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전에서는 미사일과 최첨단 무기에 의해서 전쟁의 승패가 좌우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보병의 역할이 많이 축소되었지만 현대전에서 보병의 역할을 무시했던 전쟁을 살펴보면 전투기에 의한 폭격만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었던 베트남전과 기갑부대와 공군의 위력만 믿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전의 사례만 찾아보더라도 전쟁에서 보병의 역할은 결코 없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결론은 강한 보병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필수 조건입니다.


현대가 아닌 중세시대 최강의 보병 군단은 어땠을까요? 

최강의 보병이었던 그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오스만 투르크의 예니체리 자르힐 네페르



예니체리는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군단을 일컫는 명칭으로 술탄의 직속 경호대이며 친위대 역할을 하는 최정예 군단입니다.

술탄 무라드 1세가 1364년에 창설하였다고 전해집니다. 

그들은 갈고리창을 사용하였는데 당시의 갑옷과 투구는 가볍게 뚫어버렸으며, 기마병과 일대일로 붙어도 이길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고 합니다. 

 


예니체리들은 자신들만의 규율이 굉장히 엄격했는데 이들은 어릴 때부터 징발되어 폐쇄된 공간에서 오직 술탄만을 위해 충성할 것과 전투술 등을 교육받으면서 최강의 보병으로 성장합니다.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했지만 그들의 충직함과 전투에서 가공할 힘은 훗날에 높은 수준의 생활을 보장받는 이유가 되기도 했습니다. 


네팔의 구르카 전사



구르카족은 네팔 고원지대의 이름 없는 부족이었습니다. 그들의 용맹과 전투력이 알려진 후부터는 제국주의 시대부터 영국 군대의 가장 강한 용병이며 없어서는 안될 최강의 전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1815년 영국은 식민지 확장으로 네팔을 공격하는데 쿠르카 족과 싸우면서 당시 영국군은 긴 총과 총검으로 반달 모양의 칼인 쿠크리를 들고 싸우는 구르카 족을 상대로 오히려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구르카 족의 용맹과 전투력에 도저히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자, 에드워드 샌더슨 장군은 이들을 용병으로 기용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였고, 정부는 이를 승낙하게 됩니다. 영국은 구르카족의 네팔 통치권을 인정해주고 자금과 생필품 등을 지원하면서 영국군 철수를 조건으로 걸고 그들을 영국군의 용병으로 채용하게 됩니다. 

이후 구르카 연대는 영국군에 없어서는 안될 최강 전력으로 자리 잡습니다. 


▲쿠크리


아프리카 전투에서는 독일군 싸웠으며 동남아 지역에서는 일본군을 상대로 큰 공을 세웠는데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당시 구르카 연대의 '디마푸르'라는 중사 혼자서 일본군 참호에 침투하여 24명의 일본군을 백병전으로 싸워서 이겨 빅토리아 무공훈장을 수여받는가 하면, 또 한 명은 쿠크리 한 자루로 일본군 15명을 상대로 이겼을 정도로 그들의 용맹과 전투력은 가히 역사상 최강의 보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시암 타나이 루아크



시암(태국)의 중세 왕실 경호부대인 타나이 루아크는 왕족들을 경호하는 보병입니다. 이들은 오늘날에도 최고의 실전 무술로 알려진 무에타이를 최고 수준까지 수련했는데 맨손 싸움으로는 무적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초기에는 맨손투기술을 '람무에'라 했으며 무기술인 '크라비크라봉'을 합쳐서 무에타이라고 불렀습니다. 



크라비크라봉은 양손의 칼과 맨손 싸움 기술을 잘 혼합하여 싸우는 기술이기 때문에 실제 전투에서 근거리 싸움에서 상대를 쉽게 제압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는 맨손 타격술인 람무에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크라비크라봉은 정통 계승자들만 수련하고 람무에를 무에타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과거나 현재나 강한 보병의 최우선 조건은 뛰어난 정신력과 체력 그리고 강인한 육체가 기본 조건인 거 같습니다. 

요즘에는 실전최강무술이라고 하면 무에타이보다는 UFC의 영향때문인지 주짓수가 최고의 무술이라고 하는 분들이 많은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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