson, 2014)
20. 시네도키, 뉴욕 Synecdoche, New York(Charlie Kaufman, 2008)
19.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Mad Max: Fury Road(George Miller, 2015)
18. 하얀 리본 The White Ribbon(Michael Haneke, 2009)
17.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Pan's Labyrinth(Guillermo Del Toro, 2006)
16. 홀리 모터스 Holy Motors(Leos Carax, 2012)
15. 4개월, 3주... 그리고 2일 4 Months, 3 Weeks and 2 Days(Cristian Mungiu, 2007)
14. 액트 오브 킬링 The Act of Killing(Joshua Oppenheimer, 2012)
13. 칠드런 오브 맨 Children of Men(Alfonso Cuaron, 2006)
12. 조디악 Zodiac(David Fincher, 2007)
11. 인사이드 르윈 Inside Llewyn Davis(Joel and Ethan Coen, 2013)
10.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No Country for Old Men(Joel and Ethan Coen, 2007)
9.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A Separation(Asghar Farhadi, 2011)
8. 하나 그리고 둘 Yi Yi: A One and a Two(Edward Yang, 2000)
7. 트리 오브 라이프 The Tree of Life(Terrence Malick, 2011)
6. 이터널 선샤인 Eternal Sunshine of the Spotless Mind(Michel Gondry, 2004)
5. 보이후드 Boyhood(Richard Linklater, 2014)
4.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Spirited Away(Hayao Miyazaki, 2001)
3. 데어 윌 비 블러드 There Will Be Blood(Paul Thomas Anderson, 2007)
2.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Wong Kar-wai, 2000)
1. 멀홀랜드 드라이브 Mulholland Drive(David Lynch, 2001)





419혁명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


최근들어 역사를 돌이켜 보면 저도 모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개인 한 사람의 욕심과 부역자들에 의해서 너무나 많은 무고한 국민들이 희생을 강요당하는구나..오늘은 1960년 4월19일에 있었던 419혁명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6.25전쟁으로 인해 극도로 나라가 불안정할 때 당시 자유당 이승만 총재는 반공을 내세워 자신의 독재정치를 강화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곧 수많은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게 되는데 이때부터 이미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간첩"이라고 내세우면 뭐든지 되는 시대였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2016년 요즘 정치도 마찬가지처럼 보입니다. 간첩조작..)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에 앞서 각종 부정과 부패로 대한민국 국민의 대부분의 민심을 잃었던 자유당은 이승만과 이기붕을 대통령과 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해서 부정선거를 계획하게 됩니다. 이 부정선거로 인해서 전국에서 많은 국민들이 각 시도에서 부정선거를 비판하는 시위를 하게 됩니다. 



4할 사전 투표와 선거박스 바꿔치기, 선거 참관인을 축출시키는 등.. 부정이 극에 달합니다 

이에 선거 당일 마산의 민주당 간부들은 자유당의 4할 사전 투표는 부정이라며 항의를 하며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의 당선의 무효를 주장하게 됩니다. 


이에 마산 시민들까지 이 시위에 합세하면서 당시 선거 개표장 부근에서 다시 시위를 이어가자 시위가 한참 격해질 무렵, 갑자기 일어난 정전, 그리고 정막을 깨는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바로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서 경찰이 총을 발포하기 시작해서 시위에 참가했던 일반시민 8명이 경찰에 의해서 무참히 살해되고 1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200여 시민들이 경찰에 의해서 연행되면서 시위는 마무리됩니다.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 합심해야 할 때, 개인의 욕심에 눈이 먼 지도자가 이렇게 국민들의 가슴과 나라의 역사에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이 시위가 잠잠해지고 3일이 지난 뒤 신문 지면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립니다.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기붕 당선!!




당시에 자유당의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이었는지 이 대목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지금 세대에서는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어이가 없는 사건입니다. 



이렇게 이승만과 이기붕이 대통령과 부통령에 당선된 후,

4울 11일 마산의 어느 앞바다에서는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로 바다에 던져진 시위 학생인 김주열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이 사건은 이후 경찰에 의한 소행으로 밝혀지자 2만여 명의 신민들은 경ㅊ라서와 시청에 난입하여 격력하게 시위를 하는데

이를 계기로 경찰은 다시 무고한 시민들을 향해서 무차별 발포!!




