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는 육군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전투부대가 있습니다. 1947년 이전 한국에는 아직 전투사단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던 시기였습니다. 그들은 한국전쟁 이전에 육군 최초로 창설되어,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을 상대로 112전 전승으로 무패의 신화를 창조한 사단으로 '제1보병사단', '1사단'이라고도 불리며, '전진부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들이 '최강부대'라는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천하제일 부대, 그리고 역사의 시작


1947년 12월 1일, 수도권 3개 여단이 창설되었고, 그중 1여단이 제1사단의 시초였습니다. 한국전쟁 이전에 창설되어 그 유명한 1948년 송악산 전투에서 육탄 10용사가 속한 부대였으며, 이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는 베티고지 전투, 다부동 전투, 평양에 제일 먼저 입성한 부대로 북한군과 112전의 전투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천하제일'이라는 별명을 가진 한국 육군의 역사를 가진 부대입니다.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월 22일 백선엽 대령이 제5대 사단장을 맡고 있었습니다. 

▼제1보병사단 마크

'부대마크의 의미'

숫자1 - 국군의 최선봉 1사단의 단결과 충성심을 뜻함.

노란색 - 국가의 방패를 뜻함.

파란색 - 민주주의 수호를 뜻함.


전진부대는 사단 창설 이후 1971년 3월 수도권 방어의 최선봉 부대로 현재 한국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파주에서 국토 수호를 담당하고 있으며, 개성공단 출입로와 도라산역, 도라 전망대, 대성동, JSA 등 서부전선 DMZ, GP, GOP의 경계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대한민국 최일선 부대입니다. 



육탄 10용사도 전진부대 소속


1949년 5월 3일 새벽, 북한은 전쟁 준비를 모두 완료한 다음 당시 한국군의 전투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개성의 송악산을 인민군 제1사단 병력 1천 명을 동원해 점령하게 됩니다. 



당시 북한군이 점령한 고지들을 탈환하기 위해 다음날 반격을 시작했지만 이미 북한군이 고지에 설치한 토치카에서 쏟아지는 총탄으로 아군의 피해는 커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제1사단의 서부덕 상사가 포함된 10명의 특공대가 만들어지는데 이들은 박격포탄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적진을 향해 육탄으로 돌격해서 결국 빼앗긴 고지들을 다시 탈환하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지금까지도 제1보병사단의 영웅으로 알려진 송악산의 육탄 10용사입니다.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1사단 영웅들


전쟁 개시 후 북한군은 빠르게 남하를 전개해 서울을 비롯해서 대전을 점령하고 남쪽으로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옵니다. 이에 국군과 미군은 최후의 보루로 낙동강 방어선을 설치하는데 당시 가장 치열했던 곳이 구국의 3대 전투로 일컫는 '다부동 전투'였습니다. 

외국에서는 이 전투를 한국전쟁 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당시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게 되면 북한의 적화통일은 불을 보듯 뻔한 결과로 여겨졌습니다. 




북한군 3개 사단은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제1사단이 가장 쉽게 돌파될 것으로 예상하고 공세를 퍼부었는데 1사단은 결코 만만하지가 않았고, 당시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1사단은 무려 25일 동안 적 3개 사단의 막강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8월 대공세'를 저지하면서 대승을 이루게 됩니다. 



이렇게 제1사단은 다부동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대구와 낙동강 이남 지역을 북한군으로부터 지켜내고, 인천상륙작전이 이루어진 다음 1950년 10월 19일 평양에 가장 먼저 입성한 사단이 됩니다. 



평양에 선봉으로 입성한 최강 제1사단


1950년 10월 19일 국군 최초 평양 선봉 입성을 기념하면서 당시 이승만 대통령에게 '계속 전진하여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라'라는 의미인 '전진' 휘호를 부여받아 지금까지 '전진부대'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한국전쟁 당시 적군 82,000여 명 사상, 6,900여 명의 포로를 잡는 등 북한군과 총 112전의 전투에서 무패의 전설을 기록하며 가장 먼저 평양에 입성합니다. 


▼평양 입성 직후 미1구단장에게 평양 탈환 작전을 설명 중인 백선엽 당시 1사단장


이렇게 1사단은 개전 전에 편성되어 한국전쟁이 끝날 때까지 사단 건제를 유지했던 최강 사단으로 지금까지도 평가받고 있으며, 미군이 가장 신뢰했던 유일한 국군 사단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진부대에는 4명의 영웅이 더 있습니다.


1사단 이종명 대령과 정교성 중사, 김정원 하사, 하재헌 하사의 이야기입니다. 


▼이종명 대령(이미지-SBS뉴스)


이종명 대령은 2000년 6월 1사단 수색대대장으로 복무 시 DMZ 수색정찰 도중 지뢰 폭발로 부상을 입은 후임 대대장을 돕다가 자신마저 지뢰 폭발로 두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게 됩니다. 급박한 상황에서 부하들의 접근을 막으면서 '위험하니 내가 간다'라는 말과 함께 부상당한 몸으로 포복하여 후임 대대장을 부축해 탈출한 전진부대의 영웅입니다. 


▼김정원 하사, 정교성 중사, 하재헌 하사(이미지-조선일보)


2015년 8월 4일 아군 GP 통문 앞 출입구에 북한군이 설치한 목함지뢰의 폭발로 당시 김정원 하사는 발목 절단, 하재헌 하사는 양쪽 다리가 절단되는 큰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위급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부상자들을 구호하는 모습은 한국전쟁 당시 나라를 위해 불굴의 의지로 싸웠던 전진부대 장병들을 투혼을 보는 듯했습니다. 

112전 전승의 무패신화를 만든 최강 부대인 제1보병사단, 그들이 있기에 대한민국 오늘도 평화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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