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는 수없이 많은 무인들이 존재했습니다. 그중에서는 한가지 무기 또는 여러 다양한 무기로 당대 최고의 무인에 자리에 오르는가 하면 몇 세기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뛰어난 무예와 발자취를 남긴 영웅들도 있습니다. 지난번에는 조선의 검신으로 알려진 왜검을 배워 왜검을 베려 했던 검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오늘은 한국과 일본의 대표 3대 검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이미지 - SBS드라마



한국, 일본 역사에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거나 또는 알려지지 않은 뛰어난 검객들이 많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한국 VS 일본, 3명씩 선택했답니다^^ (더 뛰어난 검객들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이미지와 내용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검신


사진- SBS 육룡이나르샤


고려의 여포, 무쌍액션의 검신 척준경 

(일본 검신과 1:3 대결도 문제없다?)


한국사 최고의 용장이자 검신이라 알려진 척.준.경. 

이미 드라마나 게임 등으로 많이 알려져 거의 모르는 분들이 없을 거 같습니다. 척준경은 모든 전투에서 역발산기개세의 용장으로 자신의 용역만으로도 가히 전세를 뒤집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역사에서 그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건 고려 VS 여진 전쟁에서 여진족이 정주성을 공격했을 때인데, 그는 사령관에게 말 한 필과 무기를 요구한 뒤, 적진에 단신으로 뛰어들어 적장 2명의 목을 베고 소풍 다녀온 듯 유유히 귀환합니다. 여기서부터 그의 전설이 시작되죠.


이후에도 그는 도저히 인간계에서는 볼 수 없는 많은 공을 세웁니다. 

윤관을 따라 여진족 정벌에 나서서 역시 단신으로 칼과 방패만을 지닌 채, 성벽을 올라가 성안의 여진족들을 썰어버립니다. 이때 기세를 받은 고려군은 쉽게 성을 함락했었죠. (이미 신선계의 경지에 도달함)


* 그의 무용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장수들처럼 소설이 아니라 실제 '고려사', '고려사절요'에 실려 있는 실존 인물이라는 거죠.





일본 검술을 배워 일본을 베려 했던 검신, 김체건


조선의 군사들은 활과 칼을 지니고 있어도 전투에서 일본 무사들이 왜검을 들고 달려들면 기세에 눌리거나, 왜검법에 쉽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했던 당시 훈련도감의 군교였던 김체건은 왜관에 숨어들어 3년의 시간 동안 일본의 왜검을 익힙니다.(왜검으로 검신의 경지에 오름)



숙종 앞에서 땅에 재를 뿌려두고 검술 시범을 보였는데 재에 발자국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그의 무예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이후 조선의 군병들에게 일본의 왜검을 전수했는데(그가 배워온 왜검은 '무예도보통지'에 글과 그림으로 설명됨), 그의 아들 김광택 역시 조선의 검신으로 알려질만큼 유명하죠.





검신 김체건의 아들, 검선 김광택


그의 아버지 검신 김체건에게 어려서부터 검술을 배워온 모태 검술인 김광택. 그는 또 당시 김신선이라 불리던 김홍기를 따라다니며 각종 경신법과 술법 등을 배웠는데, 그는 서울에서 금강산까지 두 번을 왕복해도 짚신이 닳지 않을 정도로 경공술도 뛰어났다고 전해집니다. 


유본학이 지은 '김광택전'에 따르면 그의 칼춤 실력이 신의 경지에 도달해 칼에 몸을 숨겨 보이지 않는다고 평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무예도보통지'의 실기해석을 담당했던 '무사 백동수'가 바로 그의 제자며, 역사에 나타나는 뛰어난 활약상은 없지만 우리나라 검술의 체계를 잡아준 당대 최고의 검신이었습니다. 





일본의 검신


일본의 역사에도 뛰어난 무신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우리와는 다르게 일본의 조정과 귀족들은 무사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무사와 귀족의 연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주종 관계가 형성되면서 자연히 지방에서도 뛰어난 무사들이 많이 배출되었고, 이들이 조직적으로 관리되면서 많은 무인들이 생겨났죠. 



일본인에게 가장 존경받고 있는 검성 중에 한 명

카미이즈미 노부츠나(1508~1577)


공식, 비공식적으로 일본 검술의 역사상 최고의 검객으로 알려져 있으며, 신카게류의 창시자이며, 일본의 엘리트 무사 가문의 시초라고 불리는 '야규 세키슈사이'의 스승이기도 합니다.


무사시보다 이전의 인물이지만 무사시처럼 전국을 누비며, 강호들과 대결을 펼쳐 무패의 전설을 가지고 있고, 같은 시대를 살았던 검성 츠카하라 보쿠덴과 함께 일본 역사상 최강의 검객이죠.





일본 역사 최초의 검성

츠카하라 보쿠덴(1489~1571)


검성 카미이즈미도 젊은 시절 츠카하라에게 검술을 배웠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일본 최초의 검성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평생 동안 39차례의 전쟁에 참전했었고, 전국을 방랑하면서 펼친 진검승부는 19차례나 있었지만 평생 그의 몸에 난 상처는 전쟁 중에 화살에 맞은 상처밖에 없었다고 할 정도로 뛰어난 검객이었습니다.  



그의 유명한 일화 중에는 '무수승류'라고 해서 '검을 빼지 않고 이기는 사람, 위험한 것은 미리 피해 가는 사람이 진정한 무사'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무수승류'의 일화

그가 배를 타고 갈 때, 한 젊은 무사가 결투를 신청했다. 보쿠덴은 주위에 사람이 많으니 앞에 보이는 섬에서 싸우자고 한 후, 젊은 무사가 내리자 바로 배를 출발시켰는데 비겁하다고 외치는 젊은 무사에게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무사'라고 했다는 일화입니다. ^^;;


(진짜 비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일본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1584~1645)


일본인들에게 가장 잘 알려졌고, 또 그들이 좋아하는 인물이죠. 우리나라에서도 미야모토 무사시라고 하면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니까요^^

하지만 실제 일본 검술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분들은 그의 행적들이 미화된 부분이 많다고 주장합니다. 



두 자루 칼을 사용하는 이천일류의 시조로 그가 말년에 저술한 오륜서에는 60여 회의 실전을 치렀다고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 진검인지 목검인지는 밝혀지지 않았고 다만 당시 일본의 검술가에 의하면 그의 검술은 '귀신의 검술이며,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영화나 드라마 등의 소재로 많이 사용되고,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졌고 사랑받는 검객입니다.  


실제 한국과 일본의 검신 3인방이 대결을 한다면 승산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저는 고려 검신 척준경이 다 이길 거 같습니다만...

다음 글에는 좀 더 흥미로운 소재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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