이틀이 지나 거리로 마산의 모든 남녀고등학생들이 정권 타도 시위에 나오자 이승만 정부는 급히 특별담화문을 발표하게 됩니다. 


"이 난동에는 뒤에 공산당이 있다는 혐의도 있어서 지금 조사 중이다."


(최근까지도 이 멘트는 많이 들어본 듯 합니다....그렇게 생각하시면 "공감"에 한표를)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이기붕의 부정선거에 대한 시위운동은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운동으로 자연스럽게 발전하며

고려대학교에서는 4.18 선언문을 발표로 기성세대의 자성과 마산사건의 책임자를 즉시 처단하라고 외쳤고 

서울대학교 문리대 학생회 또한 4.19 선언을 발표하며 1960년 4월 19일에 이르러 이승만 독재정권에 대한 운동은 가장 절정에 다다르게 됩니다.


이후 시위대 10만 명 가량이 세종로와 태평로에 모여 경무대로 행진을 하면서 격렬해지자, 경찰은 다시 한 번 시위대를 향해서 총격을 가하는 사건이 일어났으며 이 시위에 모였던 시위대와 전국에서 일어났던 시위에서 200여 명 가까운 무고한 시민들이 소중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후에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를 인정했으며 자신의 부정에 대해서 일부 대책들을 제시했지만 지식층이었던 전국 대학에서 모인 교수들 285명은 부패의 온상인 이승만 정권은 물러나야 한다고 시국선언을 하기에 이르고 희생된 학생들의 피를 보상하라며 다시 한 번 전국적으로 이승만 정권 타도 시위가 이어집니다. 

(최근의 사태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이렇게 걷잡을 수 없이 대규모 시위로 번지자 결국 이승만 대통령은 대통령 하야 성명을 라디오를 통해서 발표합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 하야 성명의 일부입니다> - 1960녀 4월 26일


"나는 무엇이든지 국민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민의를 따라서 하고자 할 것이며 또 그렇게 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국민이 원한다면 대통령직을 사임하겠다."


이로써 이승만 대통령은 즉시 하야하게 되고 만장일치로 내각책임제 개헌을 하게 됩니다. 

내각책임제 개헌안이 통과하고 대한민국은 최초의 지방선거를 실시하는 등 민주주의로 발전하는 듯 했으나


얼마되지 않은 1961년 5울 16일,, 박정희 대통령이 주축이 되어 군사 정변을 일으키게 됩니다. 

이것이 516쿠테타...



<구테타에 성공한 직후 박정희 대통령과 군인들>





지구 안의 외계인 기지라고 생각되는 7곳


오랜시간 동안 외계인은 가장 큰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실제로 UFO는 사람들의 눈에 목격된 사례들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중에서 지구의 일부 지역에서는 UFO 기지라고 생각되는 곳들이 있는데 이러한 곳은 미확인 비행체들이 일반인들에게 자주 목격되는 지역이기 때문에 외계인 기지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기지에서 근무를 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우주의 어느 행성이 아니라 실제 지구의 안에 기지를 두고 인간과 함께 공존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왜 모습을 확실하게 나타내지 않는지 궁금하네요^^



UFO에 관한 여러가지 증거 자료들을 찾아보면 외계인들은 이미 지구의 깊숙한 곳에서 인간들과 같이 공존하고 있다. 

그동안 알고 있듯이 외계인들은 다른 행성에서 지구를 찾아 오는 것이 아니라 오래 전부터 지구의 땅속 안에서 

우리와 함께 살면서 지구의 인간들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설이 더 신빙성이 있다고 한다. 


그럼 왜 외계인들은 인간과 직접 접촉을 하지않고 관찰만 하는 것일까?

혹자는 인간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외계인들이 접촉을 꺼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 어떤 과학자는 인간들을 

외계인이 창조하였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지구에 있으면서 창조한 인간들을 관찰하고 있다는 설도 있다. 

외계인들이 인반인들과 접촉을 안 하고 있지만 '그레이'와 '랩탈리언' 등의 외계인들은 미국 정부와 함께 일을 한다는 

설도 있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략할 마음이 있었더라면 우리보다 훨씬 진보된 기술력으로 오래 전에 우리를 정복했을 것이 맞다.

그럼 지구의 외계인 기지라고 추측할 수 있는 곳을 살펴보겠다.

 


1. 인도의 콩카 라파스


1962년도에 인도와 중국이 영통 분쟁으로 충돌했었던 지역입니다. 

현재는 이 지역 콩카 라파스는 완충 지대로 양국간이 마주하고 있으면서 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UFO와 관련된 

사건들에 대해서 서로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이러한 UFO에 관한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알고 있기에 공공연한 사실로 인정하고 그냥 지켜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인도의 콩카 라파스는 세계에서 사람들이 근접하기 어려운 지역 중에 하나로 양국이 순찰조차도 하지 않는 지역입니다. 

이 곳은 유라시아 판과 인도 판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지역으로 지각의 깊이가 다른 지역보다 두 배나 되는 세계에서 아주 

드문 지역이기도 합니다. 지각이 다른 곳 보다 두껍기 때문에 땅 속 깊은 곳에 외계인들의 기지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지역의 중국 뿐만아니라 인도의 학생들 수업에 들어가보면 아이들의 미술시간에 그림에 대다수가 산에서 나오거나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접시들의 그림입니다. 아래 위 사진은 땅 속에서 비행체가 나오는 곳입구와 호수에서 출입구가 

생기는 모습이 구글 사진에 찍혀있습니다. 





2. 미국 콜로라도 주의 샌 루이스 밸리


이 지역은 우리나라 경기도 면적의 두 배 정도 되고 해발 2,334미터의 고원 분지입니다. 

높은 지역이기 때문에 날씨가 서늘하기에 여름이면 캠핑족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지역은 방목하는 소들이 갑자기 사라지거나 살해되는 사건들이 자주 발생하는데 죽은 동물들의 사체를 보면

장기나 혈액 등이 현대의 과학으로는 구현하기 불가능할 정도의 기술로 잘려진 사체가 지금까지도 계속 확인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지역 산 위에는 UFO가 출입하는 입구가 있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발견되고 있는 소나 양의 사체는 피 한 방울 없이 깨끗한 것이 사체들의 특징입니다. 

육안으로 봐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3. 폴랜드 Wenceslas Mine


오래전에 추락한 것으로 UFO를 2차 대전중 나치 독일에 의해서 발견된 후 이 소금 광산 전체를 나치 비밀 실험기지로 만들었습니다. 

이 비밀 실험 기지 안에서 외계 기술을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웜 홀'을 여는 장치인 '나치 Bell'과 나치 UFO가 개발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치 Bell에 관해서는 지금까지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미국으로 운반이 되었다는 설이 있고, 하나는 나치의 잔당들이 남미의 어는 국가로 옮겼다는 설이 있습니다. 





나치의 비행접시 설계도





4. Dulce Base, 미국 뉴멕시코주


Area 51과 더불어 그레이 외계인과 랩탈리언들이 인간들과 함께 다양한 생체실험과 외계 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곳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이 기지는 주변에 인구가 3000명 정도 되며 지하에는 주택과 각종 건물과 시설들이 수 킬로미터에 걸쳐 있고 

지하에서 모든 것을 자급 자족할 수 있다고 합니다. 






5. Porm Anomalous Zone 러시아


아주 소수의 인구만 거주하고 있는 러시아의 작은 마을입니다. 

1989년부터 이 지역은 비행접시가 자주 출몰하여 셰계에서도 유명해진 곳입니다. 

특징으로는 알 수 없는 에너지장과 신비한 불빛, 일반인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비행접시 출몰은 이미 이 지역의 

일상이 되어버린지 오래입니다. 






6. Tonopah 네바다 애리조나 


외계인들이 인간들과 다양한 실험을 하는 곳으로 추측되고 있는 네바다 주의 Area 51로 부터 113킬로미터 떨어진 

지역으로 마을이 네바다 주와 애리조나 주의 경계지역에 있습니다. 


이 지역 주민들이 목격한 UFO는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더욱 의문스러운 것은 

어느날 미국의 공군 전투기들이 미확인 비행체들을 호위하면서 비행하는 장면들이 목격되어 이슈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지역에는 3.3 기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 원자력 발전소가 있는데 마치 UFO를 빨아들이는 듯한 사진이 

찍히기도 했습니다. 





7. S4 Facilit,네바다


이 지역은 Area 51로부터 겨우 32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지하 비밀 기지에서 일을 했다고 주장하는 '밥 라자'가 

비밀을 폭로하면서 부터 외계인들이 거주하고 있는 곳이라고 추측하게 된 곳입니다. 



'밥 라자'의 주장을 보면 이 곳에서 외계인들의 뛰어난 기술을 적용한 미국 비행접시가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s-4도, Area 51와 마찬가지로 일반인들의 접근이 철저하게 통제된 곳이여서 외계인 기지라고 더욱 의심이 가는 곳입니다. 




부마항쟁 .유신정권에 대항하다


국정농단을 일으킨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날짜로 탄핵이 되었습니다. 

최순실과 그의 부역자들에 의해서 이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적인 부분에서 큰 혼란이 있었고

국민들 마음에도 큰 상처가 생겼습니다. 오늘 이것을 계기로 해서 대한민국이 더 발전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은 과거 정권의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부마항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부마항쟁의 배경

부마항쟁은 1979년 10월16일, 부산에서 학생들에 의해서 일어난 유신 정권에 대한 민주화 항쟁입니다. 

처음에는 학생들에 의해서 시작이 되었지만 당시 이러한 반유신 정권에 대한 시위는 시민들에게도 호응을 얻어

대규모 반독재 민주 항쟁이 되었습니다. 


당시 부산 지역에서는 10월 16일부터 18일까지 항쟁이 지속되다가 정부의 계엄령으로 계엄군에 의해서 진압이 되었으며,

마산으로 번진 항쟁은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이어졌지만 정부의 위수령 발령으로 군대가 주둔하면서 학생과 시민들의 

민중항쟁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 위수령

군병력의 주둔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지역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치안과 수비,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2. 부마항쟁의 원인


가장 큰 원인으로는 당시 정치적으로 봤을 때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를 들 수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은 계속적인 정권 유지를 위해 유신 헌법을 내세우고 1인 독재체제를 유지합니다. 이것에 반대 또는 비판하는 

분위기가 일어나고 경제적으로도 이미 실패한 정책으로 국민의 반감을 사게 됩니다. 

이에 유신 체제를 반대하는 정치가와 학생들, 시민들을 "긴급조치"의 미명하에 계속적인 탄압을 하게 됩니다.


*긴급조치란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제정한 유신헌법 53조를 바탕으로 1~9호까지 발령됐다.

박정희 정권은 법률적 효력을 부여한 긴급조치를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정지시키고 군사독재를 강화했다. 

1974년 1월 8일 선포된 긴급조치 1호는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비방하는 행위와 이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타인에게 알리는 언동을 금지했다. 

긴급조치 2호는 깁급조치 위반 사건을 일반법원이 아닌 군법회의에서 재판하도록 했다. 

1974년 이후 긴급조치 1.3.4.9호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람만 589개 사건에 140명에 이른다. 

9호까지 발동된 긴급조치는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 전대통령이 사망하고 신군부의 주도로 1980년 10월27일 

헌법이 개정되면서 폐지됐다. [출처-다음백과사전]



당시 한국 사회에서는 "헌법상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한 유신헌법의 개정에 대한 저항운동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일어납니다. 

하지만 유신정부는 이러한 민주주의 우동을 강력하게 탄압하게 되는데

대통령이 발동한 "긴급조치"라는 구호 아래 국민과 정치가, 학생들의 인권을 박탈, 억압합니다. 



다음으로 경제적 측면에서 당시의 상황을 바라보면 중화학 공업 정책은 세계적인 불황과 함께 무리한 투자와 정책으로

이미 경제는 심각한 상태에 빠진 모습입니다. 

부마항쟁은 이러한 정치, 경제, 사회적 요인에 의해서 부산의 부산대학교의 학생들 시위로 시작하게 됩니다. 

시위가 급격하게 확대됨으로 인해서 당시 정부에서는 부산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공수부대를 투입합니다. 

탱크와 장갑차, 그리고 시내에서는 공수부대가 착검까지 하는 상황으로 시민들이 도로변으로 한 발짝이라고 나오게 되면

개머리판과 곤봉으로 사정없이 구타하여 당시 머리부분을 다친 시민들의 수가 1000여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무죄한 시민들과 학생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에 다쳤을까요?


이렇게 부산 지역은 계엄군에 의해서 10월 18일 항쟁이 진압되었고 마산으로 번진 항쟁은 18일 부터 20일까지 

경남대학교 학생들에 의해서 격렬하게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유신 정부는 마산에 

*위수령을 발동하고 다시 군대에 의해 시민과 학생들의 민주항쟁을 강제 진압하게 됩니다. 



이렇게 부마항쟁은 끝이나게 되는데 결과적으로는 유신 독재정권의 막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유신 정권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학생과 시민들의 힘을 받아 이루어졌고 국민의 염원이 표출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로써 부마항쟁은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가 10.26 정변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어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남은 린스 이제 버리지마세요. 린스 사용법 


안녕하세요^^ 찰랑찰랑 한 머릿결을 위해서 머리를 감고 린스를 하잖아요?

하루에 한 번씩 머리를 감으면 샴푸뿐만이 아니라 린스도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린스를 거의 모두 사용하면 아무리 눌러도 잘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흔들어 보면 조금 남아있는데....

많은 분들이 귀차니즘이 발동해서 그냥 재활용통에 버리시는데 


남은 린스를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생활 팁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버리지 마세요^^



린스통에 조금 남아있는 린스 또는 오랫동안 사용 않고 조금 남아있는 린스를 어떻게 재활용하는지 살펴봅시다!!




1. 청소할 때 사용하세요


생활 팁을 많이 알고 있는 분들은 남은 린스가 얼마나 유용하게 사용되는지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린스는 세정력이 우수해서 집안에서 청소할 때 정말 잘 사용되는 아이템입니다. 

싱크대나 화장실을 청소할 때도 너무나 잘 사용되고 지저분한 현관 입구의 바닥을 청소할 때 사용하시면 대박입니다.


● 사용법


따뜻한 물에 린스를 조금 붓고 찬물과 섞어서 잘 흔든 다음에 뿌려주시면서 청소하시면 놀라운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2. 유리/거울 청소할 때 사용하세요


유리 청소해보신 분들은 압니다. 아무리 닦아도 닦아도 얼룩이 남는다는 거.

힘들게 얼룩을 지워도 다시 새로운 얼룩이 남게 됩니다. 팔이 정말 남아나지 않죠 ㅜ.ㅜ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유리세정제 잘못 사용했다가는 괜히 겁부터 나고 이럴 때는 모험을 하지 마시고

남은 린스를 재활용하시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 사용법


젖은 걸레에 린스를 조금 붓고 더러운 유리나 거울을 살살 닦아주시면 정말 깨끗하고 반짝반짝하게 닦입니다.




3. 정전기 방지할 때 사용하세요.


건조한 겨울이 되면 정전기가 많이 일어나는데 별거 아니지만 팍팍 정전기가 생기면 순간순간 놀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특히 자동차 문 열고 닫을 때나 여러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때 걸레에 린스를 조금 묻혀서 살살 닦아주면 거짓말처럼 정전기가 사라집니다. 


● 사용법


걸레나 헝겊에 린스를 조금 묻혀서 닦아주시면 됩니다.



4. 광택과 가전제품을 청소할 때 사용하세요


집안 청소를 몇 번 해보면 하루 전에 청소를 했는데도 가전제품이나 가구에 먼지가 또 쌓여있는 걸 보게 됩니다.

"뭐야? 어제 청소했는데 또 이렇게 먼지가 앉았어?"

이렇게 혼잣말로 해보신 분들 많습니다. 

린스에는 정전기를 방지하고 광택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먼지가 잘 앉는 가구나 전자제품 등을 닦을 때 

사용하면 광택은 살고 먼지는 잘 앉지 않습니다. 


● 사용법


걸레나 헝겊에 린스를 조금 묻혀서 닦아주시면 됩니다.



5. 빨래할 때 사용하세요


린스를 빨래할 때 사용하면 때가 잘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역할은 섬유 유연제가 하게 되는데 쓰다 남은 린스가 있으면 섬유 유연제 대신 넣어주면 찌든 때도 

잘 빠집니다. 특히, 속옷 등을 빨 때 남은 린스를 붓고 세탁하면 때나 얼룩이 잘 빠집니다. 


● 사용법


린스는 섬유 유연제보다 점도가 높기 때문에 섬유 유연제 대신 사용할 경우에는 따뜻한 물에 풀어서 

사용하셔야 합니다.



그동안 다 사용한 린스통을 그냥 버리기에는 왠지 아깝고 했었는데 

이젠 2~3통 모아뒀다가 이렇게 재활용하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사랑에 빠졌다고 느끼는 순간들


연애를 하다 보면 정말 많은 순간들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마음을 두근세근 쿵딱거리게 만드는 순간들이 있는가 하면,

상처로 마음이 매일 벼랑 위에 있는 거처럼 무섭고 답답한 순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가슴 설레게 만드는 순간은 

사랑에 빠졌다고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


저와 함께 볼까요? 




행복,


나 지금 사랑에 빠져있니?


그런거니?





첫 번째,


헤어지는 순간이 아쉽게 느껴질 때





두 번째,


좋은 음식, 좋은 장소 등을 볼 때면 그 사람이 먼저 생각날 때




세 번째,


더 멋진 모습, 더 예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나를 꾸밀 때





네 번째, 


매 순간 마다 상대가 보고 싶을 때





다섯 번째,


안 좋았던 일들이 있어도 상대를 보면 기분이 좋아질 때



또, 혹시 어떤 순간들이 있을까요?

댓글로 남겨보세요!!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공감 부탁드립니다^^



1026사태 [김재규 최후진술, 재평가]


계속되는 국정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마음이 얼마나 참담하고 아픈지 지금 이 나라의 정치인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이 집권 권력에 의해 잘못된 역사를 우리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올바른 역사를 알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탐구왕은 1026사태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026사태란 


1970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당시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에 의해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했던 사건을 말합니다


당시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잠시 살펴보면,

유신 체제에서 무리하게 진행된 투자로 인해서 한국경제는 북한보다 더 어렵다고 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유신 체제하의 한국의 인권상황은 국외에서 볼 때 심각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핼맹국인 미국의 당시 카터 행정부와 박정희 유신정부는 불화가 생기게 됩니다. 


당시에 이러한 상황은 경제가 북한보다 어려운 상황에서 제2의 전쟁이나 이와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다시 수 많은 국민들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참고글 보시면 당시의 한국의 정치, 경제적 상황을 이해하시는데 도움이 됩다.



한국은 사회 곳곳에서 진행된 유신헌법 개정에 대한 저항과 운동이 일어납니다. 

이에 박정희 독재 정권은 더욱 잔인하게 이들을 강제 탄압하게 되는데...

"긴급조치"라는 구호 아래 대통령은 이 조치를 발동하면서 우리 국민이 헌법 상 누려야할

가장 기본적인 "헌법상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유신 정부는 긴급조치를 이용하여 각계각층에서 일어난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과 정치가들, 학생운동가들을 탄압합니다. 



이후 유신 정부에 대한 정치가와 국민들, 학생들의 불만이 극에 달하여 드디어 10월 16일 부산에서 

학생 5000여 명이 시위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는 곧 경남의 창원과 마산으로 불같이 확산됩니다. 

[부마항쟁]


이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 독재 정권은 10울 20일에 창원과 마산에 위수령을 발동하여 

시위자 500여 명을 연행했으며 59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위수령


군병력의 주둔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지역에 군부대가 주둔하면서 치안과 수비, 공공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부마사태가 원인이 되어 1026사태가 일어나는 계기를 마련해줍니다. 



당시 1970년 10월 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중앙정보부 안가에서는 부마사태에 대한 수습으로 

토론이 있었는데 강경 수습을 주장했던 경호실장 차지철과 중앙정보부 부장 김재규 사이에서는 

이 부마사태 수습에 대해서 격렬한 논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결국에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은 김재규의 총에 맞아 사망을 하고 박정희의 18년 독재가 끝나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20년 앞당겨지게 되는듯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중심이 없는 사이 군부에서는 이 상황을 다시 먹잇감으로만 생각하게 됩니다.

이 부분의 이야기는 잠시 후에 설명드리도록 하고,


오늘날 김재규가 재평가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습니다. 

저 역시 최근에야 이러한 부분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김재규 보통군법회의 최후진술(1979.12.18)◆ 



동영상은 김재규 최후진술의 내용입니다. 

당시 재판관은 김재규에게 마지막으로 진술을 허용합니다.




동영상 내용중 2가지를 글로써 올려보겠습니다. 


1. 혁명의 목적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저의 10울 26일 혁명의 목적을 말씀드리면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요.

둘째가 이 나라가 국민들의 보다 많은 희생을 막는 것입니다. 

세째가 우리나라를 적화로부터 방지하는 것입니다. 

네째가 혈맹인 우방 미국과의 관계가 건국 이래 가장 나쁜 상태입니다. 

이 관계를 완전히 회복해서 혈맹의 우방으로서의 관계를 회복하고 돈독한 관계를 가지고 국방을 위시해서

외교, 경제까지 보다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국익을 도모하자는데 있었습니다.

다섯째 국제적으로 우리가 독재국가로서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씻고 이 나라와 국민과 국가가 국제사회에서도 명예를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위 다섯 가지가 저의 혁명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목적은 10월 26일 혁명 결행 성공과 더불어 모든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해결이 보장되었습니다."



2. 김재규 그는 혁명 이후의 대한민국에 대한 걱정 어린 말도 합니다. 


"또 나는 생각합니다. 

지금은 우리나라에 핵심이 없습니다. 

대통령 각하가 돌아가신 이후에 핵심이 빠져버렸습니다. 중심 세력이 없습니다. 

이런 상태가 가장 위험한 상태입니다. 


4.19이후에 사태나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출범하게 되면은 

센 놈이 와서 밀면 또 넘어갑니다. 악순환이 또 계속됩니다. 


이것을 막는 것은 저는 오로지 민주 회복을 기도한 저만이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군의 주요 지휘관들과 같이 협력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출발시켜 놓고 이것을 보호해내는데 

내 역할이 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또,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에 건국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대통령이나 정권이 순리적인 방법으로 

오고 갔던 일이 없었습니다. 

요번만 해도 그렇습니다만은, 지금까지의 경우가 4.19 혁명, 5.16혁명 이런 악순환이 거듭하는 

이러한 상태를 언제까지 가져가야 하겠습니까?

나는 군의 수뇌부들과 같이 손을 잡고, 이 나라의 정권이 앞으로는 국민의 뜻에 따라가지고 순리적으로 

오고 가고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토착화시켜야겠다,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이렇게 생각한 것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는 그다음부터는 

대통령이 바뀌던지 정권이 바뀌던지 국민의 뜻에 따라가지고 순리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해야 될 일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김재규가 마지막으로 한 말입니다.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


이후,


그의 걱정대로 박정희가 사망한 이후 대한민국 정권은 공백 상태로 머물게 됩니다. 

이를 가장 먼저 포착한 것이 당시 보안사령관으로 있던 전두환입니다. 


전두환과 노태우 등이 포함된 신군부세력은 당시 육군참모총장과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 총장을 

강제로 연행하고 당시 대통령이었던 최규하에게 승인을 얻어 1212사태가 일어납니다.

대한민국은 다시 신군부세력에 의해 민주주의는 꽃을 피우지 못하게 됩니다.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공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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